국정 역사 교과서가 철회되면 당장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해야 할 중·고등학교 수업 현장에 혼란이 올까? 오히려 반대다. 그간 추진해오던 국정 역사 교과서 개발을 철회하는 게 박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해오던 ‘비정상의 정상화’에 더 가깝다.

국정 역사 교과서는 비정상적으로 무리한 일정에 맞춰 추진되었다. 지난해 확정된 ‘2015 교육과정’에 따른 새 교과서는 원래 2018년 1학기(3월)부터 학교에서 사용하기로 되어 있다. 중·고등학교의 다른 과목 교과서는 모두 그 일정에 맞춰 개발되고 있다. 지난해 검정에서 국정으로 체제를 바꾼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만 예외다. 1년을 앞당겨 내년 3월부터 학교 수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부가 관련 고시를 수정한 것이다.

ⓒ연합뉴스이준식 교육부 장관(위)은 “최순실 의혹과 관련 없이 계획대로 국정교과서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년은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선택이 가능한 검정 교과서만 해도 현행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개발 시작 시점이 ‘적어도 1년6개월 전’은 되어야 한다. 교과서 집필 경력이 있는 교수·교사들도 “1년 안에 양질의 교과서를 개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입을 모은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내에 새 교과서를 보급하려는 고집으로 무리하게 국정 역사 교과서 개발 일정을 앞당긴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이다.

되돌리는 일은 간단하다. 바꿨던 교육과정 고시를 한 차례 다시 개정하면 된다.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만 2017년 3월1일로 앞당겨 새 교육과정을 따르도록 한 예외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다. 내년 중·고등학교 역사 수업시간에는 지금 쓰고 있는 검정 교과서를 사용하면 된다. 이 교과서들은 이미 교육부 장관의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별도의 심의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 전국역사교사모임 김태우 회장은 “고시를 수정할 때 아예 적용 시점을 1년 더 늦춰 새 검정 교과서를 개발할 시간을 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정부 방침대로 국정 역사 교과서가 도입될 경우, 학생들 처지에서는 오히려 혼란이 더 크다. 이번 정부 소수 인사들의 의지로 추진된 이 교과서가 그대로 강행된다 할지라도 내년 대통령 선거 이후에는 교육 현장에서 폐기될 ‘1년짜리 교과서’가 되기 십상이다. 그 1년 동안에도 국정교과서는 교육 현장에서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강원·광주·전북 등 4개 시도 교육청은 우편향 국정교과서를 대체할 역사 교과서 보조 교재를 이미 개발하고 있다. 4000여 원(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판매될 국정교과서에 대한 불매운동을 준비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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