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씨(가명·45·회사원)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되었다. 먼저 집안에 널린 빨랫감들을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부엌으로 가 전날 쌓인 그릇들을 설거지한 다음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간을 쪼개 장을 본 식재료로 밥상을 차렸다. 어머니 최복순씨(가명·81)의 아침식사다. 최씨는 2011년 대장암과 뇌경색을 겪었고 긴 투병 생활 중 치매가 발병했다. 아들은 누워 있는 어머니 곁에 밥상을 놓은 뒤 출근 준비를 했다. 간밤에도 여러 번 깨서 흐느끼는 어머니 탓에 잠을 설쳤다. 몇 달째 만성 수면 부족이다.

아침 7시, 김씨가 집을 나서면 어머니는 집에 홀로 남았다. 낮에 요양보호사가 방문해 어머니의 점심식사와 목욕을 도와준다. 보호사가 머무는 시간은 최대 4시간이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가끔 수돗물을 계속 틀어놓거나 가스 불을 켜놓았다. 옆집·아랫집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근무 중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간 적도 있었다. 회사 눈치가 보여 사직이나 휴직도 고려했지만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라도 버텨야 했다. 김씨가 퇴근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저녁 8시, 간단히 저녁상을 봐드리고 나면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다. 2년간 홀로 치매 어머니를 돌봤던 김씨는 지난 6월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냈다.

ⓒ시사IN 윤무영
늙고 병든 부모와 가난한 독신 자녀가 만났다. 김씨가 견뎌내고 있는 이 ‘나 홀로 간병’은 윗세대의 고령화와 아랫세대의 비혼·만혼화가 빚어낸 필연적인 사회현상이다. 인구 구조가 피라미드형에서 항아리형으로 바뀌면서, 내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는 본격 ‘고령사회’로 들어선다(2014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보고서). 위가 아래보다 무거운 역피라미드 인구 구조는 이제 누구나 예측하는 미래다. 1970년에 61.9세였던 한국인 평균수명(기대수명)도 2014년 82.4세로 늘었다.

장수하기는 쉬워도 무병장수는 쉽지 않다. 65세 이상 고령자 94.7%가 병원을 드나든다. 전체 국민이 지출하는 의료비에서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 17%에서 2011년 38.3%로 늘었다. 고령자 한 사람이 의료비로 쓰는 돈은 한 해 평균 90만8000원에 달한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11년 자료). 이 병든 노인을 돌보는 건 91.9%가 가족 구성원이다. 배우자(37.7%) 못지않게 아들(25.2%)·딸(20.6%)·며느리(12.4%)가 수발의 책임을 나눠 지고 있다(보건복지부 2014년 노인실태조사 ‘신체적 기능 저하 노인 수발자 통계’).

그런데 불행히도 지금 대한민국의 자녀 세대도 처해 있는 환경이 어둡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도(지난 9월 기준 청년 실업률 9.4%, 지난해 8월 기준 신규 채용 청년층 비정규직 비율 64%), 일찍이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지도(남성 평균 초혼 연령 1995년 28.4세→2015년 32.6세), 훗날 본인 노후를 돌봐줄 수도 있는 자녀를 낳지도(2014년 합계 출산율 1.21명으로 OECD 꼴찌) 못했다. 취업·결혼·출산과 같은 생애주기별 임무를 건너뛴 채 ‘노부모 간병’이라는 후순위 과제를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순서가 바뀐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태롭다.

백수가 되거나, 불효자식이 되거나

외동아들 장우철씨(가명·36·의류 매장 직원)는 4년 전부터 치매를 앓는 어머니(63)를 홀로 모셨다. 새벽 일찍 매장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할 때까지 어머니는 혼자 집에 남았다. 늘 조마조마했다. 어머니는 혼자 계시다 넘어져 이마가 찢어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일하던 중 “너희 엄마가 맨발로 배회하고 있다”라는 동네 슈퍼 아주머니의 전화를 받고 달려가기도 했다. 장씨는 이대로 가다간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아 결국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요양원도 그리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일단 어머니의 요양원 입소가 가능하려면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 상향이 필수인데 그 심사 과정에만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겨우 등급을 올렸지만 평판이 괜찮은 공립 요양원은 대기자가 300명이 넘었다. 건물만 봐도 음산한 시골의 정체 모를 요양원에는 자리가 있었지만 차마 어머니를 보낼 수 없었다. 몇 달간 수소문한 끝에 괜찮다는 요양원에 자리를 하나 맡았다.

장씨는 또 한번 좌절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지원을 받아도 한 달 자기부담금이 100여만 원에 달했다. 모아놓은 돈 없이 월급 200만원을 받는 비정규직 장씨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그런 장씨에게 누군가 귀띔했다. “네가 소득이 없으면 어머니가 기초수급자가 되어 시설비용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어.” 장씨는 어머니의 시설 입소를 위해 일을 그만뒀다. 아들이 백수가 된 덕에 어머니는 지난 1월 요양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3개월이 지난 뒤 장씨는 본인의 생계를 위해 ‘투명한 노동자’가 되었다. 4대 보험은커녕 계약서 한 장 쓰지 않은 고용 형태로, 임금도 본인 명의 통장으로 받지 못한다. 어머니가 기초수급 자격을 잃을까 봐서다. 일종의 ‘부정 수급’인 셈인데, 장씨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 방법이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나가서 돈을 벌지만 어머니를 집에 방치하거나 아니면 어머니와 집에서 쫄쫄 굶고 있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장씨처럼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나홀로 간병인들이 일과 부모 간병을 병행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법적으로 보장된 육아휴직도 눈치가 보여서 사용하기 어려운 마당에 자녀가 부모 간병으로 직장에 아쉬운 소리를 하기란 더욱 쉽지 않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사회와 노인 간병 문제를 경험한 일본은 2002~2007년 가족 간병으로 인한 퇴직자(개호 퇴직자)가 연평균 11만4000명에 달했다(일본 총무성 취업구조 기본조사). 이런 현상을 막고자 일본 정부는 2005년 간병휴직 제도를 시행했고 일부 기업들도 재택근무와 주 4일제 근무 등을 도입했다(‘개호의 사회화’ 일본이 남긴 교훈 기사 참조). 한국도 2012년 8월부터 가족돌봄 휴직제도가 시행됐지만 강제성도 없고 무급이라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포기, 포기, 포기…

부모 간병을 도맡은 나 홀로족들은 직장뿐 아니라 다른 생활에서도 미래가 불투명하다. 대표적인 게 연애와 결혼, 그리고 자신의 노후이다.

ⓒ시사IN 이명익국내 한 병원에 입원 중인 노인들. 10년 뒤면 우리나라는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가 된다.
앞서 소개한, 스스로 백수를 선택한 장우철씨(가명)는 문득 ‘나도 늙어 어머니처럼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연금저축 보험을 알아본 일이 있다. 하지만 본인의 소득이 신고되어 어머니가 요양원에서 쫓겨나게 될까 봐 곧 포기했다.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장씨는 5년간 교제해온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함께 미래를 꿈꿀 여유도 자신도 없었다. 앞으로 계속 들어갈 게 뻔한 어머니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이나 하자는 게 장씨가 현재 세울 수 있는 최대 목표다.

박지영씨(가명·27)는 간암에 걸린 아버지 간병 생활 중에도 다행히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않았다. 외동딸 박씨는 일하는 어머니와 함께 번갈아가며 아버지를 돌봤다. 어머니 월급이 150만원, 박씨 월급이 200만원인데 한 해 아버지 병원비는 3000만원이 나왔다. 시간도 없고 데이트 비용도 아까워 남자친구와의 만남을 꺼렸다. 아버지는 1년6개월 투병하다 지난 9월 세상을 떠났다. “조금만 더 길어졌으면 집도 파산하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졌을 것 같다”라고 박씨는 말했다.

박씨가 안게 될 부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씨는 71세 어머니와 85세 할머니와 함께 월세 집에 산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두 어른 다 거동에 지장이 없고 어머니는 계속 돈을 번다. “네 앞길 막지 말아야지”라며 어머니는 상조보험과 간병인 보험에 버는 돈 상당액을 쏟고 있다. 모아놓은 자금이 얼마 없는 박씨는 당장 남자친구와의 결혼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혼자인 네가 책임져라?

혼자 부모를 간병하는 사람이 모두 외동인 것은 아니다. 자녀가 여럿인 경우에도 부모 간병 부담은 결국 한 자녀에게 몰린다. 주로 장남이 책임을 지던 풍조는 최근 점차 바뀌고 있다. 일견 공평해진 것 같은 부모 간병 책임은 아들이냐 딸이냐, 첫째냐 둘째냐에 상관없이 가족 내 가장 ‘회피할 명분이 없는 곳’으로 향하기 쉽다. 대표적인 게 독신 자녀다. “우린 애들이랑 시댁(처가) 뒷바라지도 힘든데 넌 부양가족이 없잖아”라는 다른 형제자매의 논리에 독신 자녀는 딱히 거부할 구실을 찾기 힘들다.

10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부모님 집에 들어가 산 은진희씨(가명·50)에게도 그런 부담이 지워졌다. 평소에도 자주 아프던 어머니(73)는 최근 거동이 힘들 만큼 부쩍 상태가 나빠졌다. 이틀간 병원 검사·입원비만 200만원 넘게 청구됐다. 은씨의 오빠와 세 여동생은 이번에 부모 명의의 민간 의료보험 하나 없다는 걸 알고 당황했다.

은씨도 사정이 좋지 않다. 계약직을 전전하며 부모를 모시다가 최근 겨우 한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바뀌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 3교대 근무 탓에 어머니 간병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은씨는 “그럴 거면 부모님 집에서 나가 살아라”는 여동생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앞서 소개한 김성태씨는 5형제 중 막내이다. 다른 형제들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독신자 김씨가 자연스럽게 어머니를 맡게 되었다. 김씨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낸 후 밀려드는 죄책감도, 결혼해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도 오롯이 혼자 감당하며 김씨는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일본 사례를 중심으로 비혼 자녀의 부모 돌봄 문제를 연구한 지은숙씨(서울대 인류학과 박사)는 “돌봄 용역은 결국 사회 내 힘없는 약자에게 떠넘겨진다. 남자보다 여자, 국가보다 가족, 그리고 가족 내에서도 재생산을 이뤄내지 못한 비혼 자녀에게 그 책임을 지우는 식이다. 이는 ‘아이를 낳는 사람이 생산적인 사람’이라는 저출산 담론이 지배하는 국가에서 일종의 사회적 합의처럼 굳어졌다”라고 말했다. 지씨는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시스템은 사실 주변화된 사회 구성원을 더 주변화하고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라고 덧붙였다.

존속살해범이 된 효자·효녀들

위기는 비극을 낳는다. ‘간병 대국’ 일본에서는 한 해 268명이 ‘개호(간병) 피로’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2013년 내각부 통계). 또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 사이 일본에서는 ‘개호 살인사건’이 총 350건 발생했다. 대부분 가족 구성원이 늙고 병든 배우자나 부모를 오랜 기간 홀로 간병하다 빈곤과 고립의 늪에 빠져 파국에 이르게 된 경우이다.

한국도 그 전철을 밟고 있다. 지난 7월7일 서울 강북구 한 반지하방에서 송 아무개씨(49)는 2013년부터 홀로 보살피던 치매 어머니 우 아무개씨(79)를 때려 숨지게 했다. 송씨에게 징역 10년형을 선고한 재판부(서울북부지방법원 제13형사부) 판결문에 따르면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던 송씨는 어머니를 모시면서부터 일을 나가지 못했다. 2년 전부터 급격히 증세가 심해진 어머니의 대소변 처리, 잦은 세탁, 목욕, 밤잠 설침 등으로 송씨는 몸무게가 30㎏밖에 안 나갈 만큼 쇠약해졌다. 사건 당일 새벽 3시, 송씨는 속옷에 용변을 본 어머니를 씻긴 후 옷을 입히려 했다. 어머니가 몸을 뒤척이며 거부하자 아들은 폭발했다. 어머니의 얼굴과 머리를 수차례 때리며 벽에 밀쳤다. 3시간 후 어머니는 두부 손상에 의한 경막하 출혈 등으로 사망했다.

같은 날,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최 아무개씨(59)도 치매를 앓던 어머니(78)를 폭행해 숨지게 했다. 지난해 6월에는 대구시 동구에서 아들(53)이 79세 어머니를, 2014년 4월에는 울산시 울주군에서 딸(33)이 54세 어머니를 살해했다. 2014년 1월7일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의 아버지 박 아무개씨(57)는 아버지(84)와 어머니(79)를 목 졸라 살해하고 자신도 목을 매 숨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직장을 그만두고 홀로 수년간 치매·암 등 지병을 앓는 부모를 간병해오며 ‘효자·효녀’ 평판을 듣던 독신(미혼 또는 이혼) 자녀였다는 것이다.

‘간병의 사회화’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는데 곧 닥칠 위기는 너무 높고 강력하다. 10년 뒤면 대한민국은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가 된다. 아직은 ‘초로(初老)’인 거대한 인구 집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돌봄이 필요할 만큼 늙고 병들 시기도 멀지 않았다. 반면 그들의 자녀는 대부분 한두 명이다. ‘나 홀로 간병’의 재앙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법은 개인이 아닌 사회에서 찾아야 한다. 가치관 변화도 이를 뒷받침한다. ‘부모 부양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라는 주장에 1998년에는 국민 2%만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2014년에는 51.7%가 동의했다.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89.9%에서 31.7%로 줄었다(위쪽 〈표〉 참조). 2008년 정부가 장기노인요양보험을 도입하는 등 관련 정책을 마련한 것(한국 노인 간병, 제도는 있는데 시스템이 없다 참조)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나서듯, 부모 간병 역시 국가와 사회가 함께 나눠 짊어져야 한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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