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지난 11월17일 수능 시험 날, 한 수험생은 엄마가 깜빡 실수로 도시락 안에 넣은 휴대전화 탓에 1교시 국어 시험을 치르다가 밖으로 쫓겨나야 했다. 이런 ‘부정행위’로 학생은 그간 고생했던 1년을 통째로 날렸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17일만 등교하고도 이화여대에 입학한 정유라는 일찍이 말했다. “능력없으면 니네부몰원망해. 잇는우리부모가지고 감놔라배놔라하지말고 돈도실력이야.”


하지만 그 수험생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다. “저랑 같은 시험실에서 치신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한창 집중해야 할 국어 시간에 ㅠㅠ.” 인터넷에 그 수험생이라고 밝힌 사람이 쓴 글을 보고 누리꾼들은 뭉클해졌다. ‘진짜’ 엄마들은 촛불집회가 열린 거리에 이런 플래카드(사진)를 내걸었다. “엄마가 말은 못 사주지만 좋은 나라 만들어줄게.”

유난히 어려웠다는 ‘불수능’을 치르자마자 수험생들이 촛불을 들었다. “수능 끝, 하야 시작”을 외치며 행진했다. 예년 같으면, 수험표를 보여주면 50% 할인을 받는 미용실, 패밀리 레스토랑, 영화관을 순례하며 놀기에도 바쁠 텐데, 그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다. 하긴 지난 11월12일 촛불집회에 나와 마이크를 든 초등학생도 한숨 쉬며 말했다. “이 시간에 〈메이플 스토리〉 하면 레벨업 되는데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바쁜 ‘벌꿀’들은 집회할 시간도 없는 법인데, 〈시크릿 가든〉에서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않는 대통령 때문에 국민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 〈무한도전〉 본방도 포기하고 거리로 나서야 할 형편이다. 이들의 수고를 덜기 위해 유력 반려동물 단체들이 ‘솔선을 수범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동물이 개. 박근혜 대통령은 개를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로 만들기 위해 유동성 위기가 닥친 그룹의 회장을 스위스 로잔까지 특사로 보낼 정도로 총애했다(IOC 위원장은 “개를 먹는 나라가 어찌 개를 마스코트로 할 수 있느냐”라며 문전박대했다). 다수 견주들은 사사로운 정을 뒤로한 채 전견련과 민견 등을 조직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민주묘총과 범야옹연대도 “하야옹 하야옹”을 외치며 힘을 모으기로 했다. 그 밖에 햄네스티, 국경없는어항회, 화실련(화분안죽이기실천연대)도 주말 촛불집회 일정을 짜고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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