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6일 국가보훈처(이하 보훈처)는 법 하나를 입법 예고했다. 명칭은 ‘호국보훈교육진흥법’. 보훈처는 “국민의 호국보훈 정신과 국가에 대한 자긍심은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음. 특히 자라나는 세대의 건전한 국가정체성과 애국심 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부족한 실정임”이라며 이 법의 제정 이유를 밝혔다.

법의 주요 골자는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 전 국민의 호국보훈 교육 ‘의무화’이다. 법안에 따르면, 보훈처장은 유치원 및 초·중학교 교육과정에 호국보훈 교육이 반영될 수 있도록 교육부 장관 또는 시·도 교육감에게 요청할 수 있으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반영되어야 한다(제9조 1항). 보훈처장은 호국보훈 교육 대학교도 지정할 수 있고(제9조 3항), 재외 동포에게도 호국보훈 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제15조 1항). 공무원은 당연히 의무교육이다(제10조 1·2항).

이뿐만이 아니다. 보훈처장은 각 학교에 호국보훈 교육 전담 교사 배치를 요청할 수 있다(제9조 2항). 호국보훈 교육을 실시하는 유치원과 초·중·고교, 공공기관 등을 보훈처장이 ‘평가’할 수도 있다(제17조 1항). 호국보훈 교육에 관해서는 보훈처장이 교육부 장관 못지않은 전권을 쥐는 셈이다.

ⓒ독자 제보2014년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군부대 소속 강사가 진행한 ‘나라사랑 교육’ 장면.
보훈처가 이토록 가르치고 싶어 하는 호국보훈 교육의 내용은 무엇일까? 이미 보훈처는 매년 수십억원씩 예산을 들여 이른바 ‘나라사랑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호국보훈 교육 사업을 수행해왔다. 나라사랑 꾸러기 유치원을 정하고 ‘나라사랑 배움터’라는 홈페이지도 운영하며 직무연수 2학점의 나라사랑 교육 교사 연수 과정도 진행해왔다. 이런 곳에서 사용한 교육 자료들을 살펴보면 보훈처가 법으로 의무화하려는 호국보훈 교육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호국보훈 교육의 첫째 목표는 ‘반공’이다. 보훈처 산하 보훈교육연구원이 작성해 보훈처가 배포하는 〈나라사랑 교육 교사용 참고자료〉에 따르면, 교사는 ‘천안함·연평도 사건 같은 북한의 도발을 알리고’ ‘북한 주민을 우리 이웃에 사는 사람처럼 친근하게만 그리는 내용을 바로잡아’ 학생들이 ‘동족의식에 따른 통일 논의에 함몰된 통일지상주의적 사고’를 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또한 표현·결사·시위 및 파업의 자유와 권리를 누릴 때는 ‘예의 바르고’ ‘품격 있게’ 행사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써놓았다.

보훈처는 또한 ‘긍정의 역사관’도 강조한다. 앞서 설명한 교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나라 잃은 설움과 분단의 아픔, 부정과 독재로 얼룩진 역사만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라는 ‘긍정의 역사’를 함께 기억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 ‘긍정의 역사’란 무엇일까? 지난해 보훈처가 실시한 나라사랑 교수학습 프로그램 경진대회에서 ‘국가정체성 및 자긍심 제고’ 부문상을 받은 초등학교 우수 학습지도안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학습지도안에서 교사는 대한민국의 성장 과정을 나타내는 여러 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친다.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 포항제철, 새마을운동 등이 바로 그 ‘자랑스러운 장면’이다. 보훈처는 201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신화’로 찬양하고 반유신·반독재 운동과 광우병 촛불집회 등에 참여한 사람들을 ‘종북 세력’으로 표현한 안보교육 DVD를 학교와 시민단체 등에 배포하기도 했다. 이 DVD 제작에는 국가정보원이 관여하기도 했다(〈시사IN〉 제322호 ‘국정원과 보훈처 합작해 영화 찍나’ 기사 참조).

나라사랑 교육에 5484억원 달라는 보훈처

호국보훈교육진흥법은 또한 보훈처가 전문 강사를 지정해 각 교육 현장에 파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미 일선 학교에서는 보훈처가 내려보내는 전문 강사가 나라사랑 교육을 수시로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보훈처 나라사랑 교육 전문 강사로 교육 현장에 파견된 사람은 총 196명. 예비역 장교나 새터민 혹은 재향군인회·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고엽제전우회 등에서 나온 참전 군인, 한국자유총연맹·바른사회하나로연구원 같은 보수·친정부 단체 소속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초등학생들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치거나 북한 인권 실상을 가르친다며 ‘영아 살해, 강제 낙태’ 등의 끔찍한 고문 동영상을 틀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위쪽 사진 참조).

보훈처의 이런 교육은 모두 국가 예산으로 진행되었다. 기존 국가유공자 보상과 제대 군인 지원 업무가 중심이던 보훈처는 2011년 2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취임한 이후 ‘나라사랑교육과’를 신설하고 매년 관련 예산을 늘려왔다. 2011년 28억600만원이었던 보훈처 나라사랑 교육 예산은 2012년 42억100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올해는 80억원이나 배정됐다. 그나마 보훈처가 기획재정부에 처음 요구한 예산 5484억4800만원에서 대폭 깎인 액수다. 보훈처는 내년 나라사랑 교육 사업에 올해보다 50% 높인 120억원을 편성해달라는 예산안을 짰다.

호국보훈교육진흥법이 통과되면 이런 나라사랑 교육이 ‘의무화’된다. 보훈처 예산과 더불어 교육부 예산도 여기에 투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긴다. 심상치 않은 이 법안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승환 전북도 교육감은 11월7일 “정치적으로 편향된 안보 교육을 강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이런 비상식적 교육 계획이 학교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최은순 회장은 “호국보훈교육법을 추진하는 것도 결국 국정교과서처럼 정권 입맛에 맞는 교육을 통해 국가가 아닌 정권에 충성하는 국민을 키우려는 시도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