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혼란스럽고 어수선하다. 입각이 확실하던 인사가 하루아침에 쫓겨나는가 하면 외교 문외한이 돌연 국무장관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대통령 당선자의 사위가 과감하게 인선에 관여한다. 11월8일(현지 시각)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깜짝 승리’를 거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의 요즘 인선 작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설상가상 트럼프가 능력보다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인선의 핵심 기준으로 정하면서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까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트럼프는 백악관 비서실장과 동급인 백악관 수석 전략가(장관급) 자리에 자기 선거 캠프의 본부장이었던 극우 인사 스티브 배넌을 임명했다. 인수위원장을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로 갑자기 교체해버리더니, 인수위 선임 안보보좌관인 마이크 로저스 전 하원의원까지 몰아냈다. 로저스는 중앙정보국(CIA) 국장 후보로 유력시됐던 캠프의 핵심 인물이었다. 또한 이런 이상한 인사의 배후에는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슈너는 ‘트럼프의 복심’으로 불리기도 한다.

ⓒAP Photo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연단에 올라가는 것을 큰딸 이방카(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맨 오른쪽)가 바라보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인수위원회가 이처럼 인선 시작부터 내홍을 겪는 가운데 세간의 관심은 외교·안보 부처의 사령탑을 누가 맡을 것이냐에 쏠려 있다. 외교·안보 경험이 전무한 트럼프 당선자는 후보 시절,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라는 미명 아래 나토(NATO), 즉 북대서양조약기구 철수,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맹관계 재조정, 유엔기후변화협약 탈퇴, 자유무역협정 재검토 등 위협적인 공약을 쏟아낸 바 있다. 트럼프가 실제로 공약을 이행할 경우, 제2차 세계대전 후 70년 이상 국제 질서를 주도해온 미국의 지도력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더욱이 트럼프의 공약들은 대부분 모호하고 구체성이 없어서 세간의 혼란과 불안감을 더해준다. 공화당 행정부 출신 전직 외교·안보 고위 관리 50명이 지난 8월 트럼프 반대 성명서를 낸 것도 그래서다. 공화당·민주당 행정부에서 국무부 고위직을 두루 지낸 베테랑 외교관 데니스 로스는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와 한 인터뷰에서 “대외정책과 관련해 불분명하고 일관적이지 못한 트럼프의 메시지를 감안할 때 누구를 외교·안보 분야의 사령탑으로 앉히느냐를 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방향을 미리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외교 주무 부처는 국무부다. 문제는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죄다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스타일이라는 점이다. 우선 트럼프 인수위에서 외교·안보 분야의 인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프랭크 개프니 안보정책센터 소장은 과거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방차관보를 지낸 극우 인사다. 트럼프처럼 반무슬림 세계관을 가진 인물이다.

ⓒAFP백악관 수석 전략가로 임명된 스티브 배넌(왼쪽)과 인수위원장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오른쪽).
공직이 말 잘 듣는 사람에게 주는 막대사탕?

또 다른 국무장관 후보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은 외교 문외한이다. 줄리아니는, 트럼프가 세금 회피, 성추문 등으로 상당한 정치적 곤경에 처했던 선거 막판에도 그를 적극 옹호해서 입각이 유력시됐던 인물이다. 하지만 줄리아니는 연방검사 출신인 만큼 법무장관 정도를 꿰찰 것으로 예상되었다. 엉뚱하게도 국무장관 후보 1순위로 떠오른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줄리아니가 국무장관을 노리며 맹렬히 로비 중이고, 트럼프도 선거 때 그가 보여준 충성심에 보답하려는 듯하다”라고 전했다. 줄리아니의 유일한 외교 경험으로는 2006년 미국 의회가 이라크 전쟁을 종합 평가하기 위해 초당적으로 구성한 ‘이라크 연구단’ 10인 멤버의 한 사람으로 활동한 게 전부다.

또 다른 국무장관 후보는 극우적 세계관으로 구설에 올랐던 존 볼턴 전 유엔 대사다. 볼턴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적극 주창했고, 북한은 ‘불량 정권’이자 미국에 상당한 위협국이라는 인식을 가진 대북 강경파다. 공화당의 랜드 폴 상원의원은 “볼턴이 국무장관이 된다면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장관에 지명되면 상원 인준 과정에서 적극 반대할 것이다”라고 〈워싱턴 포스트〉에 밝혔다.

직급상 국무장관보다 아래지만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과 위상 측면에서 장관 못지않은 힘을 발휘하는 국가안보보좌관에는 마이클 플린 예비역 중장이 급부상한 상태다. 군사 정보통인 플린 예비역 중장은 이란을 혐오하고 러시아에는 우호적 견해를 가진 인물이다. 그는 국방장관 후보로도 거론된다.

유엔 무대에서 미국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유엔 주재 대사로는,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이번 의회 중간선거에서 낙선한 공화당 켈리 아요테 전 상원의원이 물망에 오른다.

트럼프의 주요 공약 중 하나는 미군 군사력 증강과 국방비 증액이다. 새 행정부 출범 이후 몸집이 더욱 비대해질 국방장관 후보로는 3선의 공화당 상원의원 제프 세션스가 꼽힌다. 세션스 의원은 지난해 트럼프가 대선 유세를 시작한 뒤 일찌감치 지지를 선언했고, 최근까지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의 공동 부위원장을 지낼 만큼 트럼프와 막역하다. 세션스 외에도 플린 예비역 중장과 톰 코튼 공화당 하원의원도 물망에 오른다.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1~2006년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잔혹한 고문 수법을 동원해 전 세계에 크나큰 충격을 던진 CIA를 누가 이끌지도 관심사다. 상원이 2014년 12월 테러 용의자에 대한 CIA의 잔혹한 고문 사례를 열거한 방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뒤 존 브레넌 CIA 국장은 고문 방지 등을 골자로 한 개선책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후보 시절 트럼프는 미국 안보에 위협적인 테러리스트에 대한 CIA의 고문 행위를 재허용하겠다고 공약했다. 현재 CIA 국장 후보로는 플린 예비역 중장, 하원 정보위원장 출신인 피터 훅스트라 전 하원의원, 프랜시스 타운센드 전 국토안보보좌관 등이 거론된다.

누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사령탑을 맡을지 조만간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지금 거론되는 유력 후보들이 실제로 지명되면 뜨거운 논란이 일어날 것이 자명하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 자문관을 지낸 엘리엇 코언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SAIS) 교수는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트럼프 인수위가 세계에서 가장 힘들고 중요한 직책을 가장 훌륭한 인재로 채우려는 게 아니라 말 잘 듣는 아이들에게 던져주는 막대사탕쯤으로 간주하는 게 분명하다”라며 트럼프의 인선 난맥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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