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는 1999년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 제도를 처음 실시했다. 첫해 최고 몸값은 투수 이강철과 포수 김동수가 받은 3년 총액 8억원. 고작 17년 만에 최고 몸값은 12.5배가 뛰어 100억원에 이르렀다. 근접한 액수의 기존 자유계약 선수 중에도 실제로는 100억원을 상회한다고 알려진 사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공식 발표 기준으로 100억원대 계약은 최형우가 최초다.
전주고를 졸업한 최형우는 원래 포수로 삼성에 입단했다. 신인 지명 전체 48번으로, 최고 유망주와는 거리가 있었다. 2002년에 입단해 2005년까지 4년 동안 1군에서 6경기만 뛰고 방출되었다. 고질적인 수비 불안이 발목을 잡았다. 때마침 경찰청이 2군 야구단을 창단하지 않았다면 그의 야구 인생은 거기서 끝날 수도 있었다. 경찰청에서 최형우는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꾸고 자신 있는 타격에 집중하는 결단을 내린다. 경찰청에서 보낸 2년 동안 그는 2군 최고 타자로 등극한다.
올해 자유계약 시장은 크게 달아오르지 않았다. 김광현·양현종·황재균 등 주요 선수들이 우선 해외 진출을 타진하는 터라 구단들이 초반 베팅을 주저했다. 더욱이 프로야구단을 보유한 모기업 대부분이 국내 대표 대기업이어서 최순실씨의 범죄 혐의와 어떤 식으로든 엮여 있다. 그룹 총수들이 청문회에 불려 나가는 마당에 야구판에 큰돈을 쓰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기아는 이런 분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데다가, 2016년 시즌에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5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거둔 터여서 구단의 투자 의지가 강했다. 포지션 중복과 노쇠화 우려를 감수하고 역대 최고액을 안겨줬다. 최형우도 해외 진출보다는 일찌감치 국내 대형 계약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