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지난 11월28일 국정 역사 교과서의 현장검토본이 공개됐다. 지난해 11월3일 고시를 확정하고 밀실 집필을 이어온 지 1년 만이다. 그간 국정교과서를 둘러싸고 비판과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교육부는 “실제 나온 교과서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라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교육부가 자랑하는 대로 국정 역사 교과서가 진짜 ‘질 높고 균형 잡힌’ 교과서인지, 전문가들과 함께 그 내용을 검증했다.
교과서야? 오답 노트야?
국정 역사 교과서는 책 전반에 걸쳐 초보적인 사실 오류가 수두룩하다. 청동기 시대 단원은 첫 문장부터 틀렸다.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금속 도구는 청동기였다”(고등 〈한국사〉 20쪽). 고고학고대사협의회 김장석 회장(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설명에 따르면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금속 도구는 ‘청동’이 아닌 ‘순동’으로 만든 것이다. 김 회장은 “집필자의 무지함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라고 말했다.
근현대 단원에도 틀린 내용이 많다. 안중근 의사의 미완성 논책 〈동양평화론〉을 ‘자서전’으로 둔갑시키고(고등 〈한국사〉 190쪽), 1919년 9월 통합 임시정부 성립 당시 노동국 총판이었던 안창호를 내무 총장으로 잘못 표기했다(고등 〈한국사〉 210쪽).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건국 강령’ 일부 내용은 실제 원문과 다르다(고등 〈한국사〉 238쪽).
세계사 단원도 만만치 않다. 세계 최고(最古) 법전은 우르남무 법전인데, 함무라비 법전을 세계 최초의 법전으로 설명하거나(중등 〈역사 1〉 18쪽), 델로스 동맹과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성립 과정 순서를 뒤바꿔놓는(중등 〈역사 2〉 12쪽) 등 오류가 심각하다. 한국서양사학회 강성호 회장(순천대 사학과 교수)은 “서양사를 기술한 14쪽에서만 확실한 오류 19건을 찾아냈다. 한 쪽당 평균 1.5건으로, 이를 전체 교과서에 적용하면 오류 개수는 모두 400~ 500건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박정희’ 23회나 언급
하지만 이런 오류들은 현대사 왜곡 서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현장검토본이 발표되기 전부터 국정교과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헌정 교과서’가 아니냐는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실제 공개된 내용을 보면 의혹은 사실에 가깝다.
일단 국정교과서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언급하는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고등 〈한국사〉의 경우 261쪽에서 269쪽까지 9쪽에 걸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력과 업적을 다루었다. 한 쪽에 일곱 번 등장하기도 하는 ‘박정희’ 이름 석 자는 책 전체에서 총 23회나 언급된다. 교과서에 등장한 전 역사적 인물을 통틀어 가장 많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이신철 교수는 “예전 한 검정교과서의 경우 한 페이지에 ‘민족’이라는 단어가 아홉 번 등장해 ‘너무 민족주의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거기에만 비추어봐도 국정교과서가 얼마나 ‘박정희 찬양’ 책인지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