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43)은 요즘 본업인 인권활동가 대신 ‘100만 사회자’로 곧잘 소개된다. 김 사무국장은 지난 11월12일과 11월26일 광화문 촛불집회 사회를 맡았다. 11월19일에는 사전 행사를 진행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쪽 바닥에선” 자타가 공인한 MC다. 2005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집회를 시작으로 용산 참사, 쌍용차 정리해고, 밀양 송전탑, 세월호 참사까지 도움이 필요한 현장이라면 지역이나 규모를 가리지 않고 마이크를 잡았다. 11년차 사회자답게 무대의상도 따로 있다. “추모제같이 진중한 분위기의 집회에 입고 나가는 까만색 재킷이 있어요. 여름이건 겨울이건 추모제면 무조건 그걸 입고 나가요.”

여러 집회의 사회를 보았지만, 11월26일 촛불집회는 특별했다. 저녁 8시 정각 소등 퍼포먼스가 펼쳐지자, 김 사무국장도 놀랐다. “무대에 있으면 100만명이 촛불로 파도 타는 장면, 불이 꺼지는 장면 그리고 다시 켜지는 장면이 다 보이잖아요. 그때 감동은 믿기 어려울 정도예요. 저로서는 영광이죠.”

ⓒ시사IN 신선영
이날 가수 양희은씨가 무대에 올랐다.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주최 측은 비밀에 부쳤다. 사회자의 소개도 없이 등장한 양희은씨는 곧바로 ‘아침이슬’을 불렀다. “깜짝 선물 같은 거였어요. 5주 동안 추위를 무릅쓰고 시민들이 계속 집회에 나오고 있잖아요. 100만명이 모여 합창을 하면 힐링이 되지 않을까 했던 거죠.” 집회를 준비하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별도로 가수나 뮤지션을 섭외하지 않는다. 뮤지션이 참여 의사를 밝히면 일정을 맞춰 무대에 오르는 식이다.

김 사무국장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자유발언’이다.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발언 희망자 200~300명이 무대 뒤에 길게 줄을 선다. 모두에게 기회를 줄 수 없어서 선착순으로 온라인 10명, 현장 접수 10명으로 자유 발언자를 한정하고 있다. 유명인들보다는 일반 시민들을 우선한다. “명사들은 이미 마이크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일반 시민들은 여기 아니면 목소리를 낼 곳이 없잖아요.”

사회자 처지에서 시민들이 시간을 넘겨 길게 발언하면 식은땀이 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11월26일부터는 발언을 3분으로 제한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발언이 시작되고 3분이 지나면 무대 뒤 스크린에 ‘박수’라는 자막이 올라오고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발언을 종료하는 방식이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3분이 지나서 시민들이 박수를 치니까 호응하는 줄 알고 발언을 더 길게 하시는 분도 있더라고요(웃음).”

촛불집회가 매주 이어지면서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 업무는 뒷전이 되었다. “1년에 딱 한 번 사무실 운영을 위해 모금하는 인권주일과 인권주간이 다가오는데 올해는 그 일을 하나도 하지 못했어요.” 천주교인권위 인권주간은 12월4일부터 세계 인권의 날인 12월10일까지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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