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낸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 현장검토본 255쪽을 펼치면 이런 문장이 있다. “한편 국가가 위기에 처하자 소년병과 학도의용군 등으로 나선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이 북한군에 맞서 싸웠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국군과 대한민국 정부가 방어 태세를 갖추며 대응했다는 설명 뒤에 이어진 문장이다.

ⓒ시사IN 양한모

이전 검정교과서에도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결은 조금 달랐다. 금성·미래엔·비상교육·두산동아 등 대부분 역사 교과서는 어린 학생들까지 총을 들어야 했던 시대적 비극을 강조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라고 적은 중학교 3학년생 이우근의 편지 내용과 앳된 모습의 학도의용군 사진이 여러 교과서에 참고 자료로 실렸다.

이런 검정 역사 교과서들을 가리켜 ‘안이한 반전 메시지만 담아 학생들의 건전한 애국·호국·안보관을 저해하는 좌편향·빨갱이 책’이라며 공격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국정교과서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른바 ‘보수 원로’라는 사람들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안보의식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세상에, 전쟁이 나면 앞장서 싸우겠다는 청소년이 채 절반이 되질 않아요. 이게 다 저 불온한 역사 교과서 때문입니다.” 이후 그 우파 세력에 의해 개발된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는 6·25 전쟁 당시 학도병, 소년병들이 ‘기꺼이’ 참전했다고 적혀 있다(313쪽).

최근 광장에서 많은 청소년들을 보았다. 추운 날씨에 얇은 교복을 걸치고 손을 호호 불며 아이들은 서로 초와 종이컵을 나누었다. 내 눈에는 아기에서 조금 더 컸을 뿐인 것처럼 보이는 10대 학생들이 토요일의 휴식도, 〈메이플 스토리〉 레벨업도, 〈무한도전〉 본방 사수도 포기한 채 거리에 나와 짐짓 심각한 얼굴로 촛불을 들고 있었다. “왜 나왔어요?”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여러 가지를 말했다. 세월호, 정유라, 입시, 국정교과서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 주권, 민주주의….

일부 우려와 달리, 이 아이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마음이 너무나 투철해서 거리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다. 아이들이 나라를 지키는 나라가 좋은 나라인가? 나라가 아이들을 지켜주는 나라가 아니라 말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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