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있는 탄핵이었다. 기권 1, 찬성 234, 반대 56, 무효 7표. 마치 짠 것처럼 1부터 7까지 숫자가 나란했다. 앞으로 근현대사 시험 볼 후손들이 부럽다. 외우기 얼마나 쉬워, 1-234-56-7. 대통령도 ‘민의에 따라’ 질서 있게 퇴진해주면 좋을 텐데. 꼭 헌법재판소까지 가서 저 숫자 뒤에 ‘8’(내년 1월31일 임기가 끝나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물러나면, 헌재 재판관은 8명이다)을 붙여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다음은 박근혜 ‘9’(구)속…? 어쨌든 탄핵 가결 순간만은 브렉시트와 트럼프로 인해 고통받는 영국과 미국의 인민들에게 자랑하여 마땅한 순간이었다. 봤지? 한국 이런 나라야. ‘국뽕’이 차오른다.


박 대통령은 직무 정지 직전까지도 인사권을 행사했다. 신임 조대환 민정수석은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이석태 위원장 사퇴, 특조위 해체 등을 주장했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결근 투쟁’도 불사했던 인물이다. 박 대통령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감추고 싶은 게 ‘세월호 7시간’이라는 건 잘 알겠다. 그렇다면 12월9일자 〈조선일보〉 ‘오늘의 운세’ 코너를 보자. 박 대통령의 생년과 띠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조선일보〉는 운세 코너까지 팩트에 신경을 썼다.

탄핵 다음 국회 일정은 ‘장 지지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사진)는 지난 11월30일 기자들에게 “탄핵 관철시킨다면 제가 장을 지질게요. 뜨거운 장에다가 손가락을 넣어서 장을 지질게요”라고 말했다. 좌우간 새누리당 공보실은 빨리 장 지지기 일정을 잡아 공유해주길 바란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날 58년생 개띠 운세도 꼭 챙겨봐야겠다.

‘박근혜의 창조경제’는 탄핵 경제의 다른 말이 분명하다. 탄핵과 함께 소비심리가 살아났다. 국민들은 탄핵을 기념해 각종 경품을 주고받았다. 커피·치킨·케이크·아이스크림 쿠폰 등이 SNS를 타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오갔다. 호화로운 저녁 식사와 축하주 인증샷도 넘실댔다. 맥주 1+1, 5% 할인 등 자영업자들도 파티에 동참하며 고객 유치에 분주했다. 하야 당일 전 객실 무료 공약을 내걸었던 부산 해운대의 한 비즈니스호텔은 탄핵 가결에 의의를 부여해 정오부터 51개 객실을 무료로 제공했다. 이미 지난 6주간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상인들과 노점상들은 깨닫고 있었으리라. ‘탄핵은 대박’임을.

필리버스터로 시작한 한 해가 탄핵으로 저문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탄핵이다. 올해 성탄절 인사는 ‘메리 탄핵, 해피 뉴 대통령.’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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