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차려진 지 사흘째인 천막 농성장에는 ‘개성공단 폐쇄 결정 최순실 개입 웬 말이냐!’ ‘통일부는 뭐 했나’와 같은 문구가 쓰인 색색의 천이 매달려 있었다. 이성한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이 개성공단 폐쇄에 최순실씨가 관여했다고 폭로한 내용이다. 한 50대 남성이 걸음을 멈추고 이를 읽어본 다음 딱한 듯 내뱉었다. “(개성공단 폐쇄해서) 기업들이 돈도 못 벌게 하고, 최순실은 정말 별걸 다 했네.”

개성공단 영업기업 비상대책위원회가 12월6일 무기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300일하고도 하루가 지난 날이었다. 양동욱 마켓원 대표(46)도 개성공단 영업기업인 중 한 명이다. 2008년부터 개성에서 식자재 유통을 했다. 새로운 시장과 기회라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다. 정부가 사업의 안정성을 보장해준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매년 회사가 커갔다. 개성에 들어가는 게 신나고 설레는 일이었다. 사업을 확장해 개성의 남측 주재원이 사용하는 식당까지 문을 열었다.

그가 건네준 명함에는 여전히 경기도 안산의 본사와 개성시 개성공업지구의 지사 주소가 쓰여 있었다. ‘001-8585’로 시작하는 개성공단 전화번호와 63으로 시작하는 구내번호가 적혀 있었다. 양 대표는 “예전엔 구내번호 그냥 눌렀는데, 벌써 개성에 못 들어간 지 10개월이 넘어가다 보니 번호도 가물가물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

양 대표를 비롯한 66개 개성공단 영업기업 관계자들이 돌아가면서 밤새 농성장을 지킨다. 양 대표는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난 10개월 동안 “정부가 강조해온 지원과 보상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라며 길거리에 나섰다. 영업기업은 제조업이 아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건설·유통·서비스업 등의 회사를 말한다. 다 합치면 개성에서 매년 5000만~6000만 달러 매출을 올렸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영업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항상 후순위였다. 지난 2월10일 폐쇄 결정 다음 날 기업인 방북단에도 영업기업 쪽은 넣어주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관련 서류를 하나도 들고 나오지 못해 ‘피해금 0원’인 영업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폐쇄는 누구도 상상 못했던 터라, 내부 서류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탓에 피해금액을 산정할 근거가 없었다.

2013년에도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위기를 겪었지만, 그때는 6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열 수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양 대표는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다. 개성공단 폐쇄 후 잠을 잘 자지 못해 수면제를 처방받다가 지난 4월에는 50알을 한 번에 털어넣은 적이 있다. 공개하기 힘든 개인사까지 털어놓는 이유는 그만큼 절박해서다.

“정말이지 마음 놓고 기업할 수 있는 환경, 하다못해 정부의 잘못된 결정으로 피해를 본 이들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을 해달라. 정부만 믿고 시작한 사업이었는데, 현재 상황이 너무 참담하다. 재기할 수 있을지 두렵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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