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도 IT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과 변화가 꽤 많았다. 2016년을 기점으로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산업 지형 개편이 속속 진행되리라 보인다. 올해를 마감하면서 큰 흐름 세 가지를 꼽아보았다. 인공지능의 본격화, 온·오프라인 통합 가속화, 그리고 슈퍼 개인의 등장이다.

첫째, 올해 들어 인류가 인공지능의 위력을 본격적으로 체감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은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프로 바둑의 세계 최정상인 이세돌이 알파고에 완패하면서, 인류가 기계에 곧 정복당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감이 확산되었다. 이윽고 세계적인 코딩 교육 열풍이 한국에도 상륙해 정규 교과목에 포함되기로 결정되었고, 서울 강남에서는 코딩 고액과외와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지능을 거의 모든 면에서 압도할 수 있는 범용 인공지능(AGI)의 등장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특정한 목적에 특화되어, 인간보다 더 잘 수행하도록 설계된 약한 인공지능(weak AI)은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있다. 이젠 웬만한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다. 내비게이션이나 지도의 최적 경로 추천에도, 자율주행 기술에도, 상품 추천 및 물류배송 시스템에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인스타그램 등 SNS 추천 기능에도, 암 진단을 위한 이미지 인식에도, 심지어는 자동 기사 작성이나 자산관리에서도 두루 쓰인다. 딥러닝을 활용한 구글과 네이버의 언어 번역 기술도 정확도가 많이 높아졌다는 평이다.

ⓒ시사IN 신선영3월12일 이세돌 9단(왼쪽)이 구글 알파고와 세 번째 대국을 마친 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대화를 나누는 채팅창도 인공지능 기술과 만나면서 ‘챗봇(chat bot)’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다양한 강화학습 알고리즘들이 개발되고 발전하면서 자연어 처리(NLP)를 넘어 자연어 생성(NLG) 기술이 고도화된 덕분이다. 채팅 봇과 대화해서 물건을 주문하고 집안이나 사무실·자동차의 다양한 집기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챗봇은 아이메시지·페이스북 메신저·위챗·텔레그램 등 글로벌 메신저와 결합하면서 챗봇 플랫폼으로 변신 중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언어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을 강력하게 묶어내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둘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통합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사건들이 나타났다. 전 세계를 강타한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 열풍이다. 현실 지도에 겹쳐진 가상의 포켓몬 지도 위에 등장하는 포켓몬들을 잡기 위해 전 세계인들이 뛰고 걷고 여행을 떠났다. 해외에서는 사용자 주변에 특정 시간 동안 포켓몬 출현 확률을 높여주는 ‘향료’ 아이템을 사용했다가, 포켓몬 잡으러 온 손님들이 넘쳐서 매출이 급증했다는 피자 가게 주인 이야기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매출이 수직상승했다는 무용담이 들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하나처럼 붙어버리는 ‘온·오프라인 믹스’ 현상은 앞으로도 꾸준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적용된 실시간 방송 기능은 미국 대선 토론 공유, 특히 한국에서는 촛불집회 실시간 생방송 등을 통해 SNS 이용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기능이 되었다. 전 세계 어디에 있든 생방송으로 현장 분위기를 접할 수 있고, 댓글이나 감정 표현 등으로 적극적인 의사 표현도 가능하다.

멀게만 느껴지던 가상현실(VR) 기술도 어느덧 손에 잡힐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원격회의 장면을 시연했다. 마치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행성 간 홀로그램 대화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아바타를 띄우고 표정이나 제스처를 실제와 유사하게 재현하며, 대화를 나누는 배경화면도 깊은 바닷속에서 화성으로, 다시 페이스북 사무실 현장 실황에서 저커버그 집 거실 소파로 돌려 반려견의 움직임을 보도록 바꿀 수 있었다.

ⓒAP Photo7월20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젊은이들이 포켓몬 캐릭터 의상을 입고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를 즐기고 있다.
‘인플루언서’ ‘왕훙’들의 세상 열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붙어갈수록 사용자 경험(UX)을 최대한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버튼 하나하나 눌러야 실행할 수 있었던 웹의 UX에서, 당기고 밀고 흔들고 터치하면 바로 구현되는, 현실과 가상이 끊김 없이 매끄럽게(seamless) 이어지도록 사용자 경험을 재설계하는 것이 점점 중요해진다. 세계적으로 히트하는 인스턴트 메신저 스냅챗이나, 요즘 아시아권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동영상 메신저 ‘스노’ 등에 적용된 필터 기능, 그리고 직관적인 유저인터페이스(UI)와 매력적인 이미지로 어필하는 인스타그램, 그리고 국내 패션 커머스 업체 29CM처럼 직관적인 UI 구성으로 패션 아이템을 판매하는 커머스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 ‘슈퍼 개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생태계가 실체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미국에서 유튜브 동영상만으로 중소기업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인기 유튜버들이 등장한 것이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여기에 웹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마다 메시지 파급력과 영향력이 높은 개인들을 키우고, 이들을 통해 다른 유저들을 잡아두려는 접근이 일반화되면서, 이른바 ‘인플루언서’라 불리는 ‘슈퍼 개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중국 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슈퍼 개인 ‘왕훙(網紅·인터넷 스타)’들을 매개로 한 시장 규모는 이미 18조원을 넘어섰고, 앞으로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왕훙들은 실시간 방송 콘텐츠를 통해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의 팬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한다. 이들은 콘텐츠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네이티브 광고로 매출을 올리기도 하고, 최근에는 방송을 통해 직접 상품을 판매하거나 행사장 혹은 오프라인 상점을 방문해 스마트폰으로 방송하면서 모객에 나서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 창출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도 개인들이 콘텐츠를 생산해 방송하는 ‘MCN’ 및 개인들의 영향력을 끌어다 제품을 판매하는 ‘인플루언서 커머스’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슈퍼 개인’들의 사회적 자본을 현금화·시장화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중국의 왕훙들이 보이고 있는 왕성한 상업 활동이 곧 국내의 ‘슈퍼 개인’들 사이에서도 성행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의 본격화, 온·오프라인 통합, 슈퍼 개인의 등장은 2017년은 물론 그 뒤에도 계속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 흐름을 타고 진행될 일련의 변화들이 기존 일자리를 파괴할 수도,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도 있다.

기자명 이종대 (데이터블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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