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느끼는 해방감과 일상에서 마주하는 무력감의 간극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헌법을 부정하고 부패를 일삼은 최고 권력자의 퇴진을 목소리 높여 부르짖었던 주말 저녁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월요일 아침이 돌아오고 괴로운 한 주가 이어진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노동을 하며 겪는 고통은 단순히 임금이 적고 야근이 잦은 문제로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일터에서 좀 더 본질적인 인간 존엄의 위기를 발견한다. 직장 상사는 직원의 태도나 인격을 꼬집으며 모욕적인 비난을 내뱉고, 회의 자리에서는 사소한 실수가 전체 임직원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주변 동료들의 냉담함이나 은밀하게 들려오는 험담을 경험하고, 때로는 주어진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없는 과도한 업무를 배정받기도 한다.

교실에서 나타나는 풍경이 그러하듯, 일터의 폭력 또한 날이 갈수록 은밀하고 교묘해진다. 피해자는 고통을 드러내는 데에 수치심을 느끼고, 가해자는 폭력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그러나 직장인의 70~80%가 일터에서 크고 작은 괴롭힘을 겪는다는 통계 자료들은 ‘일터괴롭힘’ 현상이 특별한 소수의 불운이 아님을 보여준다.

원칙적인 논의로 돌아가자면 근로계약서와 노비 문서는 다르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노동은 임금을 대가로 삼는 노동력의 교환 행위이지, 사업주나 직장 상사에 대한 인격적 종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상사는 나의 업무에 대한 공적인 가이드와 피드백을 제시할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혐오를 드러내거나 모욕감을 안길 권리는 없다.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류은숙·서선영·
이종희 지음
코난북스 펴냄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에 사로잡힌 누군가에게 ‘사회생활이 원래 그런 거니 참아라’ ‘한가한 하소연은 내려놓고 일이나 열심히 해라’ 따위의 조언은 도움이 안 된다. 내가 참고 견디는 시간 동안 기업 조직의 적폐는 쌓여가고 갓 입사한 사람들은 더 나쁜 구조를 마주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폭력과 고통이 시스템이라는 이름 속에 녹아들어 그 원형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지속되면 파국이다.

어쩌면 이 나라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촛불을 들었다는 광장의 용기가 일상에서도, 일터에서도 필요할 것 같다. 은밀한 괴롭힘에 불편함과 부당함을 호소할 용기. 고통받는 누군가를 방관하지 않고 연대의 손길을 내밀 용기. 나는 이 작은 용기들이 모일 때 우리의 일터가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은 일상의 좌절과 용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론적·실천적 안내서이다.

기자명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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