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최근의 정국은 창작자들의 술상에도 어쩔 수 없이 오르는 술안주다. 서사 작법의 경계를 붕괴시킨 이 거대한 비리의 서사시는 가히 알파고의 신수에 무기력했던 프로 바둑기사들의 절망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주연의 주도성이 확연히 떨어지고 조연은 난데없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확장한다(심지어 주연은 우는 연기조차 잘 못한다).

하지만 2016년만 본다면 우리는 이 거대 엽기 서사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흥미로운 사건은 흥미로운 인물로부터 나온다’라는 이야기의 기초에 따라 우리는 사건보다 조금 더 인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인물의 객관적 연보를 따라가 보고 인생의 비약 포인트를 좀 더 정교하게 따져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초심자의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자신이 납득하기 위해 인물을 점점 논리 정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언제나 갈등의 순간에 납득 가능한 ‘이유’가 있었고 그 결과가 ‘지금’이라는 식으로.

현재의 엽기 서사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인물’을 논리 정연한 캐릭터가 아니라 부조리함을 간직한 인간의 지위로 만들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했는지 따져보면 그(녀)의 공포와 두려움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녀)’를 알기 위해 ‘누구’부터 그리고 ‘언제’부터 들여다봐야 하는 것일까.

1959년 11월 미국 캔자스 주 홀컴이란 마을에서 농장주 클러터 씨의 일가족이 살해당한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저자 트루먼 커포티는 〈뉴욕 타임스〉에 실린 이 사건 기사를 읽고 〈앵무새 죽이기〉의 저자 하퍼 리와 함께 홀컴 시로 향한다.

〈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시공사 펴냄
〈인 콜드 블러드〉는 이곳에서 6년여간 취재한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우발적으로 보이는 이 살인 사건은 범인들의 우연과 필연, 내적 논리와 망상, 의식과 무의식이 망라된 비극적 파멸극이다. 커포티는 ‘사건’에 매몰되지 않고 ‘인물’에 집중함으로써 턱을 괴게 만드는 범죄 논픽션을 완성한 것이다.

2016년 우리는 현재의 사건을 허겁지겁 따라가는 뉴스에 파묻혀 있다. 그 뉴스를 보는 우리 역시 숨차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십으로 사건을 소진해버리는 사이에 이 괴이한 사건의 심층을 들추는 기사는 얼마든지 있다. 그 기사들로 인물의 내면을 들춰보게 됐을 때, 이 엽기 서사시는 숨차게 따라가야 하는 새로운 장르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우리가 질리도록 봐왔던 고루한 신파극의 탈을 쓴 삼류 범죄극이란 걸 알 수 있게 된다.

기자명 윤태호 (만화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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