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부상〉은 근래 읽은 가장 무서운 책이었다. 가장 실감나고 현실적인 디스토피아의 비전 때문에. 올봄의 기억할 만한 이슈 중 하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대국’일 것이다. 영화가 아닌 서울에서의 ‘인간과 기계의 대결’은 흥분되는 장면이었다. 결과는 알파고의 완승. 이런 식으로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발달한다면 미래는 장밋빛일까, 잿빛일까. 〈로봇의 부상〉을 읽고 난 뒤의 예감은 후자였다.

책의 부제는 ‘인공지능의 진화와 미래의 실직 위협’. 단순히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그것이 정치·경제와 어떻게 연결돼 어떤 미래를 예비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결론은 인공지능(AI)이 일자리 대부분을 차지할 거라는 얘기. 이미 로봇이 햄버거를 굽고, 아몬드를 따고, 창고를 관리한다. 자동차도 마찬가지. 제조는 기본, 운전도 알아서 한다. 문제는 이렇게 상용화될 자율주행 자동차가 엄청난 고용 문제를 가져올 거란 점이다.

그래도 인간 고유의 능력·창의성이 필요한 분야는 침범하지 못할 거라고? 나도 글쟁이인지라 내심 이런 안도감과 자부심을 품고 있었지만 그거야말로 오만과 순진이었다. 이미 AI가 쓴 소설이 일본의 한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했다지 않은가. AI가 교향곡을 쓰고 렘브란트풍의 그림을 그렸다. 미국에선 로봇이 야구 경기 기사를 쓴다. 증권시장 거래의 70% 정도를 이미 자동화한 거래 알고리즘이 하고 있다. 이렇게 고숙련 일자리마저 AI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인간에게 남겨질 자리가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두려울 정도다.

자동화를 멈추거나 늦추면 되지 않느냐고? 자본은 그렇게 선하지 않다. “밝은 미래가 예상되는 투자처 몇 군데 중 하나(는)… 인력 절감 기술이다.”(347쪽) 섬뜩한 문장이다. 누구에게 밝은 미래인가? 기술과 자본

〈로봇의 부상〉
마틴 포드 지음
이창희 옮김
세종서적 펴냄
을 독점한 0.1%이다. 양극화는 더욱 치명적일 것이다. 소득이 없는 다수는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될 것이다. 폭동이나 혁명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그쯤 되면 아마도 로봇(을 소유한 권력)이 그것을 진압하게 되겠지.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로봇은 물건을 사지 않는다. 게다가 아무리 갑부라도 휴대전화를 1000대나 사지는 않는다. 로봇으로 인해 늘어난 생산성이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어떻게 될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구매력을 직접 재분배하면 된다. 어떻게? AI로 논의를 시작했던 저자가 내놓은 해법은 BI(Basic Income), 기본소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에 시동이 걸렸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재원이다. 어떻게? 그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할 설득력 있는 근거와 힌트가 이 책 속에 있다.

기자명 허은실 (시인·방송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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