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학생이 총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요지는 이랬다. ‘교내 전산망에 입력한 정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누락됐다. 이 때문에 관련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불편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담당 직원이 책임을 회피하고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다.’ 해당 부서는 부랴부랴 그동안 주고받은 이메일과 통화 내용을 정리하고 경위서를 작성하느라 진땀을 뺐다. “학생의 실수”라는 실무 부서의 주장과 “분명히 입력을 완료했다”라는 학생 주장이 엇갈렸다. 현실적으로 진상을 밝히기 어려운 상황, 총장까지 끌어들인 갈등은 감정만 소모한 채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또 다른 학생도 총장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기숙사 규정이 학생 활동에 방해가 된다”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이 학생은 총장과 직접 면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무 부서에서 수차례 검토하고 보고한 사안이라 총장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소득 없이 돌아온 이 학생은 “대학의 규정이 스스로 내세운 교육철학과 맞지 않는다”라며 답답해했다.
 

ⓒ김보경 그림


나이나 직책에 위축되지 않고 자기주장을 펼치는 학생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교직원 처지에서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왜 총장실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던 걸까. 이들에게 일선 행정 부서나 공식적인 행정절차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걸까.

대학 행정부서에 대한 이미지를 학생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별로 안 바빠 보이는데 중요하거나 유익한 공지는 매번 한발 늦는다” “급한 일인데 담당자가 휴가를 가거나 자리에 없으면 일처리가 안 될 때가 많다” “애매한 업무는 자기 담당이 아니라면서 다른 부서나 직원에게 미룬다”…. 사실 여부를 떠나 학생들 마음속에는 대학 행정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자주 드나드는 학과 사무실보다는 전체 대학 운영을 맡은 대학본부의 행정 처리와 의사 결정에 불만이 많았다.

행정조직을 움직이는 ‘나쁜’ 손

구성원들의 불신과 냉소는 오랜 기간에 걸쳐 몸에 밴 행정 편의주의, 하향식 결정과 지시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직 문화 탓이다. 실무자는 명시된 규정과 절차를 따르거나 전임자의 업무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아 진행하면 문제가 없다. 구성원들이 거기에 순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규정 자체를 문제 삼거나 업무 처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자기 사정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학생이거나, 도와주기는커녕 딴죽만 거는 까다로운 교수로 여겨진다.

그러다가도 ‘총장님 지시사항’이라는 단서가 붙으면 사나흘 묵힌 일도 하루 만에 처리하는 민첩함이 발휘된다. 게다가 행정 피라미드의 정점인 총장에게 누군가의 민원이 직접 전달됐다면, 해당 직원은 며칠간 잠자리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라며 공감하거나, 놓친 부분은 없는지 전후 사정을 꼼꼼히 따져보고 해결 방안을 고민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건 누가 결정했느냐” “총장님께 직접 말씀 드리겠다”라면서 따지는 학생과 교수들. 이들은 행정조직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다.

행정 직원들은 “학생들이 자기 입장만 생각한다” “행정 업무에 대한 이해가 없다”라며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 우리가 동사무소나 구청을 매일 드나들지 않는 것처럼, 사실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행정 부서에 들르거나 교직원들과 장시간 마주할 기회가 많지 않다. 어쩌다 한두 번 마주한 행정 직원의 이미지가 전체 행정 시스템에 대한 오해를 줄 수 있다. 원칙과 유연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다가도 총장이나 보직자가 친한 교수나 외부인의 사정을 들어주라고 주문할 때면, 특혜와 융통성 사이에서 곤혹스러워지는 고충도 있다.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행정부나, 장관이 지시해야 움직이는 공무원을 국민은 신뢰하지 않는다. 교육과 연구를 지원하는 공공 서비스로서 대학의 행정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학 행정 서비스는 어떤 것일까. 분명한 것은 캠퍼스의 대통령은 총장이지만, 캠퍼스의 주인은 총장도 교직원도 아니라는 점이다.

기자명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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