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윽, 이 빨간 피는 뭐야~.” 스테이크를 처음 본 윤희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양새에 질겁했다. 그랬던 윤희가 스테이크를 잘 먹게 된 계기는 별것 아니다. 집에서 구워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집에서 스테이크에 도전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비싼 고깃값도 그렇지만 맛있게 굽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미션은 아니다. 한 번 정도 고기 굽기에 실패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누구든 확실히 잘 구울 수 있다. 게다가 외식 1인분 비용으로 4인 가족이 스테이크를 즐길 수도 있다.

집에서 스테이크를 구울 때는 설도를 사용한다. 설도는 가격이 저렴한 쇠고기 부위로 국거리·불고기 감으로 주로 쓴다. 수입산 100g에 2000~3000원, 한우는 4000~5000원 정도다. 두툼하게 썰어 스테이크로 먹는 부위지만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설도로 스테이크를 굽기 위해서는 약간의 수고가 필요하다. 바로 ‘숙성’이다. 요즘 좀 뜬다는 고깃집에 가보면 상당수가 숙성육을 쓴다. 쇠고기에 불어닥친 숙성 열풍이 최근에는 돼지고기에까지 분다.

대체 숙성육이 뭐기에 이렇게 인기인지 궁금해하지만, 사실 우리는 잘 모르고 먹는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근육을 풀어서 먹는 것이다. 소나 돼지를 도축하면 하루 사이에 사후경직(근육의 에너지가 사라져 근육이 딱딱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냉장 온도에서 숙성시키면 고기에 있던 효소가 근육을 절단해 부드럽게 만든다. 근육이 단백질로,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 과정이 바로 숙성이다. 숙성이 잘된 고기는 요구르트 향이나 치즈 향이 나고 감칠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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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숙성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건조 숙성(dry aging)과 습식 숙성(wet aging)이다. 건조 숙성은 냉장 온도에서 바람을 쏘이는 방법이고, 습식은 진공포장을 해 일정 기간 숙성하는 방법이다. 가정에서 건조 숙성을 하기는 어렵지만 습식 숙성은 손쉽게 할 수 있다. 정육점에서 진공포장한 고기(정육점마다 진공포장기가 다 있다)를 사서 김치냉장고에서 보름 이상 보관하면 끝이다. 김치냉장고가 없으면 얼음을 채운 밀폐 용기에 고기를 넣고 일반 냉장고에서 숙성시켜도 된다. 자주 여닫게 되는 일반 냉장고는 온도가 일정치 않기에 숙성 공간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이렇게 하나씩 꺼내 요리하면 된다. 스테이크뿐만 아니라 잘게 잘라서 불고기나 국을 끓이기도 한다.

고기를 잘 굽는 방법은 타이밍

밥 짓는 사이에 고기를 꺼내 소금을 뿌려 간이 충분히 배도록 한다. 고기는 밥을 뜸 들일 때 굽는다. 뜨겁게 가열한 프라이팬에 고기를 올린다(환기는 필수다. 연기가 무척 많이 난다). 치이익~ 소리를 내며 이내 고기가 갈색으로 변한다. 뒤집어서 한 번 더 굽고 올리브오일을 넣은 뒤 불을 중간 정도로 줄인다. 고기 표면이 짙은 갈색으로 변하면 버터 한 조각을 넣고(버터를 넣으면 풍미가 훨씬 좋아진다) 불을 약하게 줄여 앞뒤로 한 번씩 더 굽는다.

고기를 잘 굽는 방법은 타이밍이다. 오일과 버터를 넣는 타이밍은 두어 번 해보면 감이 온다. 스테이크 요리의 마지막 단계는 ‘뜸’이다. 밥을 뜸 들이듯, 고기도 뜸을 들여야 맛있어진다. 구운 고기를 잠시 식혀야 육즙이 골고루 퍼진다. 소스는 따로 만들지 않는다. 갖가지 소스를 만들어 먹어봤지만, 소금에 찍어 먹는 게 제일이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맛있게 먹는 게 최고다.

며칠 전이다. 40일 넘게 숙성한 고기를 꺼내 구웠다. 대개 20~30일 숙성시키지만 까먹고 있었다. 막상 구워보니 맛이 기가 막혔다. 요구르트처럼 산뜻한 향이 났다. 숙성이 잘못되면 썩은 향이 난다. 그런 것은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고기를 먹던 윤희가 한마디 했다. “찔겨(된소리가 날 만한 질김이었다).” 잠시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아내가 고기를 깍둑썰기해버렸다. 4~5㎜ 정도로 얇게 썰어야 맛있는데 말이다. 아무리 고기가 좋고 잘 구워도 잘 자르지 못하면 질겨진다. 윤희한테 스테이크 구워주고 오랜만에 핀잔을 들었다. 아내는 일 때문에 나가고 없었다. 자르지 말고 그냥 나가지!

기자명 김진영 (식품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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