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컴퓨터가 막 보급되던 시절, 화면을 통해 출력된 그림은 픽셀(이미지를 이루는 화소)의 개수를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해상도가 낮았다. 시스템 최대 용량이 요즘 사진 파일 한 장보다 작은 시절이었다. 당시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제한된 화소와 색상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도트 노가다’를 했다. 마치 점묘화를 그리는 것처럼 일일이 픽셀을 찍어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진 픽셀 아트는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단순하지만 개성 있는 조형미가 느껴지는 데다 디자이너의 감각과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어서다.

디지털 그래픽의 고전적인 기법이 픽셀 아트라면, 만화의 고전적인 기법은 펜화이다. 펜은 인쇄용 그림을 그리기에 적합한 도구인 동시에, 선의 굵기를 조절하면서 다양한 느낌을 표현해낼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만화를 보는 시대가 오면 만화에서 펜화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만화이론가 스콧 매클라우드는 2000년에 쓴 〈만화의 미래〉에서 모니터의 해상도에는 제약이 있기 때문에 고전적인 펜화는 화면에서 깨져 보일 것이고, 이를 보완할 기법이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책이 나온 지 16년이 지난 지금, 그의 예측은 반쯤 맞았다. 웹툰에서 펜화는 여전히 지배적인 기법이다. 모니터 화면의 해상도가 높아져서 인쇄물의 해상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고, 프로그램과 입력장치 또한 발전해서 펜화의 느낌을 쉽게 흉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에 맞춰 문화가 달라진 게 아니라, 기술 자체가 빠른 속도로 발전해 문화에 적응한 사례다. 그런데 그가 예측한 것처럼 펜화가 아닌 작화 기법을 활용한 만화들도 다수 등장했다. 이번에 소개할 만화도 그중 하나이다. 가스파드 작가가 네이버 웹툰에 연재 중인 〈전자오락 수호대〉이다.

이 작품은 비디오 게임의 세계를 유지하고, 게임 속 등장인물의 역할을 조율하는 ‘수호대’가 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수호대의 역할은 마치 방송국의 PD와도 같다. PD가 방송 화면에는 나오지 않듯, 수호대도 플레이어가 눈치 채지 못하게 게임의 세계를 조율한다. 수호대는 플레이어 몰래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주인공 ‘패치’는 원래 잘나가던 모바일 게임의 수호대였지만 플레이어에게 발각당하는 사고를 낸 후,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고전 게임 부서로 좌천된다. 그곳에서 그는 게임 속의 적 캐릭터와 도무지 싸우려 하지 않는 이상한 플레이어를 만나고, 그가 게임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몰래 뒤를 따르며 돕는다.

캐릭터의 소속에 따라 달라지는 작화 기법

〈전자오락 수호대〉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그가 속한 게임에 따라 다른 기법으로 그려진다. 주인공 패치는 모바일 게임 부서에 있을 때는 매끈한 디자인이었지만, 고전 게임 부서로 발령되면서 도트가 눈에 보이는 픽셀 아트로 그려진다. 이야기가 대부분 고전 게임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픽셀 아트는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기법이다. 액션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3D 모델로 렌더링된 근육 마초이다. 퍼즐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은 얇은 종이판처럼 보인다. 작품에 사용된 다양한 기법은 독자로 하여금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고전 게임의 세계는 낡고 쇠락한 곳이다. 게임 속 등장인물들은 서로 내분을 벌이거나 과거의 영광에 취해 변화를 거부한다. 주인공 패치는 그러한 고전 게임의 세계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 플레이어가 끝까지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한다. 천진난만한 주인공과 그를 돕는 조력자가 함께 모험을 떠나는 내용은 소년 만화의 주요한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전자오락 수호대〉는 지금까지 나온 웹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참신한 작화 기법을 활용하는데, 그 속에는 고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기자명 박해성 (만화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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