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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빠, 녹색어머니회에 뛰어들다

2017년 01월 04일(수) 제486호
정리·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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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모 특강③ 남태일 편


2016 부모 특강-길을 찾다 길이 된 사람들

제1강(11월29일) 이준호 ‘희귀질환 아들로 새 길 찾은 인공위성 연구원
제2강(12월6일) 김종호·김경아 ‘딸 부잣집 사교육 탈출기’
제3강(12월13일) 남태일 ‘동네 아버지들:녹색어머니회와 맞짱 뜰 녹색아버지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남태일 관장은 학교 녹색어머니회에서 일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말한다. 주변 부모와 이웃들을 만나게 된 것이 그 첫 번째다.

남태일(부천 언덕위광장 도서관장)

도서관장, 목사, 시민운동가…. 그의 이력은 다채롭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녹색어머니회 회장’. 남자인 그는 어쩌다 어머니회에 뛰어들게 된 것일까. 일에 치여 가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아빠들을 위한 새로운 교육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남태일 언덕위광장 도서관장의 얘기를 들어 본다. 이 강좌는 지난해 12월13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2016 부모 특강’ 세 번째 시리즈로 진행됐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스테이크 사진을 스크린에 띄우며) 보시다시피 스테이크다. 개인적으로 별로지만 두 딸은 무척 좋아하는 음식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매일 이런 스테이크를 먹는 삶이야말로 행복하다.’ 어쩌면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런 얘기를 반복해 들으며 학습해온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하려면 스테이크를 먹어야 한다고 다들 말하니까. 나 자신이 스테이크를 좋아하는지 아닌지조차 알지 못한 채 ‘학습된 욕망’으로 스테이크를 향한 질주본능을 발동시켜온 것이다.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어릴 적에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사 먹으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그러려면 결국 공부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구나 생각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했다는 건 아니다(웃음). 공부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스테이크 강요하는 ‘학습된 욕망’의 사회

그러다 조금 머리가 커지면서는 스테이크 말고도 입맛에 맞는 다른 음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게는 그것이 물리학이었다. 흔히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라고 한다. 천재 아니면 바보. 대부분 자기가 천재일 줄 알고 시작했다가 바보임을 깨닫는 게 물리학도의 비극이라는데, 내가 꼭 그랬다. 학문은 재미있는데 이걸 갖고 졸업 후 뭘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1990년대 초반 시작한 게 입시학원 강사였다. 당시는 입시학원이 엄청 잘나가던 때였다. 깃발만 꽂아놓아도 수강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학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보충수업 따위가 시작돼서 그렇지, 그때까지는 수업도 정확히 주 5일만 했다. 배부르고 넉넉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여유가 생기고 나니 오히려 ‘그래서 과연 행복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더라. 전혀 아니었다. 뷔페 식당이란 게 그렇지 않나?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즐비해도 결국에는 내 입맛에 맞는 몇 가지에만 손이 갈 뿐이다. 나머지는 그저 낭비 요소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때까지와는 다른 세상에 눈을 돌리게 됐다. 그때가 서른세 살 무렵이었는데, 뒤늦게 신학이며 심리상담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진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남이 차려놓은 식탁을 기웃댈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식탁을 차려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계속 식탁 비유를 드는 건 2016년 한 해 가족과 함께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심은 작물이 쑥쑥 자라는 걸 볼 때는 희열을 느꼈지만 심한 가뭄에 작물이 썩어 나갈 때는 좌절스러웠다. 아이들도 평소에는 당근을 안 먹더니 직접 기른 당근은 우적우적 맛있게 먹곤 했다. 그걸 보면서 내가 직접 차린 밥상이야말로 세상의 다른 식탁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도 ‘맛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벌이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누가 나더러 물으면 좀 난감하다. 도서관 관장, 목사, 시민단체 활동가 중 뭐라 답해도 돌아올 반응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세요? 어떤 가치로 살아가세요?” 같은 질문을 받고 싶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맛있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며 좌충우돌 하는 중이다’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잠만 자던 동네’를 어느 날 다시 보다

구체적인 얘기에 앞서 내가 사는 동네를 먼저 소개드리겠다. 나는 경기도 부천시 역곡이라는 동네에서 36년째 살고 있다. 연고가 전혀 없는데 어쩌다 보니 이 동네에 와서 살게 됐다. 혼자 살 적에 역곡은 그저 잠만 자는 동네였다. 밤늦게 들어와 아침 일찍 나가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서울에 있는 학교나 직장을 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살면 안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개과천선을 해서가 아니다(웃음). 그보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이 되니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길이 안전한가?’ ‘아이 다닐 초등학교는 어떤 데지?’ 하는 의문이 들면서 동네에 처음으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와 아내에게는 역곡이 잠만 자는 동네지만 아이에게는 나고 자란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아이를 위해서라도 역곡이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동네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좀 더 행복한 경험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학교였으면 좋겠고.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그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게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긴 한데, 실제로는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학부모 총회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아이를 처음 학교에 보낸 나는 학부모라면 무조건 그런 자리에 참석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아이가 있는 1학년 1반에 갔더니 담임 선생님이 봉사활동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녹색어머니회 5명, 어머니 폴리스 2명, 도서분과원 2명’ 자원을 부탁했다. 상황 파악이 안 된 채 녹색어머니회를 해보겠다며 손을 번쩍 들었다. 어릴 적 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해주던 엄마들의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던 기억이 남아있어서였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녹색어머니회를 할 사람은 학년 모임에도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멋모르고 학년 모임 자리에 갔는데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선 순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미리 와 앉아 있던 엄마들이 나를 보자마자 “이분이 회장님 하시면 되겠네요”라면서 일제히 환호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내가 아버지로서는 유일한 참석자였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그 바람에 졸지에 녹색어머니회 회장을 맡으면서 학교 일에 발을 들이게 됐다.

그러면서 도서분과 봉사도 하게 됐다. 도서관 문제에는 본래부터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학교 도서분과 대표를 맡은 분이 내게 부천교육지원청에서 진행하는 ‘학부모 명예사서 워크숍’에 함께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그날 워크숍을 다녀오고 페이스북에 내가 쓴 글이 있다.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혼자로는 불가능하다. 오늘 도서분과 교육을 받고 다시 느꼈다. 먼저 엄마들과 함께 북셰어링을 해야겠다. 운동이 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그날 비로소 동네를 변화시키려면 일단 주변 엄마들과 접촉부터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다.

내 결심을 접한 도서분과 대표분은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라고 망설이면서도 “사람 모으는 일을 맡아서 해보겠다”고 나서주셨다. 그렇게 엄마들 다섯 명과 함께 ‘행꿈사(행복을 꿈꾸는 사람들)’라는 책 읽기 모임을 시작하게 됐다. 모임에서 맨 처음 읽은 책은 EBS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긴 <학교란 무엇인가>였다. 그 뒤 <아깝다 학원비> <핀란드 교육혁명> 같은 책도 함께 읽었다. 2012년 시작된 이 모임은 인원을 계속 늘려가며 벌써 5년째 운영되고 있다. 치맛바람이나 일으키는 엄마 모임이 아니라 정말로 교육을 걱정하고 동네 문제를 나누는 모임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주변 반응도 좋은 편이다.

그 와중에도 내 고민은 여전히 아빠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녹색어머니회에 가서도 나는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이래서야 아버지들이 올 생각을 하겠냐면서. 사실 학교에서 아빠들을 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아빠들을 어떻게 만남의 장으로 끌어낼까, 궁리하다 내가 제안한 것이 ‘아꿈사(아빠와 꿈을 찍는 사진관)’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짜장면…첫 출사의 추억

아빠들이란 게 아이들과 놀고 싶어도 뭘 하고 놀아야 할지를 모른다. 그러니 아이들한테 공 하나 던져주고 자신은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다. 사실 아이들과 뛰놀기에는 아빠들이 너무 지쳐 있기도 하다. 주말에 아빠들이 소파와 일체형이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이런 악순환이 반복될수록 아빠들은 가정에서 점점 더 설 자리가 없어질 뿐이다. 이런 아빠들을 위해 아꿈사를 만들어보고 싶다며 엄마들한테 도움을 청했더니 길이 생겼다. 책읽기 모임 엄마들이 자기 남편 등을 떠민 것이다. “당신도 모임에 좀 나가 봐. 저런 데 나가봐야 사람 돼” 하면서(웃음).

ⓒ남태일 제공
‘아꿈사’는 육아에서 소외된 아빠들이 만든 모임이다. 조끼를 맞춰 입고 아이와 함께 캠핑도 가고, 동네 포럼도 진행한다.

아빠들이 처음 만났을 때는 서먹서먹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그중 한 분이 마침 스튜디오를 운영하신다기에 그분이 강사가 되어 사진 공부부터 시작하게 했다. 그러다 첫 출사도 하게 되었다. 장소는 학교 운동장. 준비물은 마음대로 가져오게 했다. 축구공에서 썩어가는 자전거까지 별별 것이 다 등장했다. 이걸 갖고 신나게 놀았다. 우리 딸도 그날 처음 내게 자전거를 배웠다. 출사를 마친 뒤로는 숙직 선생님한테 허락을 받아 짜장면이랑 탕수육을 시켜 먹기도 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먹는 짜장면과 탕수육이라니…. 아이들한테는 기가 막힌 경험이었을 거다.
그 날 이후 아이들은 서로 형·동생이 되어 친해졌다. 아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전까지 아빠들은 동네에서 서로 스치듯 지나가며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런데 아꿈사로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되면서 퇴근길에 전화해 “형님, 저 지금 집에 들어가는 길인데 저녁 같이 먹을래요?”라고 말하는 사이로 발전한 것이다.

그 뒤로도 출사 모임은 계속 이어져 학교 축제 때 따로 학부모 활동 부스를 차릴 정도가 되었다. 2016년에는 아빠와 아이의 가을 캠핑을 주관하기도 했다. 40명 정원으로 준비한 행사인데, 모집 첫날 130여 명이 지원해 깜짝 놀랐다. 아빠와 아이들만 떠난 캠핑이다 보니 아침 메뉴도 라면으로 정해 짜장라면에서 하얀 국물라면까지 아예 ‘라면 뷔페’를 차렸다. 엄마들과 함께 갔다면 질색했을 메뉴다(웃음).
아꿈사는 단순히 모임으로만 그치지 않고 학교에도 ‘침투’했다. 학교가 좀 더 개방되고 교육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였다. 그러려면 가장 좋은 방법이 학교 운영위원이 되는 것이라기에 아꿈사 회원 몇몇이 운영위원에 출마했다. 알고 보니 학교 운영위원회란 게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다. 학교에서 안건을 올리면 ‘땅땅땅’ 치고 통과시켜주는 정도? 그래도 운영위원을 하면서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구나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학부모회와 협력해 학부모 교육도 정기적으로 시작했다. 특히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처벌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그 아이들을 어떻게 온전하게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회복적 정의’ 관점의 평화교육을 진행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 나중에는 ‘역곡 피스브릿지’라는 연합 모임도 생겼다. 역곡 북부에 있는 초등학교 3곳과 남부에 있는 초등학교 3곳 학부모들이 모인 단체다. 멋지지 않나?(웃음)
그렇다고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던 것은 결코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힘든 순간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 가치관이 충돌할 때가 힘들었다. 이를테면 ‘우린 아이들이 잘 노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험에 묶여 경쟁에 매몰되지 않게끔 인증제 같은 건 다 없애버리자’라고 주장하면 ‘그래도 인증제가 있어야 아이들이 공부하고 책도 읽는다’는 식의 반대의견이 대두되곤 했다. 이런 분들을 설득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그뿐 아니다. 아빠들이 학교를 왔다 갔다 하니까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 사람들 뭐야? 사업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가 여러 가지 활동을 시작하자 “뭔가 정치적 목적 같은 게 있는 거 아냐?”라는 식으로 우리를 욕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자니 힘도 빠지고 지치고 그랬다. “우리가 이런 일을 꼭 해야 해? 누구 좋자고?” 하는 얘기가 절로 나왔다. 그렇지만 아빠들끼리 많은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이르게 된 결론은 이것이었다. “힘들다. 그렇지만 해야 하니까 하자.”

사실 오늘 내가 강의하려 서 있는 이곳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처음부터 선행학습금지법이나 출신학교차별금지법 같은 게 통과되리라 확신해서 관련 운동을 해왔던 게 아니지 않나? 하다 보니 실제로 법이 만들어지고 가능성이 열렸던 거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어떤 가능성을 보고 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 길을 가보기로 한 것이다.  

학교를 넘어 마을 단위 작당을 꿈꾸다

이제 우리 아빠들은 학교를 넘어 마을 단위에서도 작당을 해보고자 한다. 학교에서 부모교육만 받고 끝을 내기엔 너무 아쉬웠던 이들이 2016년 마을에 ‘두빛나래 평화학교’라는 걸 만든 게 시작이었다. 이 학교에서 아이들 40여 명이 24주 동안 평화교육을 받고 지난 연말 1년 과정 수료식을 치렀다. 내가 운영하는 도서관(언덕위광장 도서관)에서 매주 부모모임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아빠들이 중심이 돼 ‘역곡포럼’도 발족했다. 말이 포럼이지, 실은 동네에서 아무나 모여 맥주 한잔 하자고 만들어진 모임이다. 그렇지만 우리끼리만 떠들다가는 배가 산으로 가니까 가능하면 외부에서 강사를 초청해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고자 하고 있다. 최근에는 ‘역곡포럼’ 깃발을 만들어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 함께 나가기도 했다.   
과거의 나는 교육에서 학부모는 되도록 뒤로 빠져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학부모는 교육의 주체다. 당연히 아빠도 교육의 주체다. 학부모·교사·학생이라는 교육의 세 주체가 친밀하게 상호 소통을 하면서 고민을 같이 나누는 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아빠들이 바뀌어야 한다. 만나서 학교와 교육과 사회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아이한테 무조건 “공부해라” 말하는 대신 아이가 마음껏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어야 한다.

<돌멩이국>이라는 동화책을 보면, 어느 날 마을에 홀연히 등장한 스님이 결국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돌멩이국을 끓이는 데 성공한다. 처음에는 냉담했던 이웃들이 하나 둘 마음을 열면서 각자 집에 있는 재료를 아낌없이 그 국솥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끓인 국을 이웃들이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장면을 보며 나 또한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세상을 맛있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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