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부딪히고 깨지는 것에는 진력이 났다. 세월을 통해 체득한 자신만의 정답도 있다. 이제 세상의 편견에 맞받아칠 줄도 안다. 하지만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 잘 모르겠다. 비혼으로 살고 싶은 서른다섯 살, 주변의 온갖 간섭에 파이팅 넘치게 싸워왔건만 불안은 시도 때도 없이 피어오른다. 미혼으로 남겨질지, 비혼을 주장할지 갈팡질팡하는 수많은 청춘에게 구원 같은 웹툰이 등장했다. 2013년 1월12일 연재를 시작한 웹툰 〈독신으로 살겠다〉(연재 완료).

유유희·구미소·이민주. 고등학교 동창 사이인 이들은 ‘화려한 싱글’을 꿈꾼다. 독신이 제가 찾은 정답인 양 기혼자들 앞에서 의기양양해하지만 실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아무도 찾지 않는 빈방에 홀로 누워 고독사를 걱정하고, 평생 제가 벌어 제 몸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사주풀이에 빈곤한 노후를 염려한다. 누군가 꺼낸 ‘서른다섯이 평범한 결혼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라는 말에 독신으로 살겠다던 다짐은 까맣게 잊고, 남아 있는 자신의 난자에게 슬픈 작별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아무리 굳건한 척 해봐도 이들은 “너네 결혼 왜 안 하냐! 어디 모자라?” 하는 윽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우일 그림
불안이 극에 달한 어느 하루, 유희는 애인에게 결혼 생각을 묻는다. 돌아온 대답은 “넌 결혼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절. 물어보는 자기도 결혼할 생각은 없었지만 몇 번이고 청혼을 했던 남자가 이제 와서 이럴 수 있나, 배신감에 부들부들 떠는 유희에게 그는 새로운 제안을 한다. “너는 네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원치 않는 것을 결코 하지 않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의무감이 따르는 제도 속에 편입될 수 없어.” 그러니까 그들이 원하는 행복의 크기를 더 키우기 위해, 서로의 다른 연인을 인정해보자는 것이다.

서른다섯 살 유희 앞에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이제는 인생의 답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비혼과 결혼의 두 가지 선택지 안에서 선택을 유예하고 있을 뿐이었다. 친구들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민주는 자발적 독신인 척하지만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부담감에 억눌려 연애나 결혼을 꿈꿀 수 없었다. 섹스 파트너를 여러 명 두고, 자신의 욕망을 충실히 구현하며 살아가던 미소 역시 주기적으로 선을 보며 결혼 시장에서 나날이 떨어지는 자기 가치에 눈물 흘리곤 했다. 모두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세상이 주는 선택지가 자신의 정답이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궤도에서 벗어나는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급한 대로 ‘독신’을 주장하는 상태이다.

몰랐어도 좋을 고통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지만

그녀들은 고심 끝에 자기와 부딪쳐보기로 결심한다. 세상과 싸우느라 방어적으로 주장하던 독신의 삶이 아니라 스스로 독신으로 살 수 있는지를 탐험하기로 한다. 민주는 12년 만에 남자를 만난다. 친구가 소개해준 애 딸린 미혼부와 매일 마주치며 그는 자신이 연애와 결혼을 ‘여우의 신 포도’로 취급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미소는 유부남이 된 과거의 애인을 만난다. 미소는 파국을 맞을 관계인 줄 알면서도 자기를 결혼의 거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그에게 다시 빠져든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를 배면서 관계가 끝나고 만다. 유희는 남자친구가 제안한 다자 연애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의 결혼으로 “관계의 중심을 우리에게 두자”라던 약속은 깨지고 이들도 결국 이별하게 된다.

처음부터 아플 것을 각오했지만 상상보다 훨씬 큰 고통이었다. 혹자는 몰랐어도 좋을 고통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 이들을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좌절한 이들을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은 곁에 있는 친구들이다. “네가 불행하면 내 인생에도 영향이 와. 네가 불행한데 나 혼자만 행복해지지 않아.” 서로를 자기 세계의 일부로 받아주는 친구들의 위로와 함께 이들은 서른여섯 살을 맞이한다. “나를 독신이라고 규정하는 것을 그만둬.” 서른여섯이 된 유희는 말한다. 그녀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결혼하지 않은 삶을 억지로 포장하지 않고, 기혼자들의 행복을 폄하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녀는 살아가려는 삶을 분명하게 그린다. 언제든 세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되, 타인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자기 인생을 사랑하고 책임지며 살아가겠다고.

그들이 미래에 결혼을 할지, 비혼주의자로 살아갈지는 모른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떤 경험을 해도 그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성장할 것이다. 그들은 자라고 있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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