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반기지 않는 법’ 하나 때문에 시끌벅적하다. 설 당일이었던 1월28일부터 시행된 이 법의 이름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이다. 줄여서 ‘전안법’이라고 부른다. 시행 직전까지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깜깜이법’이었다. 관련 뉴스도 거의 없었다.

설 연휴를 앞두고서야 이 법의 시행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해 당사자들은 격렬히 항의하고 있다. 포털사이트 카페 ‘전폐모’(전안법 폐지를 위한 모임)에 80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했고, 다음아고라 이슈 청원 ‘KC 인증(전안법)을 반대합니다’에는 2월3일 현재 14만5000여 명이 서명했다. 이해 당사자의 반발이 격렬해지자 정부는 법 자체는 시행하면서도, 일부 조항을 1년 유예했다.

전안법이 대체 뭐기에 이토록 시끄러운 걸까. 복잡한 곁가지를 떼어놓고 보면 의류를 포함한 생활용품에도 전기용품처럼 ‘KC 인증’을 의무적으로 받으라는 것이다. 과거에도 의류기업에서 만드는 옷에는 KC 인증 라벨이 붙어 있지만, 모든 의류에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해외에서 수입한 ‘보세’ 의류나, 동대문 소상공인이 만들어 파는 의류에는 KC 인증 마크가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사IN 조남진1월28일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이 시행되었다. 위는 서울 중구 평화시장 입구에 걸린 KC 마크 부착 홍보 현수막.
문제는 비용이다. 전안법은 생활용품의 제조 또는 수입업자가 KC 인증서를 의무적으로 비치하도록 하고 있다. 개인 또는 소규모 판매업자가 입점한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인증서가 있는 업체의 물건만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부설 연구소 등을 통해 자체 인증이 가능한 대기업은 이번 논란에서 한발 비켜갔다.

‘폭탄’은 소규모 업체에 떨어졌다. KC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 보통 제품 하나당 수만원에서 수십만원까지 든다. 의류의 경우 새 원단으로 제품을 만들 때마다 인증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다. 겨울옷처럼 여러 원단을 사용한 제품을 만들 경우 인증 비용만 100만원을 훌쩍 넘길 수도 있다. 가죽공예품, 액세서리 제조업체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시행 안내.
한때 일부 의류 소상공인 사이에서 원재료는 물론 디자인과 색깔별로 모두 인증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의류의 경우 원재료만 인증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다품종 소량 판매 위주인 영세 업체가 이런 인증 비용을 감당하기는 버겁다. 몇 년 전부터 급증하는 해외 구매 대행업체, 소규모 병행 수입업체도 마찬가지다.

물론 처음부터 KC 인증을 받은 제품만 취급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원자재 제조업자가 인증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KC 인증을 기피할 경우 어쩔 도리가 없다. 유통 과정에서 인증 비용이 판매업자에게 전가될 공산이 크다. 결국 제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전안법이 ‘물가상승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가 지정 인증기관에 산피아 낙하산 많아

그렇다면 정부는 이 법을 왜 만들었을까. 소비자 안전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2012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태가 발생하자 산자부가 생활용품까지 규제를 강화한다는 취지로 만들었다. 생활용품에 가정용 섬유제품, 액세서리, 공예품 등까지 포함되면서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전안법은 2015년 12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산자위)를 통과했다. 당시 법안소위에서도 생활용품과 전기용품을 함께 묶는 것에 대한 염려가 나오기는 했지만 큰 탈 없이 넘어갔다. 더 큰 문제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되는 과정에서 공청회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합법을 만들면서 공청회를 거쳤다는 국가기술표준원 담당자의 말만 믿었다.

법안이 만들어지고 통과되는 과정이 석연치 않은 까닭에 업계에서는 음모론까지 떠돈다. 전안법 시행의 핵심은 결국 KC 인증이다. KC 인증을 수행하는 기관이 분야별로 있다. 한국의류시험연구원 등이 국가 지정 인증기관이다. 민간기관도 셀 수 없이 많다. 문제는 이들 기관이 이른바 ‘산피아(산자부+마피아)’ 낙하산의 주 무대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안법이 이들 기관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퍼지고 있다.

실제로 전안법 시행을 앞두고 1월26일 산자부가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전기용품의 경우 인증기관 지정 요건을 완화하여 인증기관의 신규 진입을 유도한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안전 인증에 걸리는 소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다. 더욱이 인증기관이 규정 미준수 등을 저질렀을 때 업무정지 처분 대신 과징금만 부과하기로 했다. 산자부는 기업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인증기관 처지에서도 더없이 좋은 규정이다. 국회 산자위 소속 우원식 의원 측은 “인증기관이 모여 있는 한국제품안전협회의 경우 전안법 발의를 주도한 국가기술표준원 출신 공무원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You Tube 갈무리전안법 시행 이후 업계 관계자의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한 수입업체 관계자는 이런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전안법 시행 이후 몇몇 민간 인증기관에 문의한 결과 인증 비용이 두 배까지 뛰었다는 것이다. 전안법 시행을 계기로 일부 민간 인증기관이 폭리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인증 비용을 마음대로 올릴 경우 법적 제재 대상이지만, 이른바 ‘급행료’ 명목으로 비용을 챙길 여지는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기술표준원 등은 업계 관계자의 항의와 문의가 폭주해 업무 마비 상태다. 업계 반발로 KC 인증서 비치를 1년간 유예해주기로 했지만, 전안법에 반대하는 소상공인들은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로 했다. 전안법이 큰 이슈가 되자 남경필·이재명 등 여야 대선 주자도 전안법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전안법 폐지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미 법이 시행된 상황에서 법을 폐지하고, 대안 입법을 만드는 동안 행정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국회 산자위 의원들은 KC 인증서 비치가 유예된 1년 동안 공청회 개최 등을 통해 최대한 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밝혀내야 할 일이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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