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놓쳤다. 다 잡은 줄 알았는데 눈앞에서 숨어버린다. 그러고는 나오지 않는다. 7년간 급발진 사고를 쫓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기사를 쓰지 못했다. 처음에는 다급하게 만났던 피해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끊고 사라졌다. “그냥 조용히 살고 싶다” “잊고 싶다” “생각하기도 싫다” 같은 이유였다. “꼭 끝까지 가겠다”라던 사고 당사자의 의지가 꺾이면서 ‘급발진’은 다시 미궁을 헤맨다.

급발진은 한마디로 자동차가 ‘발작’하는 현상이다. 차가 미쳐 날뛰는 것과 비슷하다. 멀쩡하게 만든 차가 갑자기 ‘회까닥해서’ 굉음을 내며 튀어나간다. 차를 멈추려고 브레이크를 바닥까지 밟지만, 속수무책이다. 차는 계속 날뛰다가 꼭 사고를 친다. 이후 억울하고 답답한 시간이 시작된다.

‘미친’ 차를 사이에 두고 차 주인과 자동차회사의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차 주인은 급발진이라 말하지만 자동차 회사는 ‘그럴 리 없다’고 한다. 말로 안 통하니 증거(주로 블랙박스 영상)를 보여주며 “이래도 급발진 아니냐”고 따지지만, 자동차 회사는 “몇백만 대가 멀쩡하게 돌아다니는데, 왜 당신 차만 그랬겠느냐”라며 일찌감치 굳히기에 들어간다. 답답한 차 주인은 여기저기 알린다. 지인에게 보여주다가 언론사에 제보하고, 온라인에 영상을 올리는 등 하소연한다.

ⓒ연합뉴스2016년 1월14일 부산 동래구청 1층에서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차량 돌진 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과정에서 전문가를 만나게 되고, 급발진을 쫓는 나 같은 기자와 연락이 닿기도 한다. 그리고 긴박한 급발진 순간을 담은 영상과 이를 해석한 자동차 전문가의 멘트를 담은 기사가 나온다. 댓글 반응도 꽤 괜찮다. 뭔가 급발진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자동차 회사에서도 연락이 온다. 나에겐 기사를 삭제해달라 하고, 차 주인에게는 “만나자”고 한다. 나와 차 주인은 “끝까지 가자”라고 결의 비슷한 걸 했기 때문에, 절대 기사를 내리지 말고, 적절하게 타협하지도 말자고 한다. 그날 밤에는 자동차 회사로부터 “그래, 우리 차 ‘급발진’ 맞다”라는 자백을 받는 꿈까지 꾸기도 한다.

차 주인은 녹음기는 물론이고 가방에 몰래카메라까지 넣고 자동차 회사 관계자를 만난다. 그런데 만남 이후, 갑자기 뿌옇게 바뀐다. 엊그제만 해도 ‘끝까지 가자’고 했던 사고 당사자가 연락을 피하기 시작하더니, “그냥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온다. 너무 힘들고 무거워서 잠시 ‘잊고 싶다’는 생각을 한 줄 알았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도 응답하지 않는 일이 계속된다. 어쩔 수 없다. 잊고 싶어 하는 이에게 ‘진실을 밝히자’고 잡아끄는 것처럼 가혹한 일도 없다. 그냥 이번에도 놓친 거다.

이렇게 알고 몇 년이 지났다. 그런데 얼마 전 반전을 들었다. 3년 전에 급발진 사고를 당한 A씨는 당시 그럴 수밖에(‘조용히 살고 싶다’며 연락을 끊음) 없었던 자초지종을 들려줬다. 한동안 줄다리기를 하던 자동차 회사에서 합의금을 제시하며 원만한 마무리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겠다고 비밀 유지를 약속해야 하고, 어기면 (합의금의) 10배를 돌려준다”라는 것이었다. 이전에 올린 게시물, 영상 등을 삭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급발진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수였다’고 인정하는 각서에도 서명하길 강요당했다. A씨는 “‘급발진 아니다, 내 실수다’라는 내용을 빼주면 서명하겠다”라고 했고, 회사 측이 “그건 안 된다”라며 옥신각신하다가 ‘좋게’ 마무리됐다고 한다.

이후 급발진 사고 차는 말끔히 수리돼 나왔고, A씨는 수리된 차를 헐값에 판 후 6000만원이 넘는 독일제 수입차로 갈아탔다. 여기까지가 다 잡은 급발진을 눈앞에서 놓쳤지만, 어찌할 수 없었던 정황이다. 한 번이 아니라 예닐곱 차례 겪었던 일이라, 과거형을 쓰지 않고 현재형으로 썼다. 또한 A씨가 서명했던 ‘비밀 유지를 어기면 10배 돌려준다’는 약속이 못내 마음에 걸려 뾰족하게 적시하지 못하고 가명을 쓰며 두루뭉술하게 서술할 수밖에 없었다. 비밀계약서를 한 부 입수하면 게임 끝이라는 계산이 머리를 스치기도 했지만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악몽을 잊고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A씨가 십분 이해됐기 때문이다.

급발진 사고는 증상이나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엔진 흡기 계통의 오동작, 연료 분사장치 이상, 전자제어 계통의 불량 등을 이유로 들지만, 아직 세간의 인정을 받은 적은 없다. 급발진을 재현하거나 재연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그냥 흐지부지되었다. ‘말은 되지만,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 혹은 ‘너무 작위적이다’ 등의 평을 뒤집지 못하고 머쓱하게 수그러들었다.

‘급발진이 아니었다, 내 실수다’ 각서 요구

가장 속 시원한 급발진 원인은 역시 “차가 미쳤다”라는 거다. 최신형 컴퓨터도 가끔 아무런 이유 없이 먹통이 되어버린다. 최신형 스마트폰도 아무런 이유 없이 모든 데이터가 날아가버릴 때도 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집적회로는 가끔씩 맛이 갈 때가 있다. 컴퓨터는 그냥 재부팅하면 되고, 스마트폰은 복원하면 된다. 하지만 자동차가 그러면 피해가 좀 크다. 2t이 넘는 물체가 미쳐 날뛰는 것이다.

자동차에 전자제어 장치가 많이 들어가면서 차의 ‘발작’ 확률도 함께 높아졌다. 클러치를 밟아 변속하던 ‘수동 기어’ 시절에는 급발진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수동 기어 대신 자동 기어가 보편화되면서, 와이어로 연결됐던 가속페달이 전자적으로 물리기 시작하면서 급발진 사례도 함께 늘었다. 최신형 컴퓨터가 갑자기 먹통이 되는 것처럼, 자동차 전자장치가 발작해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가 꽤 된다.

자동차 회사들도 급발진 앞에선 할 말이 없다. 그저 자신들이 만든 차는 급발진이 없기 바라며, 하루빨리 급발진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지길 바란다. 물론 기술적인 보완도 한다. 바닥 매트가 밀려서 가속페달을 누르는 걸 방지하기 위해 바닥에 고정 고리를 붙였다. 고급 차에만 있던 바닥 매트 고리가 경차와 상용차 등에도 달리고 있다.

브레이크를 일정 시간 이상(대략 0.5초 이상) 밟으면 엔진이 제어되면서 정지하는 오버라이드 기능도 의무화했고, 에어백이 터지는 상황을 데이터로 기록하는 EDR(Event Data Recorder) 장치도 의무 장착되고 있다. 또한 엔진의 흡기 과정 중 생기는 진공으로 브레이크를 잡던 구조의 단점(급가속 때 진공이 부족해 브레이크가 안 밟히는 현상)을 보완해 별도 진공펌프를 붙이는 차도 늘고 있다.

취재 중 만난 대부분의 공무원과 교수, 자동차 회사 관계자들은 모두 급발진과 엮이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눈치였다. 대부분 “급발진은 없다. 만일 급발진이 있다고 알려지는 것 자체가 사회 불안과 연결될 수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불만이 있던 사람에게 돌진하고는 급발진이라 둘러댈 수도 있고, 졸음운전 사고를 낸 후 급발진이라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누구나 급발진을 당할 수 있다’고 알려지면 자동차 소비 위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일부 자동차 관련 학과 교수들은 급발진은 있을 수 있지만, 학생들의 취업이나 산학 활동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며 언급을 피하는 눈치였다. 급발진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기자명 장진택 (〈카미디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