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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을 구축하는 힘은 제도 밖 사람들에게 있다

2017년 02월 17일(금) 제491호
엄기호 (국민대 사회학과 강사)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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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영화 <위켄즈>는 ‘곁’을 만들어가는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다. 제도에 의지할 수 없는 이들은 스스로 관계를 확장하며 기쁨을 얻는다. 이들에게 커밍아웃은 ‘함께’ 세상과 맞서겠다는 연대의 선언이다.

기쁨을 잃은 사회다. 어디를 보더라도 기쁜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는다. 얼마 전 타계한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것처럼 삶에서 지속되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단기적이고 일회적이다. 사람들의 노동이 일회적이 되었고, 급기야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존재 자체도 일회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모든 것이 일회적으로 소비되고 소모되는 사회에서 기쁨은 불가능하다. 사람의 삶은 지속, 즉 연속적으로 성장할 때 비로소 기쁠 수 있다.

한번 해보자고 힘을 낼 때 우리는 전에 없던 시도를 한다. 용기를 내기 위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졸저 <단속사회>(창비, 2014)에서 ‘곁’이라고 불렀다.

대다수의 사람은 제 홀로는 새로운 것을 시작할 용기를 좀처럼 낼 수 없다. 곁을 내어주고 곁이 되는 사람이 있어야 사람은 비로소 용기를 내어 세상과 맞설 수 있다. 성 소수자 합창단 지보이스(G_Voice)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위켄즈>는 바로 이런 ‘곁’에 대한 영화다. 곁을 불신하고, 곁이 망가진 세상에서 곁을 만들어가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주말마다 모인다. 주말마다 모여서 몇 시간씩 연습하고 그렇게 연습한 것을 무대에 올린다. 노래를 통해 자신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용기를 서로 격려한다. 일회용 소비로 전락한 관계에서 전에 없는 새로운 관계, 지속이 구축된다.

성 소수자 합창단 지보이스(G_Voice)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위켄즈>의 한 장면.

무엇보다 이 영화는 지속되는 곁을 구축하는 힘이 더 이상 제도가 아니라 제도 밖 사람들에게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제도에 의지할 수 없는 주변화된 사람들은 곁을 구축하고 지속하는 힘을 제도가 아닌 자신들의 삶 속에서, 기예로 터득하고 있다. 이들에겐 게이 커뮤니티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용기를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자기 배려의 기예’인 것이다.

팽목항, 쌍용차 투쟁 현장, 광화문으로 간다


이 자기 배려의 기예가 있기에 이들은 세상과 맞설 수 있다. 내가 이들을 보며 놀란 것은 이들이 커밍아웃을 개인의 정치에서 집단의 정치로 획기적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커밍아웃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선언이자 함께 세상과 맞서겠다는 연대 선언이다.

세상에 맞서는 곁을 통해 이들은 ‘자기 배려’를 넘어 정치 공동체, 즉 폴리스를 돌본다. 영화에서 이들은 자기들을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팽목항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하고, 쌍용자동차의 투쟁 현장에 참여하고 광화문 촛불시위에 선다. 그리고 ‘놀랍게도’ 노동자들이 성 소수자들의 투쟁에 화답하게 한다.

차이를 넘어 공통의 것을 만들어내는 공동의 노력, 즉 연대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폴리스를 구축하는 힘이 아니겠는가? 폴리스에 의해 배척되고 버림받았던 이들이 현존하는 폴리스의 폐허에서 다음 폴리스를 구축하는 모퉁이 돌이 되고 있다. 이럴 때 사람은 자존감과 사회적 존재감을 모두 얻고 기쁨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모든 것이 일회용으로 변해 구제불능이 된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지만 아직 우리 삶에 기쁨을 지속하게 하는 곁의 구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쁜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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