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기가 눈에 들어왔다. 대형 태극기 10개 사이로 성조기 2개가 펄럭였다. 그 아래에 텐트 30여 개, 천안함·연평해전 희생자 추모 분향소, 상황실 등 대형 천막까지 놓였다. 서울시청 앞 광장은 박사모 등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이하 탄기국)’에 점령당했다. 서울광장 사용에 관한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사용일 닷새 전까지 시장에게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탄기국은 사전 신고서를 내지 않았다.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추모 천막을 철거하면 자신들도 철거하겠다는 주장을 폈다. 얼마 전 이곳을 취재하던 사진기자는 카메라 가방에 노란 리본이 달렸다는 이유로 끌려나왔다.


텐트 주변 자칭 ‘애국자’들은 신념에 차서 말했다. “이 모든 걸(탄핵) 김정은이 시켰다.” “북한에서 간첩들이 내려와 선동한다.” 어렸을 때 ‘반공’이나 ‘멸공’이라 쓰인 방송 차량에서 나오던 소리다. 이 철지난 유행가가 그들끼리의 SNS로 퍼져나갔다. ‘카톡’이라는 무기가 아스팔트 애국자들에게도 쥐여진 덕분이다. 한국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객관적인 사실(fact)이 감성(emotion)이나 개인적인 신념(belief)에 호소하는 것보다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 지난해 9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포스트 트루스 현상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세계적인 현상을 진단했는데 이 분야의 ‘대가’ 트럼프가 낙선하면(보도 시점에만 해도 낙선할 것이 자명했으니) 약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점거한 이들에게도 팩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비위는 팩트의 진위 문제가 아니다. 믿음의 차원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을 배교(背敎)한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도 ‘종편’도 이제는 ‘꺼지고’ ‘폐업’해야 할 대상이다. 그들끼리 가짜 뉴스를 공유하고 감성을 공유하며 믿음을 쌓아간다. 박근혜 대통령도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에서 “촛불시위의 두 배도 넘는 정도로 열성을 갖고 많은 분들이 참여하신다고 들었다”라고 이들과 신념을 나눴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이들에게 현재 상황은 천막에 크게 나붙은 플래카드 문구대로 ‘언론과 검찰과 국회의 체제 전복 반란’일 뿐이다.

포스트 트루스가 미국과 유럽을 지나 한국에도 상륙했다. 우리도 선거를 앞두고 포스트 트루스 정치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해법? 쉽고도 어렵다. 〈이코노미스트〉도 지적했듯 포스트 트루스의 해법은 트루스, 바로 팩트(진실)이다. 정치인에게 진실의 언어를 요구해야 한다. 감성과 신념에 호소하는 선동의 언어를 구사하는 정치인은 심판해야 한다. 우리에겐 심판할 수 있는 한 표가 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한파가 지나면 따사로운 햇살이 광장의 언 땅을 녹일 것이다. 이것이 순리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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