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도 마트에서 사고, 장도 마트에서 보고, 데이트도 마트에서 하던 때가 있었다. 콩나물 한 봉지, 두부 한 모도 주말을 기다렸다가 마트에서 구매했다. 다들 싸다고 하니까. 마트에서 사면 ‘득템’을 한 것 같으니까. 여기서는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준다니까.

그러나 사실 스물네 개짜리 휴지를 원 플러스 원으로 준다 해도 혼자 사는 이에게는 여섯 개들이면 충분하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과자를 다섯 봉지 2000원에 판다 해도 한 번에 한 봉지밖에 먹지 못한다. 알면서도 마트만 가면 눈이 뒤집혀 무언가를 잔뜩 사 들고 나오니 이는 무슨 조화인가. 분명 뭔가에 홀렸다. 게다가 물건을 들고 집까지 오느라 버둥거리는 모습은 스스로 생각해도 좀 우스웠다. 도대체 누가 이토록 많은 물건을 내 손에 쥐여주는가. 왜 자꾸만 홀린 듯이 마트에 가는가. 마트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유혹한 것일까. 생각은 계속 꼬리를 물었다.

마트를 파헤치면 곧 답이 나올 것 같았다. 바로 저자 섭외와 기획에 들어갔다. 단순 사회 비판으로 그치고 싶지는 않아서, 사회학자가 아닌 생태철학자에게 원고를 청탁했다. 그 덕분에 발터 베냐민부터 펠릭스 가타리, 장 보드리야르, 자크 라캉과 함께 마트를 탐험할 수 있었다. 또한 녹색당 당원인 저자 덕분에 마트를 통해 공동체, 자본, 노동, 제3세계 문제까지 심도 있게 들여다본 것도 소득이었다.

〈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
신승철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이 책을 만든 이후, 마트로 향하는 발걸음을 완전히 끊었다. 이제 가까운 생협을 이용하고, 두 주에 한 번 농산물 꾸러미를 받는다. 마트 농산물과 다른, 흙이 잔뜩 묻어 있고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달걀과 감자를 보며 잠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하긴, 모든 사람이 달리 생겼는데 하물며 달걀과 감자는 어떨까. 이전에는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들이었다. 게다가 ‘최저가’를 위해 마트가 무엇을 착취하는지 알고 나니 이제는 마트에서 그 무엇도 선뜻 집어 들지 못한다. 드디어 마트의 마법이 풀린 것이다.

안다.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지금 당장 자본주의의 최전선인 마트로 가는 걸음을 멈춰라’고 말할 수는 없음을. 다만 마트 없이도 모두가 같이, 그럭저럭 먹고사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부디 그 마음이 왜곡되지 않고 전달되기를 바란다.

기자명 이지은 (위즈덤하우스 편집 4분사 대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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