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차별 없는 사회는 가능할까. 변화는 더디고 쉽지 않다. 사람들은 종종 나쁜 현실을 변화보다 선호한다. 하지만 불편해야 바꿀 수 있다. 갈등이 곧 민주주의다.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대중문화·노동·생활·몸을 들여다보는 새 연재를 시작하는 까닭이다.
요즘 소소한 즐거움은 자취를 막 시작한 지인의 SNS를 구경하는 일이다. 발품을 팔아 적당한 방을 찾고, 낡은 곳을 손보고, 소품을 하나씩 들여놓으며 손때 입혀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홀로 서기란 쉬운 게 아니구나’ 깨닫는다. 계약 전후 미묘하게 말이 바뀌는 집주인, 어디서 오는지 알 길 없는 벌레와 악취, 옆집 소리가 생중계되는 얇은 벽….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감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감추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다름 아닌 ‘여자 혼자 산다’는 사실이다. “자취 시작했다는 이야기 괜히 SNS에 쓴 거 아닐까? 지금이라도 룸메이트를 구했다는 글을 올릴까?”라는 친구의 물음에 마음이 계속 무거웠다. 사실은 친구도, 나도 굳이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여자 혼자’라는 사실을 감추도록 교육받아왔다는 것.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피해를 보아도 “네가 조심했어야지”라며 위로보다 책망이 먼저 날아든다.
“그렇게 하면 범죄를 당할 수 있다”는 자기 검열
얼마 전 트위터에서는 지난 2015년 발간된 〈자취방〉이라는 사진집이 뒤늦게 다시 화제가 됐다. 반라의 여성 모델이 자취방에서 신체의 굴곡이 부각되는 포즈를 취한 사진이 여럿 실려 있다. 수면바지와 극세사 담요를 벗 삼아 겨울을 나던 여성들은 처음엔 그 비현실성에 비웃음을 날렸다. ‘#이것이_여성의_자취방이다’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아이돌 굿즈로 채워진 책장이나 벗어둔 옷이 나뒹구는 바닥 같은 ‘리얼’ 자취방 사진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이내 우려가 뒤따랐다. 창 밖에 찍힌 주변 건물을 근거로 위치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혼자 사는 여성들의 범죄 피해 경험담이 이어졌다. 범죄에 노출되지 않기 위한 팁들도 뒤따랐지만 결국 여자 혼자 사는 티를 최대한 내서는 안 된다는 게 핵심이었다.
여성이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목처럼 “나 혼자 산다”라고 당당히 외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성별이라는 요인 때문에, 어렵사리 얻어낸 혼자만의 공간에서조차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지내야 한다는 건 1인 가구 여성이 겪는 첫 번째 좌절이다. 짧은 옷, 진한 화장, 혼자 택시를 타는 일, 이어폰을 끼고 걷는 일, 자동차에 ‘헬로 키티’ 인형을 갖다 놓는 일, 무례한 말을 똑같이 되받아치는 일까지. 하루 종일 “그렇게 하면 범죄를 당할 수 있다”는 자기 검열 속에 살다가 겨우 쉴 곳을 찾아 집에 왔는데, 여기에도 온전한 휴식은 없는 셈이다.
집주인이나 이전 세입자가 설치한 몰카, 가짜 배달원, 갑자기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알고 지내던 남성…. 1인 여성 가구를 노리는 이들의 얼굴은 너무나 다양하다. 문 밖에서 낯선 소리가 들릴 때마다 혼자 사는 여성은 이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적의 ‘생존 시나리오’를 짠다. 그사이 다른 한쪽에서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자취하는 여자’라는 질 낮은 농담을 부동산 앱의 광고 소재로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조심은 늘 한쪽의 몫일까? 아니, 최소한 피해를 당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너도 잘한 건 없네”라는 비난을 면할 수 있을까?
또 한 번의 좌절은 이런 고민을 공감해줄 상대를 찾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데서 온다. “그러니까 빨리 결혼을 해서 남편이랑 살아”라는 말은 아무런 해결책도 위로도 되지 못한다. 남편과 24시간 동행할 수 있을 리도 없거니와, 이혼이나 사별로 다시 1인 가구가 될 수도 있다. 평생 배우자 없는 삶을 살 수도, 동성 배우자와 삶을 계획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혼자 사는 여성으로서 자신의 취향과 존재를 지워야만 하고, (아버지든 형제든 남편이든) 남성의 보호가 필요한 미성숙한 삶으로 여겨진다면 이건 혼자 살아도 혼자 사는 게 아니다.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같이 살 누군가가 아니라 많은 ‘혼자들’이 ‘다 같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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