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박근혜 게이트의 중심축이다. 최순실씨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관리의 삼성’도 등장한다. 박근혜 게이트를 촉발한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승마 훈련(220억원 계약)뿐 아니라 조카 장시호씨가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16억원 후원)까지 모두 삼성이 지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삼성에 대한 관심도 특별했다.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삼성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문제에 신경을 썼다. 2015년 7월25일 독대를 앞두고 청와대에서 작성된 ‘대통령 말씀자료’가 이를 뒷받침한다. 해당 문건에는 “현 정부 임기 내에 후계 승계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 승계의 ‘실탄 공급처’로 국민연금공단이 동원되었다는 혐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구속된 상태다.
 

ⓒ연합뉴스1월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종이 가방을 들고 서울구치소를 걸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은 430억원 규모의 뇌물공여와 횡령·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지만 기각되었다.


박영수 특검팀도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대가를 주고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횡령·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은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부 조의연 부장판사는 1월19일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등으로 보아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피해자 삼성’의 논리가 통했다는 평가가 법조계에서 나왔다.

삼성은 과연 피해자일까? 먼저 삼성은 관련 의혹에 대해 계속해서 말을 바꿨다. 지난해 9월 삼성은 정유라씨에 대한 지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송금 내역이 나오자, 대한승마협회를 통한 정당한 지원이었다고 변명했다. 이런 해명을 무너뜨리는 증거가 나오자 어쩔 수 없는 지원이었다고 또 말을 뒤집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협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강요죄의 피해자는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 뒤 특검은 보강 수사에 들어갔다. 청와대 압수수색 여부에 눈길이 쏠렸던 2월3일,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를 압수수색했다. 안종범 전 수석이 추가 제출한 업무수첩 39권도 확보했다. 이 수첩에도 삼성과 관련한 VIP(대통령)의 지시 사항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박근혜-삼성의 뇌물 커넥션’은 2014년 9월15일 첫 독대 전후 시기부터 주목해야 한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지속적으로 서로의 필요를 주고받은 상황을 따져봐야 뇌물 사건의 본질이 보이기 때문이다. 독대 4개월 전 2014년 5월10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자택에서 쓰러졌다.

당장 삼성의 후계 문제가 불거졌다. 그해 6월20일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도 ‘삼성그룹 승계 과정-monitoring’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2014년 9월15일 대구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만났다. 삼성이 파트너로 있는 두 센터의 대표인 김선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장과 김진한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모두 삼성 임원 출신이다.

 

 

 

ⓒ연합뉴스2월3일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관들이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 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첫 번째 독대가 이뤄졌다. 안봉근 당시 제2부속비서관을 통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박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승마 유망주를 발굴해 적극 지원해달라” “승마 유망주에게 좋은 말을 사주고 해외 전지훈련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정유라’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고 한다. 정유라씨는 2013년 경북 상주 승마대회에서 준우승을 했고 2014년 9월20일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관리의 삼성은 최순실의 존재를 포착했다

그때부터 삼성의 ‘레이더’가 작동했다. 삼성그룹 사정을 잘 아는 재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보 하면 삼성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게 뭔지 파악하기 위해 대관업무를 총괄하는 장충기 사장 등이 동원됐다. ‘이건희 라인’으로 꼽힌 장 사장이 열심이었다.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권력 교체기에 ‘공’이 필요했을 것이다. 결국 최순실·정유라가 박 대통령과 아주 가깝다는 걸 알아내고, 관리에 들어갔다. 당시만 하더라도 다른 대기업은커녕 고위 공직자 중에서도 최순실의 존재를 모르던 때였지만, 관리의 삼성은 달랐다.”

당시 최순실씨의 관심은 딸의 올림픽 출전 준비였다. 최씨를 20년 넘게 알아온 한 승마계 인사의 증언이다. “유연이 엄마(최순실)를 돕던 박원오 전 전무가 아시안게임 이후에 찾아와서 올림픽에 나가려면 얼마 드는지 상담했다. 나는 올림픽은 아시안게임하고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좋은 말을 사고 더욱 체계적으로 훈련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1인당 50억원은 넘게 든다고 조언했다.” 정유라씨가 올림픽 출전을 꿈꾼다는 이야기는 승마계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삼성은 승마단을 해체한 지 4년이나 지난 2014년 11월25일,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사가 되었다. 바로 다음 날 삼성과 한화의 화학·방산 빅딜이 발표됐다. 2015년 3월 한화가 맡던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삼성이 차지했다. 한화의 임기가 2년이나 남았지만 삼성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가 된 것이다. 정유라씨 지원을 위한 구실을 마련했다.

이때 변수가 생겼다. 정유라씨가 임신을 했다. 최순실씨도, 박근혜 대통령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유라 선수 훈련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대한승마협회를 앞세운 삼성의 지원 계획 또한 변경해야 할 상황이었다. 2015년 5월 정씨가 출산한 다음으로 모든 일정이 미뤄졌다.

정유라씨가 아이를 낳은 뒤 2015년 6월18일 정씨의 말을 관리하던 이씨가 말 4마리와 함께 독일로 먼저 출국했다. 정유라씨도 2015년 6월30일 독일로 출국했다. 〈시사IN〉이 입수한 대한승마협회 ‘한국 승마 중장기 로드맵’ 문건은 이때 만들어졌다. 2015년 6월이라고 표지에 쓰인 문건에는 ‘2020년 도쿄올림픽 메달권 내 진입을 목표로 마장마술을 포함해 3개 종목별 선수 3명씩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마장마술은 정유라 선수 종목이다(〈시사IN〉 제486호 ‘삼성과 최순실 은밀하고 긴밀했다’ 기사 참조).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흡수합병 계획이 발표되었다. 발표와 함께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비율(0.35:1)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물산의 가치를 일부러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일모직이 싼값에 삼성물산을 인수하게 되면 이재용 부회장은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그룹 지배력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대주주 일가는 제일모직 주식 42.19%를 가진 상태였고 삼성물산 주식은 1.41%만 가졌다.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11.21% 보유)였던 국민연금공단의 결정이 중요했다. 삼성물산 주식 7.12%를 가진 엘리엇이 합병 반대 의사를 밝힌 터라 국민연금의 결정에 따라 합병 여부가 결정되었다.

 

 

 

 

ⓒ시사IN 조남진2014년 9월20일 제17회 아시아경기대회 승마 마장마술 부문에 참가한 정유라씨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당시 국민연금공단은 삼성의 손을 들어주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 결과에 따르면, 내부적으로 적정 합병 비율을 0.46:1(삼성물산:제일모직)이라 산정했지만, 이조차도 조작했다. 7월10일 국민연금기금운영본부 투자위원회는 합병에 찬성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공소장에는 ‘그가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대한 개별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챙기며 수차례 삼성에 유리한 결정을 해주라고 지시했다’고 쓰여 있다. 안종범 전 수석 등을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성사될 수 있도록 잘 챙겨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청와대·보건복지부·국민연금공단이 조직적으로 나서서 삼성을 도와줬다는 것이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판단이다. 그 정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고 본 것이다. 문형표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31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합병 성사 이후 2015년 7월25일 박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두 번째로 독대했다. 지난해 11월13일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출석했던 이재용 부회장은 당시 박 대통령과 정유라씨 승마 지원 문제에 대해 논의한 바가 없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특검 수사가 좁혀오자 이 부회장 쪽은 “독대  당시 박 대통령이 압박해 정유라씨 승마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을 바꿨다. 지원이 소홀하다는 박 대통령의 지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삼성의 해명에 따르더라도 두 번째 독대 당시 승마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사실은 인정한 것이다. 또한 독대 뒤 삼성이 지원을 활발히 했다는 점도 인정한 모양새가 되었다. 물론 삼성 해명대로 ‘정유라를 지원할 테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해달라’고 명시적으로 요구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삼성으로서는 2014년 첫 번째 독대 이후 정권의 최고위급(최순실)과 소통하며 박 대통령과 채널이 생겼다는 게 가장 큰 성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후 삼성은 정유라씨 지원이나 미르·K스포츠재단 등 박 대통령 관심사를 챙겼고, 정부도 삼성을 챙겼던 정황이 보인다. 결국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은 셈이다. 넓게 보면 포괄적 뇌물죄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두 번째 독대 이틀 후 대한승마협회장인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직접 독일로 갔다. 지난해 8월26일 삼성전자와 최순실씨 독일 회사 코어스포츠는 220억원대 계약을 체결했다. 또 독일에 머무르는 동안 정유라씨가 타던 말이 늘었는데 삼성이 돈을 냈다. 2016년 1월27일 삼성은 덴마크 말 중개상이자 정유라씨 코치였던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드를 통해 비타나Ⅴ와 라우징1233을 구입했다. 비타나V는 그랑프리 대회에서 여러 차례 3위 이내의 성적을 거둔 명마다. 비타나V는 150만 유로(약 18억4000만원)에 달했다. 함께 구매한 라우징1233은 50만 유로(약 6억1300만원)이다.

 

 

 

ⓒ연합뉴스2015년 5월7일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너무나 적극적이면서도 이득을 본’ 피해자

2016년 2월15일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세 번째 독대가 이뤄진다. 장시호씨는 독대 바로 전날 삼성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0억원을 추가 지원하는 내용을 작성해 청와대에 넘겼다고 특검에 진술했다. 또 최근 특검은 2015년 말 공정위가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 처분 규모를 1000만 주에서 절반으로 줄여주면서까지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해준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또 금융위가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에 특혜를 줬다는 점도 수사한다. 이에 대해 삼성은 “특혜를 받은 바가 없다”라며 부인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혁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삼성이 로비를 했다면 그 목적이 단지 삼성물산 합병 성사에만 한정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삼성이 최순실이라는 존재를 파악하고 로비한 것은 지주회사 전환 등 승계 작업의 원활한 작업을 위한 목적을 포함했을 거다. 이런 관점에서 뇌물죄를 봐야한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보면 삼성의 해명을 인정하더라도, 삼성은 ‘너무나 적극적이면서도 이득을 본’ 피해자인 셈이다. 특검도 이같은 점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기자명 김은지·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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