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가는 정권에서도 끝까지 놓지 않는 게 바로 ‘교육’이다. 2월1일 교육부는 끝내 국정 역사 교과서 최종본을 공개했다. 교육부는 국민과 학계의 지지를 얻지 못해 생명력을 잃은 이 출판물을 ‘폐기’하지 않고 ‘국·검정 혼용 체제’를 통해 어떻게든 교육 현장에 적용할 방안을 찾았다. 전국 일선 학교들로부터 ‘연구학교’ 신청을 받아 국정 역사 교과서를 기어코 학교 현장에 내려보낼 계획이다.

새 정권을 창출하려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 역시 교육이다. 본격적인 대선 운동 기간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후보들은 교육 관련 공약을 발표했다. 국공립 대학 공동학위제, 5-5-2 학제 개편, 교육부 폐지, 사교육 폐지 등 후보들이 내건 교육 공약들을 두고 토론을 벌이면서 국민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청사진을 그린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사회 여러 분야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정권의 끝과 시작을 장식할 만큼, 교육 문제는 다른 모든 사회 의제들을 제치고 아우른다. 그 뜨거운 대한민국 교육의 중심에 선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다. 사회학자와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가 2014년 6월 교육감 선거에서 민주·진보 진영 단일 후보로 출마해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됐다. 재임 기간 교육 불평등 해소와 학생인권 증진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주로 펼쳐온 조 교육감은 자사고, 전교조 교사 징계, 누리과정 예산 등을 둘러싸고 정부와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시사IN 조남진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가 미래 교육 시스템을 고민하기보다는 정권의 이해관계에만 부응하는 정책으로 교육을 퇴행시켰다고 비판했다.
조 교육감은 교육부의 국정 역사 교과서 연구학교 운영에 대해서도 지난해 12월28일 일찍이 협력 거부 의사를 밝혔다. 지난 2월6일에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함께 한국 교육의 9가지 과제를 선정하고 대선 주자들에게 그 해결을 제안했다(28쪽 사진). 낡은 교육을 청산하고 새로운 교육을 시작할 수 있을지 대한민국 교육이 중대한 기로에 선 시기, 교육개혁의 최전선에 선 조 교육감을 지난 2월8일 서울시교육청에서 만났다.

연구학교 지정으로 결국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전선이 각 교육청과 일선 학교들로 내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주말 보수 단체가 교육청 앞에 와서 ‘서울시교육감이 국정교과서 반대 투쟁을 선동한다’며 시위를 벌이고 점거 농성까지 시도했다. 교육부가 연구학교 지정을 강행하면 이런 갈등이 앞으로 교육 현장에서 숱하게 불거질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는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역사교과서 국정화금지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혼란을 가장 빨리 끝내는 방법이다.

교육부는 정부의 연구학교 지정 방침을 따르지 않는 교육감들을 비판하고 있다.

연구학교 업무는 교육부가 2008년에 그 권한을 시·도 교육청으로 이양한 지방자치 사무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월12일 ‘연구학교 심의회’를 열었다. 심의위원회에서는 국·검정 이중학습 부담, 논란의 교과서 현장 적용의 문제, 현 시국 상황 등의 사유로 연구학교 운영을 부결한 바 있다. 정당한 절차를 밟은 것이다. 이에 따라 일선 학교에도 연구학교 신청 공문 자체를 안내하지 않았으며 이런 결정을 교육부에도 회신했다.(교육부가 애초 내건 접수 기한인 2월10일까지, 전국 단 한 곳의 중·고교도 연구학교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자 교육부는 접수 기한을 2월15일까지 연장했다. 또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2월10일 대국민 담화 기자회견을 열어 “연구학교 지정을 방해하는 시·도 교육청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대상으로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라고 밝혔다.)

교육부가 국정교과서에 끝까지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두 지점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40억원이 넘는 국가 예산을 투입한 정책이 철회된 데 따르는 책임 문제이다. 기존 교과서 개발 비용의 7배 정도 되는 국가 예산을 쓰고, 지난 1년간 사회적·교육적 혼란과 갈등을 조장하면서까지 이끌고 왔는데, 지금 철회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지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연구학교 몇 개라도 성사시키는 게 그들에게 중요한 일이 아닐까. 또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기각될 수 있는 작은 확률 혹은 대선 이후 혹시라도 보수 정부가 들어설 경우의 대비책이다. 국정교과서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을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2월6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차기 대통령이 완수해야 할 교육 과제 9가지를 선정해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를 평가하면?

서울시교육청이 교육부와 많은 부분에서 부딪쳤지만 모든 교육 방향이 달랐던 건 아니다. 교육부의 자유학기제, 초등 돌봄교실 확대, 학교스포츠클럽처럼 학생들의 소질과 특기를 계발하기 위한 정책에는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확대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개혁 방안에 대해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니 우리가 고민한 내용과 일치하는 것도 많았다.

그러나 몇 가지 핵심 정책에서 교육부는 미래 교육보다는 정권의 이해관계에만 부응했다. 국정교과서를 비롯해 누리과정 예산, 자사고 문제 등에서 시·도 교육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정권 입맛대로만 밀고 나가는 중앙집권적 통제기구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는 교육의 퇴행을 초래했다.

지난해 말 광장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정유라 입시 비리로 상징되는 ‘교육 농단’에 분노를 표출했다.

교육 영역에서의 특권과 반칙에 대한 분노를 학생들도 강하게 느낀 것 같다. 나는 학생들이 지난 촛불 시민혁명에서 단순 참여자나 관객이 아닌 주인공이었다고 생각한다. 촛불집회에 가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여러분은 ‘2016년 세대’다. ‘4·19 세대’는 4·19 혁명을 경험했던 자부심으로 평생 살아갔다. 1987년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세대 역시 ‘87년 세대’라는 경험과 자부심으로 살아간다. 당신들도 이제 그럴 것이다.” 평소 ‘교복 입은 시민’을 강조하며 학교에서의 민주 시민교육을 펼쳐왔는데, 광장에 나온 학생들을 보며 ‘이미 아이들은 굉장히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해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교복 입은 시민’을 강조하는 이유는?

올바른 민주주의 교육을 위해서는 실제 현실 정치에서의 참여 교육이 필요하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민주 시민교육의 일환으로 재작년부터 서울시 200개 학교 학생회에 예산을 주고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하는 ‘학생참여예산제’를 시도해봤는데 결과가 아주 좋았다. 예를 들어 어느 중학교 학생회는 공유 우산 사업을 벌였다. 학생회 예산으로 우산을 사서 비치했다가 갑자기 비가 올 때 학생들이 빌려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자신들이 직접 만든 사업이라 반납률도 굉장히 높았다고 한다. 학생 의견을 반영해 예산을 편성하고 대의원회에서 승인하고 사후에 결산보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훈련할 수 있었다. 교과서에서 접한 텍스트를 실제 컨텍스트에 적용해봐야 살아 있는 지식이 되는 거다. 최근 논의 중인 18세 선거권 도입에 서울시교육청이 적극 나서서 지지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학생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사실 ‘교복 입은 시민’이라는 말도 그런 현실을 반영한다. 민주 시민으로 성장해나가야 할 학생들을 교복의 이미지로 가두려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미 어른을 능가할 정도의 사고를 하며 주체적 존재로 커가고 있다. 그걸 교복 이미지와 교복이 갖는 사회적 제한 속에 가두려 하는 사회적 압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우리나라는 정치화에 대한 불안이 크다. 정치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만 하는데, 좋은 정치 교육이 없으면 나쁜 정치에 휩쓸리게 된다. 포퓰리즘 정치에 휘둘리고 트럼프식 정치에 환호하게 된다. 아직 훈련이 되지 않아서 18세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주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훈련을 위해서라도 18세 선거권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나는 사실 대선·총선·지방선거에는 18세 선거권을 도입하되 교육감 선거에 한해서는 16세로 낮추는 한국적 모형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교육감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크게 미치는데 정작 뽑는 건 학생들의 부모이다.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가정에서 부모와 학생이 교육정책에 대해 토론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교육적이지 않을까.

대선을 앞두고 많은 후보가 여러 교육 공약들을 내고 있다.

개별 공약에 대해 하나하나 판단을 내리기는 아직 섣부른 것 같다. 국공립 대학 공동학위제, 서울대 폐지론과 같은 대학 체제 개혁이나 5-5-2 학제 개편과 같은 공약에 관해서는 심층적으로 고민하며 추후에 관련된 입장을 별도로 낼 계획이다.

교육부 폐지론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최적 개혁 방안을 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가교육위원회 신설과 같은 교육부 권한과 조직의 과감한 개혁은 바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적으로야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교육위원회가 선거관리위원회나 감사원처럼 헌법적 위상을 갖고 독립 권한을 행사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현행 법체계에서 실현 가능한 방안은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교육과정과 중장기 교육개혁 방안을 설계하고, 그 실행기구 역할을 지금의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이 나눠 맡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교육감의 자리에서 바라본 차기 대통령의 조건은?

국민들 사이에 기존 입시 중심과 대학 서열 구조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대단히 큰 것 같다. 그 열망이 서울대 폐지, 사교육 폐지 국민투표 같은 어찌 보면 좀 과격하다고 할 수 있는 공약으로 나타난 것 아니겠나. 서울 교육을 책임지면서 우리 아이들이 학벌 체제 속에서 신음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출신 학교 졸업장에 따라 삶의 질이 현격히 차이 나는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교육 불평등의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하다는 걸 느꼈다. 현재의 수직 서열화된 교육 체제를 끝내기 위해 근원적 대책을 마련하는 대통령 후보가 아마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싶은 대선 공약이 있나?

적어도 이번 대통령은 학력과 학벌에 의한 차별을 끝내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여러 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쉽지 않았기에, 결국 법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단계가 아닐까 싶다. ‘학력·학벌 차별금지법’ 제정이 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 서열화의 폐해, 말하자면 대학 졸업장이 직업 세계와 소득 격차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시키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서열화와 사교육비 과다 등의 문제를 몸소 겪고 또 바라보며 우리나라 학생과 학부모, 어린아이를 키우거나 혹은 자녀가 없는 사람까지 교육에 대해 공통적으로 가진 정서는 ‘불안’이다.

교육 불안을 획기적으로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둘째 아이부터는 대학 등록금을 국가에서 완전히 책임지는 방식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교육 기본소득’이라는 것도 상상해봤다. 지금도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교육 복지정책이 다수 있지만 모두 파편적이고 자투리성이다. 방과 후 프로그램에 얼마, 수학여행 지원에 얼마, 이렇게 개별 프로그램 안에서 지원하니 학교에서 감당하는 복지 전달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지 말고 아예 교육 기본소득을 통으로 주고, 그걸 개별 가정에서 아이 교육에만 쓸 수 있게 보완 장치만 만들어주면 좋지 않을까? 개인적 상상이지만 사회에서 한번 논의해보면 좋겠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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