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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정치, 시대정신 되나

2017년 02월 23일(목) 제492호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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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대연정’ 화두를 던진 뒤 정치권에 큰 논쟁이 일었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당선자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임기의 대부분을 보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연합정치가 절실하다.

연합정치는 한국에서 인기 없는 주제다. 어느 정당이건 핵심 지지층은 연합 없이 단독으로 가져가는 승리를 가장 선호한다. 그래야 대선 이후 지지층의 뜻대로 정부가 운영되리라 믿는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더불어민주당)는 ‘대연정’ 화두를 던졌다가 “새누리당은 연합이 아니라 청산 대상이다”라는 지지층의 반발에 곤욕을 치렀다. 당내 경선 국면에서도 두고두고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인기 없는 아이디어를 피해갈 수 없는 아주 특수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대통령제가 가진 가장 뿌리 깊은 숙제를 한국 정치가 정면으로 받아들었다. 첫째, 승자독식 게임인 대통령제에서 연합정치를 꼭 해야 할까? 둘째, 연합정치가 대통령제에서 작동 가능한가?

5월 대선을 가정할 경우, 다음 대통령은 임기 5년 중 3년을 20대 국회와 함께 통치해야 한다. 임기 후반 권력 누수 현상까지 고려하면 20대 국회가 핵심 파트너다. 현재 의석 분포는 민주당 121석, 새누리당 94석, 국민의당 38석, 바른정당 32석, 정의당 6석, 무소속 8석이다(새누리당 김종태 의원 당선무효 확정으로 궐위 1석). 원내정당이 다섯 개,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가 네 개나 된다. 20대 국회는 21세기 들어 다당제 경향이 가장 뚜렷하다. 어느 당이 대통령을 배출하더라도 여소야대 국회가 예정되어 있다.


이로부터 대통령제의 고전적인 딜레마가 현실에 등장한다. 비교정치학에서 손꼽히는 석학인 후안 린츠는 1990년대에 내놓은 일련의 영향력 있는 연구에서 ‘이중 정통성’과 ‘경직성’을 대통령제의 핵심 문제로 꼽았다.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과 입법부가 대선과 총선이라는 별개의 선거로 선출되므로 둘 다 민주적 정통성이 확고하다(이중 정통성). 여소야대 상황에서 타협이 작동하지 않고 대통령과 의회가 극한 대결로 치달으면 어떻게 될까? 린츠는 이렇게 쓴다. “이러한 대결을 해소할 민주정치적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중 정통성 문제로 대통령과 입법부 사이에 교착이 발생해도 대통령제는 제도적 출구를 갖고 있지 않다.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선출직의 임기는 헌법으로 보장받는다(경직성). 교착이나 위기 국면에서 내각 해산이나 총리 교체를 유연하게 택할 수 있는 의회제(내각제)와의 차이다. 의회제 국가인 영국에서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패배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즉각 사임했다. 헌정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고 집권 보수당은 바로 후임 총리를 뽑았다.

이중 정통성 딜레마는 대통령의 권한을 결정적으로 제약하고, 경직성 때문에 의회 해산과 재선거 등으로 교착 상태에서 주권자의 뜻을 재확인할 수도 없다. 그래서 린츠는 대통령제가 구조적으로 위기에 더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20년이 넘는 후속 연구와 찬반 논쟁이 벌어졌지만, ‘린츠 테제’는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대통령제의 딜레마에 ‘독특한’ 해법을 제시해왔다. 1988년 이 딜레마를 처음 맞닥뜨린 노태우 정부(299석 중 여당 의석 125석)는, 야 3당 중 둘을 끌어들이는 ‘3당 합당’으로 200석이 훌쩍 넘는 공룡 여당을 만들어 문제를 분쇄해버렸다. 19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 139석으로 역시 과반 확보에 실패한 김영삼 정부는 ‘의원 빼가기’를 통해 과반을 맞춰냈다. 입법부를 구성한 민의를 대통령이 힘으로 왜곡하는 해법이다.

박근혜 정부는 152석 과반 의석과 함께 출범했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이 통치에 필요한 의석수를 사실상 180석으로 끌어올린 후여서 같은 딜레마에 봉착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예 입법부를 우회해 이 문제를 없는 셈 쳤다. 국회 내의 협상보다 여론을 동원한 압박이 일상사였다.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과 행정 권력의 변칙 활용이 극대화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박근혜식 통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린츠가 “이러한 대결을 해소할 민주정치적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그 문제를, 박근혜 정부는 민주정치적 원칙을 무시함으로써 풀어보려 했다. 부분적으로는 그 결과로 박근혜 정부는 20대 총선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여소야대로 재편된 20대 국회는 박근혜 게이트를 파헤쳐 정권의 운명을 뒤흔들었다.

차기 정부는 입법부를 강제로 재편하거나 우회하기 어렵다. 정당정치의 역사가 쌓이면서 좌우 정당을 넘나드는 정치적·심리적 부담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권력기관을 동원한 입법부 우회 통치는 보수 정부의 적폐 중에서도 핵심이고, 박근혜 정부의 몰락으로 보여주었듯 작동할 가능성도 별로 없다. 이제 입법부와 발을 맞추는 통치 외에는 정권이 성공할 길이 없는데, 입법부 환경은 노태우 정부 때보다 더 까다롭다. 원내 1당이 121석에 불과한 다당제 구조에다, 원활한 통치를 위해서는 150석도 아니고 180석 이상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1997년 김대중·김종필의 DJP 연합은 내각제 개헌 약속 파기로 깨졌다

이렇게 해서 연합정치는 선택의 문제를 벗어나서, 린츠 테제가 강제하는 필수가 되었다. 공동정부 구성이든 협치든 사안별 연대든, 연합정치는 이중 정통성 문제를 우회하지 않고 정석으로 해소해준다. 통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경직성이라는 대통령제의 단점은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라는 장점으로 바뀐다.

문제는 대통령제에서 연합정치가 과연 작동 가능할까 여부다. 연합의 파트너에 나눠준 권력은 언제든지 대통령이 회수할 수 있다. 김대중·김종필 연립정부였던 ‘DJP 연합’은, 내각제 개헌 약속이 파기된 데다가 김종필 측의 내각 인사권이 어디까지인지를 두고 갈등이 불거지면서 깨졌다. 의회제라면 연합의 해체는 정권의 붕괴를 뜻하므로 서로 어려운 선택이다. 하지만 대통령제에서 정권이란 사실상 대통령 1인을 뜻한다. 근본적으로 대통령 개인의 뜻에 기대야 하는 연합정치는 제도가 보장하는 연합정치보다 깨지기 쉽다.

대통령제에서도 연합정치는 빈번해

대선 주자나 대통령은 더 큰 연합정치를 추구할 동기가 있다. 지지 기반이 넓을수록 통치력이 커진다. 하지만 유력 대선 주자 휘하의 정치인이나 핵심 지지층은 ‘50%+1표’를 확보한 시점에서 연합의 확장을 멈추기를 원한다. 휘하의 정치인은 권력을 나눌 대상이 가능한 한 소수이기를 바라고, 핵심 지지층은 지지하는 주자의 노선이 가능한 한 온전히 관철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이 초박빙 싸움이 아닐수록 ‘연합 거부 메커니즘’은 극대화된다.

DJP 연합은 이념적 거리가 상당해서 지지층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컸지만, 1997년 대선이 초박빙 국면으로 전개되면서 극복할 수 있었다. 반면 2017년 대선 구도에서는 대세론을 형성한 문재인 전 대표의 핵심 지지층에서 연합정치에 대한 거부감이 두드러진다. 새누리당·바른정당은 물론이고 국민의당과의 연합정치에도 비판적이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2월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민의당을 향해 “정당 통합이 어렵다면 연립정부 협상이라도 시작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가 핵심 지지층의 비난에 시달렸다. 민주당 처지에서 국민의당과의 연합정치는 딜레마를 돌파할 최소 조건에 해당하지만 비판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두 당 의석을 합치면 159석으로 의결정족수는 충족하지만 ‘국회선진화법 정족수’ 180석에는 못 미친다.

ⓒ연합뉴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야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5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에 던진 대연정 제안은 지지층에서 통제 불가능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노 대통령에게는 긴박한 위기의식이 있었다. 2002년 대선부터 2008년 임기 종료까지 노 대통령을 계속 보좌했던 한 참모는 이렇게 회상했다. “2005년 대연정 제안이 뜬금없이 나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총리는 국회 다수파가 추천하도록 하겠다’라는 말을 했다. 총리를 추천할 다수 연합이 국회에서 구성되고 거기서 나온 총리가 실권을 행사하면 그게 사실상 연정이다. 국회 협조 없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없다는 게 노 대통령의 핵심 문제의식이었다. 실패한 후에도 그 발상 자체를 후회한 것이 아니라, 일이 성사가 안 될 방식으로 던진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그런 위기의식을 지지층이 대통령만큼 절실히 느낄 수는 없다. 대연정 제안은 지지층에 떨어진 폭탄이 되어 정권의 기반을 흔들었다.  

지지층 관리보다 더 큰 숙제도 있다. 야당이 연합에 참여할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2017년에는 패배했지만 2022년 대선에서 정권 탈환을 노릴 제1야당 지도자 처지에서 따져보자. 이 지도자는 2017년에 선출된 정부가 실패할수록 정권 탈환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자신이 연합정치에 들어가서 정부가 성공하도록 돕는다면? 정권 탈환 가능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이 구조는 야당이 연정 참여를 거절하도록 만든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정확히 이와 같이 대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제에서 연합정치는 드문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제와 연립정부:제도적 한계의 제도적 해결(홍재우·김형철·조성대, 2011)’ 논문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63개 대통령제 국가를 대상으로 총 687년간 통치 형태를 추렸다. 총 687년 중 442년 동안 대통령 소속 당이 의회에서는 소수파였다. 이중 정통성 딜레마는 아주 흔한 현상이다. 그런데 이 442년 중 총 250년 동안 연립정부가 형성되었다. 비율로 따지면 56.6%로, 소수파 정부에서는 연립정부 구성이 단독정부보다도 더 많이 나타났다.

ⓒ연합뉴스
지방정부에서 연정을 실험한 남경필 경기도지사(왼쪽 사진 오른쪽)는 부지사 직을 야당에 주었다.

논문 저자 중 한 명인 조성대 교수(한신대·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는 “대통령제와 연립정부가 꼭 모순되는 제도는 아니다. 연합정치란 기본적으로 ‘노선’과 ‘관직’의 교환이다. 예를 들어 민주당 대통령 정부에서 정의당이 노동부 장관을 맡는다고 하자. 그 ‘관직’에서 자기 노동정책을 펴는 대가로 입법부에서는 정의당 의원들이 민주당 당론에 따라 투표하는 식의 거래가 기본이다. 이 거래를 어떻게 짜는가에 따라 연합의 가능성은 폭넓게 열려 있다”라고 말했다.

린츠 테제에 대한 ‘한국식 대응’들이 수명을 다해가는 지금, 민주적 제도 내에서 가능한 대안은 크게 둘이다. 첫 번째는 대선과 총선 주기를 일치시키는 동시선거다. 이 경우 대통령 후광효과 덕분에 집권당이 의회 다수파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연정 제안이 실패한 후에도 통치가 작동할 제도를 끊임없이 모색한 노무현 대통령이 던진 ‘원포인트 개헌안’도 대선·총선 동시선거였다. 하지만 이 대안은 개헌이 필요한 데다가, 입법부와 행정부의 상호 견제라는 대통령제 핵심 원리와 맞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한국식 대응’이 시대착오이고 ‘총선·대선 동시선거’도 개헌 장벽과 원론적 반론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대안이 연합정치다. 그래서 연합정치는 여야 후보들이 인식을 같이하는 시대정신이 되어가고 있다. 저마다 쓰는 용어는 조금씩 다르고 구상도 제각각이기는 하지만,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우상호 원내대표 외에도 김부겸 의원(민주당)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바른정당) 등 여야 주요 정치인이 비슷한 인식을 보여준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연정 합의문을 작성하고 부지사 한 자리를 야당에 넘기는 등 지방정부에서 연정을 실험해봤다. 남 지사는 “연합정치가 잘 작동한다는 실제 모델을 국민들께 보여주면, 연합정치에 더 어울리는 선거제도나 권력구조로 제도를 바꾸자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지 않겠나”라고 조언 그룹과 논의하곤 한다.

“‘정치적 개헌’의 공간이 열렸다”


다당제와 국회선진화법이라는 핵심 조건들이 유지되는 한 연합정치는 20대 국회 내내 화두가 될 전망이다. 연합정치와 합의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주장해온 정치학자 최태욱 교수(한림대 국제대학원)는 20대 국회를 예외적인 기회로 본다. “한국 정치가 양당제로 고착되던 중에 양대 정당이 내부 분열을 감당 못하고 쪼개진 결과가 지금의 다당제다. 사회에 뿌리내린 다당제가 아니고, 우리 선거제도도 양당제를 촉진한다. 이 예외적인 기회에 연합정치를 잘 만들어내서 자리 잡도록 할 필요가 있다. 20대 국회가 끝나면 다시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연합뉴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월2일 대연정을 제안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연정의 상대가 어느 세력까지인가를 둘러싼 논란은 부차 문제가 된다. 오히려 연정 자체가 가능할지를 결정하는 질문들이 급박하게 떠오른다. 대통령이 국회에 국무총리 추천권과 같은 권력을 넘길 것인가, 국회는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 국무총리를 추천할 다수 연합을 책임지고 구성할 수 있나, 그 총리는 자신을 추천한 국회에 책임지는 형태로 통치할까, 대통령은 그와 같은 ‘유사 의회제 모델’을 임기 끝까지 보장할까, 그렇게 구성하는 연합이 성취하려는 핵심 의제는 무엇인가 등이 본질적인 질문이 된다. 이 질문들에 대해 대선 주자와 의회 지도자들이 충분히 답을 한 후에야, 연정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를 따져 물을 조건이 갖춰진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정치인들이 보여줄 능력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린 시기다. 이 시기에 입법부의 권한을 재정립하는 등 권력의 운영 원리를 잘 구성해낸다면, 현재 헌법에서도 사실상 개헌에 준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정치적 개헌’의 공간이 열렸다”라고 말했다.

개헌을 통하지 않고도 대통령제의 딜레마를 뛰어넘고 권력의 구동 원리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드물게 찾아오는 공간이다. 물론 연합정치에 반대하는 노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예외적인 시기의 정치 지도자라면 누구도 이 주제를 회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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