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먹었던 음식 중에 정말 흙수저 같았던 음식은 뭐예요?” 지난 1월15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오늘의 유머’에 질문 하나가 올라왔다. 순식간에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 “밥 한 숟가락에 굵은소금 한 개씩 넣어 먹은 거요” “물에 카레가루만 풀어서 끓여 마셔본 적 있네요” “자취할 때 물 끓여서 다시다만 넣어 먹은 적 있어요” “자취 대학생인데 아리수 먹고 3일 굶은 거요” 정도는 양반이었다.

학교 식당에서 라면에 밥 말아먹으라는 용도로 파는 500원짜리 공깃밥을 하나 사고 스낵코너에 비치된 단무지 몇 개를 반찬 삼아 구석에서 ‘찌그러져’ 먹었다는 대학생, 밥과 쌈장과 올리브 통조림만으로 한 달을 버텼다는 자취생, 폐기하려고 냉동실에 얼려둔 삼각김밥 3개를 너무 배가 고파 녹이지도 않은 채 부숴서 먹었다는 전직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일하던 한식당에서 손님이 남기고 간 육회가 꿀맛이어서 슬펐다는 유학생, 웨딩홀 혼주 음식은 질이 좋아서 먹다 남은 것도 맛나다는 웨딩홀 아르바이트생, 방값과 면접교통비에 쪼들려 지금도 라면 수프와 고시텔 밥으로 며칠째 연명하고 있다는 취업준비생…. ‘ㅋㅋ’와 ‘^^;’와 ‘ㅠㅠ’가 뒤섞인 청년들의 이 ‘흙밥’ 경험담은 어느 개인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었다.

ⓒ시사IN 윤무영
동서고금 젊은이들은 늘 끼니를 ‘때우며’ 살았다. 배고픈 이들은 청년 말고도 많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청년들이 먹는 흙밥에는 몇 가지 특수한 요인들이 있다. 고비용 대학 교육, 취약한 노동(아르바이트) 환경, 길어진 취업 준비 기간, 열악한 주거 여건 등이다. 이 모든 조건 속에서 청년들은 제대로 밥을 챙겨 먹기 위해 필요한 돈과 시간과 심리적 여유, 이른바 ‘식사권’을 잃었다. 아니, 정확히는 빼앗겼다.

우리들의 배고픈 ‘우골탑’

한양대학교 졸업생 이호영씨(27)는 친구 A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A의 다른 친구 B가 생활이 어려워 A가 매일 한 끼 식사를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A가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친구 B가 옆에서 기다렸다가 A가 비운 식판을 갖고 배식대로 가 밥과 반찬을 리필받아 먹는 방식이었다.

B처럼 밥 한 끼 마음 편히 먹지 못하는 친구들이 실제 대학 내에 많다는 사실을, 이씨는 2014년 2월 ‘십시일밥’이라는 대학 내 봉사단체 활동을 시작하면서 절감했다. 십시일밥은 대학생들이 공강 시간에 학교 식당에서 봉사활동한 대가로 식권을 받아, 그것을 식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일시적인 봉사활동으로 생각하고 꾸린 이 단체가 3년째 전국 29개 대학으로까지 확산될 줄 이씨는 예상하지 못했다. ‘자존심 센 대학생들이 과연 식권을 신청할까’ 반신반의했지만 수요는 넘쳐났다. 지금껏 1900여 명에 이르는 ‘밥 못 먹는’ 대학생들이 십시일밥에 식권을 요청했다.

대학생은 더 이상 특권층이 아니다. 한때 엘리트 교육의 장이라 불렸던 고등교육기관에 다니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그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 때문에, 대학생은 특권층이 되기는커녕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빈곤층 신분에 가까워진다. 이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것이 한 해 최고 999만원(2016년 명지대·입학금 포함)에 육박하는 대학 등록금이다. 연세대 988만원, 중앙대(제2캠퍼스) 955만원, 이화여대 942만원 등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은 가히 ‘세계 2위’(2015 OECD 교육지표 조사 결과)를 찍을 만큼 최고 수준이다.

한 해 1000만원씩을 턱턱 내줄 수 있는 부모를 만나지 못한 청년들은 대학생이 되기 위해 빚을 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전국 대학·대학원생 24만8796명이 7861억5700여만원에 이르는 정부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대학알리미 ‘학자금 대출 현황’ 통계). 민간 금융기관에서 받은 학자금 대출금을 더하면 그 수치는 훨씬 더 커진다.

공부하기 위해 빚진 청년은 결국 굶는다. 부채 세대 연구서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천주희 지음, 사이행성 펴냄)에 등장한 대학생 서현민씨(가명·25)는 군 제대 후 복학하며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더 이상의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기 위해 그는 장학금을 타야만 했고, 장학금을 타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다. 공부하느라 바쁜 그에게 ‘일단 나가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먹어야 하고, 다시 도서관으로 올라가야 하는’ 밥 먹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래서 서씨는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커피만 마시며 밥을 굶는다.

사람이 일을 하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흙밥을 먹기 싫으면 일을 해서 돈을 벌면 된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밥을 먹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도무지 제대로 밥을 먹을 수가 없다.

휴학생 김원진씨(가명·22)는 매일 아침 6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침과 점심, 매일 두 끼를 걸렀다. 사장은 카페에서 키우던 개에게는 수시로 치킨과 소시지 등 간식거리를 챙겨주었지만 아르바이트생들에게는 빈말이라도 “밥 먹고 왔니?”라고 물어보지 않았다.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수습 기간 15일 동안 가게 앞 주먹밥 집에서 2000원짜리 주먹밥을 먹을 수 있게 해준다던 사장은,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주먹밥 먹는 모습을 보고 “저게 밥값까지 나가게 하네”라고 중얼거렸다. 김씨는 눈치가 보여 배가 고파도 주먹밥을 먹지 않았다.

카페 일이 오후 1시에 끝나도 그에게는 또 다른 아르바이트가 기다리고 있다.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학원 보조교사 일이다. 두 아르바이트 사이 시간에 모자란 잠을 보충하다 보면 하루 중 유일한 식사 기회(점심 겸 저녁)도 놓치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편의점에 들러 허겁지겁 삼각김밥을 사먹었다.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연대알바노조에 접수된 사례들 중에는 김씨처럼 식사권을 빼앗긴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경험담이 차고 넘친다. 어느 프랜차이즈 스테이크 식당 아르바이트생은 오전 11시~오후 3시 근무를 끝낸 뒤 주어지는 식사 시간 30분 동안에도 손님을 맞고 계산을 하느라 밥을 먹지 못했다. 그 시간에는 분명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사장은 아르바이트생의 ‘무급’ 식사 시간 30분 동안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지 않았다.

ⓒ연합뉴스1월15일, 서울 노량진동 경찰학원 앞에서 공시생들이 고정자리 배정을 기다리며 공부를 하고 있다.

한 프랜차이즈 빵집 아르바이트생은 근무 중 식사로 늘 폐기 처분된 빵을 제공받았다. 어느 날 그와 동료 아르바이트생들은 실수로 비폐기 제품 1만원어치를 나눠 먹었다. 사장은 빵을 훔쳤다고 노발대발하며 경찰을 불렀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즉결심판으로 벌금 5만원을 선고받았다.

‘일 시킬 때는 가족이고, 밥 먹을 때는 남인’ 고용주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봤다는 취업준비생 신승율씨(가명·29)는 ‘밥 못 먹는 알바생’이 많은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회가 ‘너희들이 밥을 먹든 말든, 생존하든 말든 알 바 아니다. 우리는 노동력을 돈 주고 구매했고 최대한 뽕을 뽑으면 그만이다’라는 마인드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이 일을 하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길어진 취업 준비 기간만큼 늘어난 ‘흙끼니’

청년들이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흙밥 탈출구는 ‘정규직 취업’이다. 매일 3000~40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취업준비생 송유민씨(가명·28)는 “정규직으로 취업한 친구들을 보면 그나마 먹는 게 확 나아지더라. 나도 어떻게든 빨리 취업해서 점심때 맛있는 중국집도 가고 저녁 회식 때 고기도 구워먹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년 백수의 고진감래는 쉽게 실현되지 않는다. 2월13일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서울시 청년들의 취업과 창업’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거주 18~29세 청년 취업 경험자 가운데 정규직 일자리를 가져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단 7%에 그쳤다. 올해 9급 공무원 시험에는 역대 최대인 22만8368명이 지원했다. 경쟁률은 26.5대1에 달한다. ‘점심으로 중국집, 저녁으로 삼겹살 회식’이 가능할 정도의 일자리 문을 뚫지 못한 이른바 ‘취업 N수생’들은 서울 노량진 등지에 점점 많이, 또 오랫동안 누적되고 있다.


길어진 ‘준비’ 기간에도 하루 삼시 세끼는 꼬박꼬박 찾아온다. “취직을 했든 안 했든 20대 후반쯤 되면 부모한테 더 이상 손을 벌리면 안 되잖나. 그러니 식비라도 줄여서 버티려고 한다”라고 공무원 시험 준비생 강선혜씨(가명·27)는 말했다. 강씨는 한 달 식비를 20만원으로 제한했다. 강씨는 올해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을 때 식비 대책에 대해선 답을 하지 못했다. “그땐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든지 해야죠, 뭐.” 강씨는 시험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지난해 아르바이트를 중단했다.

가난하다고 왜 모르겠는가, ‘집밥’의 소중함을

흙밥에 질렸다는 자취 대학생 정시원씨(가명·25세)는 오랜 기간 궁리한 끝에 ‘저비용’과 ‘건강’ 두 측면을 모두 살릴 방법을 찾아냈다. 식재료를 구입해 무조건 집에서 조리를 해먹는 것이다. “마트에서 저렴한 제품 위주로 쌀, 달걀, 두부 등을 구입하니 열흘에 4만원, 한 달 12만원이면 식비가 해결됐다. 편의점이나 학교 식당에서 사먹는 것보다도 훨씬 적게 들더라.”

다만 조건이 있다. 아무리 바빠도 점심시간에는 무조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조리를 해야 하고,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도록 식재료를 써야 한다. 정씨는 자신이 주변 친구들에 비해 여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조리를 하고 식재료를 관리하는 데 매우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간다. 이게 가능하려면 일단 학교나 직장에서 집이 아주 가까워야 하고, 조리가 가능한 주방도 있어야 하고, 알바를 하지 않는 시간도 확보돼 있어야 하는데 주변 많은 친구들의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조리가 용이한 환경에서 사는 청년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청년 식생활 연구 모임 ‘끼다(끼니를 다함께)’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사업으로 ‘청년 독립생활자 식생활 실태에 관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 1인 가구 청년들은 좁고(72.9%), 환기시설이 부족하고(40.3%), 불만족스러운(56.3%) 부엌에서 혼자(65.6%), 불규칙하게 밥을 먹고(76.6%) 있다.

ⓒ시사IN 조남진고시원처럼 음식 조리가 불가능한 청년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이 부실한 식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떻게든 밥을 지어 먹고 살려는 발버둥은 지금 청년들이 처한 주거 현실에서 가끔 치명적인 ‘무리수’가 되기도 한다. 어느 겨울, 서울 한 고시원의 전기차단기가 내려갔다. 어떤 방에서 전기를 많이 써서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주인 할머니가 범인을 색출해냈다. 방에 쌀 한 포대와 전기밥솥을 갖다놓고 몰래 설거지하며 끼니를 이어가던 고시생이 ‘딱 걸렸다’. 원래 고시원에서 전열기나 취사도구 사용은 금지돼 있다. “추운 겨울날, 주인 할머니가 전기밥솥을 안은 고시생을 얼마나 매정하게 쫓아내던지 보는 내가 다 불쌍했다”라고, 그 사건을 목격한 취업준비생 신승율씨(가명)가 말했다.

젊음을 저당 잡은 청년들의 빚, ‘흙밥’

‘슬픈 전기밥솥 고시생’은 식사권을 지키려다 주거권을 잃었지만, 청년들 대부분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식사권을 포기한다. 취업준비생 송유민씨(가명)는 “수중에 돈이 떨어졌을 때 가장 줄이기 쉬운 게 식비다. 방세는 고정되어 있고, 통신비나 사회생활비를 줄이기도 싫다. 밥 한 끼를 굶을지언정 친구들과 모여서 놀 때에 ‘돈 없다’고 티내긴 싫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청년들은 식사권을 포기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젊고’ ‘건강하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젊어서 한두 끼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린이나 노인과는 달리 우리는 젊고 튼튼해서 배고픈 걸 좀 잘 견딜 수 있으니까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흙밥 먹는 젊은이들이 식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공통적으로 했던 말들이다.

그런데 이는 가난한 청년들에게는 또 하나의 빚이 된다. 경제교육협동조합 푸른살림의 박미정 대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들과 재무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의 젊음과 건강을 믿고 대부분 식비를 최후 순위로 두더라. 하지만 이는 결국 훗날 의료비 지출과 지속 가능한 소득 창출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젊은 시절 부실한 식사로 만성질환자가 돼 돈을 벌기 힘든 사례를 많이 봤다”라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하루 두 끼를 걸렀던 휴학생 김원진씨(가명)는 “당시 많이 어지럽고 몸이 안 좋아져 결국 오후 아르바이트까지 그만두고 쉬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강박적으로’ 자취방에서 집밥을 조리해 먹는다는 대학생 정시원씨(가명)도 동기가 있었다. “재수 시절 고시원에 살면서 편의점 바나나 한 개로 하루를 견디며 살았더니 ‘이렇게 살다간 죽겠다’ 싶었다. 결국 공부를 그만두고 고향 집으로 요양을 가게 되면서, 앞으로 지속 가능하게 먹고살려면 일단 지금 먹을 것부터 잘 챙겨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빽다방 커피 한 잔에도 ‘울컥’

요즘 청년들은 ‘먹는 문제’에 날이 서 있다.
청년들이 밥을 가장 후순위에 둔다는 사실이 곧 그들이 먹는 문제에 초연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프랜차이즈 커피점 ‘빽다방’에서 1500~2500원짜리 커피를 자주 사 마셨다는 한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도서관에서 받은 포스트잇(위 사진) 하나가 화제가 되었다. 포스트잇에는 “공시생인 거 같은데 매일 커피 사들고 오시는 건 사치 아닐까요? 같은 수험생끼리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느껴져서요. 자제 좀 부탁드려요”라고 쓰여 있었다. 남이 먹는 커피 한 잔을 사치로 규정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만큼, 지금 젊은이들은 ‘먹는 문제’에 날이 서 있다.

대학원생 유세정씨(가명·26)도 스스로 먹는 문제에 예민하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밥 먹자’고 할 때 항상 지갑 사정을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린다. 내가 오늘 여기에 얼마 이상을 쓰면 안 되고, 만약 넘기면 뭘 포기해야 될지…. 특히 모임이 1차, 2차, 3차로 넘어갈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는데 친구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일 때 많이 짜증나고 우울해진다.”

“우선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꼭 빚을 다 갚지 않아도, 취직하지 않아도, 성공하지 않아도 청년들은 맛있는 밥을 먹어도 된다.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자전적 산문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를 연재하는 만화가 김보통씨가 백수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줄인 것 역시 식비였다. 그는 이어 이발, 옷, 영화 등을 포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는 팬티 바람으로 부엌에 서서 식빵에 피어난 곰팡이를 뜯어내며 ‘착실하게 스스로의 존엄을 바닥에 내려놓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찌해야 이 빈곤의 입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한참 고민하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어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탕수육 소자에 짜장면 하나요.”

“우선은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그래야 바닥에 내팽개쳐진 내 존엄을 다시 챙길 수 있을 테니까. 맛있는 것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테니,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하고 싶은 ‘작은 일’을 하면 된다(김보통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제12화 ‘식빵맨의 하루’).”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버렸던 밥을, 상황이 좋아졌을 때 청년들은 또 가장 먼저 챙긴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의 저자 천주희씨는 청년 부채 연구의 한 참여자가 학자금 대출금을 모두 갚았을 때 가장 먼저 늘린 게 ‘식비’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단순히 수입이 늘어서나, 빚을 다 갚아서가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사먹어도 괜찮다는 심리적 안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모든 것의 시작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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