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새로운 스마트폰 ‘G6’를 내놓는다. 전작 ‘G5’의 실패로 LG전자는 지난해 휴대전화 사업에서 1조2000억원이 넘는 손해를 입었다. 아무리 큰 회사라도 손해를 계속 감당하기는 어렵다. 이번 G6의 성패가 회사 생사를 가를 것이라는 전망도 무리는 아니다. LG전자는 이토록 중요한 제품 출시에 어떤 전략을 들고 나왔을까? 가장 먼저 공개한 특징은 18:9라는 새로운 화면 비율이다. 이 소식을 접한 소비자들은 다소 혼란스러웠다. “스마트폰의 화면 비율이 달라질 필요가 있나?”

‘실험정신만은 세계 최고’ 수준인 LG전자가 새로운 화면 비율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뭐든지 길게 만들었을 때 잘된 경우가 많았다. 2001년 출시한 폴더폰 ‘아이북(i-book)’이 대표적이다. 한글 8줄을 표시할 수 있을 정도로 화면을 늘린 이 제품으로 웬만한 문자는 스크롤하지 않아도 다 읽을 수 있었다. 아이북은 출시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려 LG전자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기록됐다. 2012년 세계 최초로 출시한 ‘울트라와이드’ 모니터도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21:9라는 독특한 화면 비율 때문에 소비자들은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쓰는 ‘멀티태스킹’에 최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제조사도 이 화면 비율 모니터를 뒤따라 만들었지만, ‘울트라와이드’ 제품군에서는 LG전자가 지금까지 꾸준히 세계 판매 1위를 지키고 있다.

LG전자는 꾸준히 새로운 화면 비율의 휴대전화를 출시해왔다. 왼쪽부터 폴더폰 ‘아이북’, 피처폰 ‘뉴초콜릿(21:9)’, 스마트폰 ‘옵티머스 뷰(4:3)’, 그리고 출시 예정인 G6(18:9).
2009년 출시한 ‘뉴초콜릿’은 휴대전화로는 전무후무한 21:9 화면 비율을 택했다. ‘소녀시대’ 9명을 한 화면에 담을 만큼 넓다는 광고는 참신했지만, 피처폰의 몰락기를 피해가기는 어려웠다. 스마트폰 시대에도 남들(특히 삼성)과 다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갤럭시 노트’ 시리즈와 경쟁하기 위해 4:3 화면 비율을 지닌 ‘옵티머스 뷰’ 시리즈를 내놓았지만 판매량은 기대에 못 미쳤고, 결국 명맥이 끊겼다.

이번 G6의 새 화면 비율도 LG전자 특유의 ‘늘리기’ 실험일까? 그렇지는 않다. 삼성전자가 4월 출시 예정인 ‘갤럭시 S8’도 이와 비슷한 화면 비율을 적용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동안 유출된 정보에 따르면 삼성의 새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갤럭시 S8은 LG전자의 G6보다 오히려 조금 더 긴 18.5:9 화면 비율을 채택했다고 한다. 양 측면이 굴곡 처리된 ‘엣지’ 디자인이 적용되면 체감상 G6보다 훨씬 길쭉한 모양으로 출시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이런 변화는 예정된 순서였다. 단순한 이유다. 소비자들은 화면이 계속 커지길 바라지만, 정작 화면이 커지면 스마트폰을 손에 쥐기 불편하다. 결국 그립감이 좋으면서도 화면을 더 크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위아래 화면을 늘리거나, 가로 화면 양옆의 남는 공간(베젤)을 줄이는 방식이다. LG와 삼성의 화면 비율 수정은 첫 번째 해결책이다. 화면을 위아래로 늘리기 위해 기존 물리 버튼은 화면 속 아이콘 터치로 대신한다. 영상을 볼 때처럼 중앙 버튼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는 아이콘이 화면에서 잠시 사라지는 방식이다. 두 번째 대책인 좌우 폭 베젤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기술혁신으로 점차 현실화되었다. LG와 삼성 모두 최근 자사 고유의 ‘베젤리스’ 디자인을 특허청에 등록했다. 스마트폰 내부 부품 기술의 혁신도 이 같은 추세의 현실화를 뒷받침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스마트폰은 모두 18:9 화면 비율이 되고, 우리가 손에 쥔 기존 스마트폰은 전부 구형이 되는 걸까? 과연 18:9가 스마트폰에 가장 좋은 화면 비율일까? 왜 애초부터 2:1이 아닌 18:9라고 부르는 걸까? 이런 의문이 든다면 기나긴 ‘화면 비율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익숙한, 그리고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화면 비율은 4:3이다. 이 비율은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만들었다. 그가 19세기 말에 고안한 필름 형태가 영화산업에서 널리 쓰였는데, 이 필름의 한 화면이 4:3 비율에 잘 맞았다. 자연스럽게 TV도 4:3 비율을 따랐다. 기술 한계도 한몫했다. 초기 TV 브라운관 제작 기술로는 이보다 더 긴 화면을 만들기 어려웠다. 사람이 두 눈으로 한 번에 볼 수 있는 가로·세로 범위의 비율이 4:3 정도라는 의견도 있다.

화면은 디지털 콘텐츠를 보는 틀

영화인들은 전보다 더 넓은 화면을 보여줄 방법을 찾았다. ‘시네마스코프’는 가장 유행했던 방식 중 하나다. 촬영 시 특수렌즈를 달아 좌우로 좁게 왜곡되도록 찍고, 영사기가 다시 가로를 늘려 상영하는 방식이다. 최근 흥행한 영화 〈라라랜드〉는 이 기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가로 너비가 4:3보다 두 배 이상인 2.35:1이나 2.39:1 화면 비율이 대부분이다. 이 화면을 좁은 TV 화면으로 옮겨오면 양옆이 잘리거나 위아래로 검은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다. TV가 아무리 커져도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의 ‘맛’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합뉴스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2.35:1이나 2.39:1 화면 비율이 대부분이다.
4:3 화면의 ‘일반 TV’ 시대는 끝났고, 지금은 16:9 비율의 ‘디지털 TV’ 시대다. 대부분 TV가 16:9 화면 비율로 출시하면서 몇 년 새 TV 프로그램과 비디오카메라 모두 16:9 화면 비율을 택했다. 왜 하필 16:9일까? 16은 4의 제곱, 9는 3의 제곱이다. 4:3에서 각각 제곱한 숫자 변화는 논리적인 진화처럼 보이게 한다. 실제로는 4:3(기존 TV)과 2.3:1(영화) 사이에서 중간을 택한 것이지만, 하필 16:9로 정한 이유에는 숫자의 규칙성도 한몫했다.

디스플레이 비율이 4:3에서 42:32으로 진화했다면 다음 단계는 43:33일까? 맞다. 실제로 화면 비율의 다음 진화를 64:27로 예견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64:27은 가로·세로 폭을 쉽게 연상하기 어려운 숫자라 이를 각각 3으로 나눈 약 21:9라는 숫자가 더 널리 통용되며 기존 영화의 스크린과 비슷한 화면 비율(약 2.37:1)이다.

숫자의 규칙성은 마케팅 전략과도 직결된다. 18:9를 2:1로 부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16에서 18로 숫자가 늘어야 화면이 종전보다 더 넓어진 걸 강조할 수 있다.

16:9(TV)와 21:9(영화)는 현재 대세를 이루는 화면 비율이다. 이 둘을 시청하기에 가장 적합한 비율이 그 중간인 18:9라는 것도 나름 설득력을 얻는다. 그럼 향후 18:9가 대세 화면 비율이 될까? 그렇게 하자는 주장이 1998년에 나왔다. 아카데미상을 세 차례 수상한 이탈리아 출신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는 18:9 형식에 ‘유니비지엄(Univisium)’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그는 모든 영상은 결국 전자기기에 더 오래 남는다며 처음부터 전자기기에서 보기 편한 비율인 18:9로 촬영하자고 주장했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기묘한 이야기〉 등이 유니비지엄 비율로 제작하며 화제를 모았지만, 아직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은 주장이다.

스마트폰에 가장 적합한 ‘황금 비율’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LG·삼성의 최신 모델을 소비자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따라 미래는 바뀔 것이다. 다양한 화면 비율의 스마트폰이 나오게 되면, 모바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머리가 더 아파질 것이다. 화면은 디지털 시대 모든 콘텐츠 유통의 ‘틀’인데, 이 틀은 손목시계부터 집채만 한 TV까지 다양하다. 가장 흔한 스마트폰의 화면 비율도 이제는 달라진다. ‘발주처의 높은 분이 쓰고 있는 바로 그 스마트폰’에만 맞추는 식으로 콘텐츠를 개발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모든 면에서 계속 다양해지고 있고, 잘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더 유연해져야 한다.

기자명 김응창 (SK텔레콤 디바이스&시큐리티 랩 매니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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