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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

2017년 02월 21일(화) 제493호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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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되었다. 중국의 잠재적 ‘대안’이었던 김정남의 운명은 북·중 관계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최근에는 북·중 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처음에는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였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에 김정남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의 존재감은 단순히 권좌에서 밀려난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만은 아니었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는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중 관계를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었다. 북한은 중국이 왜 김정남을 끼고 있는지 불만을 터트렸고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김정남은 1995년부터 북한을 떠나 베이징, 마카오 등지를 떠돌았다. 김정일 위원장이 살아 있을 때 김정남은 중국의 ‘인질’이었고 김정은 체제 이후에는 잠재적 ‘대안’이었다. 그런 면에서 김정남은 장성택과 견주어볼 수 있는 인물이다.

ⓒAP Photo
2월13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되었다(사진은 2007년 2월11일 베이징 공항).



돌이켜보면 2000년대 이후 평양의 정치적 소용돌이는 장성택과 김정남 이 두 사람 혹은 둘 중 하나와 중국이 연결될 때 발생했다. 2004년 9월 장성택은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와의 힘겨루기가 원인이었으나 중국 요인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당시 중국은 장쩌민 주석에서 후진타오 주석으로 바뀌는 권력교체기였다. 중국의 권력교체기에는 북·중 관계에 늘 파란이 일었다. 당시 후진타오 총서기와 가까운 천진사회과학연구소가 총대를 멨다. 북·중 관계를 재검토하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논문은 북·중 관계를 기존 혈맹 차원이 아니라 중국의 부담이라는 차원에서 짚었다. 즉, 중국은 미국과 가깝게 지내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는데 북한이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중국의 권력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북한 권력층에게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새로 등장하는 후진타오 체제가 기 싸움을 걸어온 셈이었고 피할 수 없다면 받아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북한의 대응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북한 곳곳에서 암약하던 중국의 정보요원을 색출해 추방하는 것, 또 하나는 북한 내 대표적 친중파인 장성택을 지방으로 쫓아내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 측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대안 세력으로 장성택 체제를 선호한다는 얘기가 여러 루트로 흘러나온 터였다. 이런 마당에 장성택을 평양에 계속 둘 수는 없었다. 후진타오 집권 초기 북·중 간 불꽃 튀는 기 싸움은 결국 후진타오의 측근인 리창춘 정치국 상무위원이 특사로 오면서 마무리됐다.

친중파 장성택 숙청 이유와 비슷

이것은 권력교체기에 북·중 관계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보여준 흔치 않은 경험이 되었다.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10월 재기하기까지 2개월간 평양의 정국은 김정남과 장성택이 손을 잡고 공동으로 주도하다시피 했다. 당시 김정남은 북한 바깥에 있다가 김 위원장이 쓰러지자 중국에서 유명한 치료 방법 등을 수소문해 평양에 들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평소 가까운 사이였던 고모부 장성택과 크고 작은 일들을 주도했다. 이때 두 사람이 ‘김정일 없는 북한’의 새로운 권력 중심으로 떠오르는 듯했다. 중국으로서는 김정일 이후를 대비한 최고 조합이었던 셈이다. 당시 후계자로 지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김정은과 그 후원자인 김경희·김설송·김옥 연합세력에게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심지어 김옥은 김정일 위원장의 병실 문을 꼭 잡고 외부의 출입을 일절 통제했다고 한다.

ⓒ노동신문
2013년 12월12일 장성택(가운데)은 ‘국가전복 음모의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사형당했다. 포승줄에 묶인 장성택이 법정에 들어서는 모습.


두 달 만에 김정일 위원장이 의식을 회복했다. 의식을 되찾자마자 자신이 쓰러져 있는 동안 장성택과 김정남이 손잡고 전횡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곧바로 두 사람에 대한 처리에 들어갔다. 장남인 김정남에 대해서는 국외 추방령이 내려졌고, 장성택에게는 앞으로 주변에 세력을 규합하지 못하도록 돈줄을 차단하는 조처를 취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김정일 위원장이 두 사람에게 내렸던 이 처분이 두 사람의 최후를 규정했다.

장성택에게 내렸던 조치의 핵심은 당이나 국가에서 돈을 줄 수 없으니 필요한 자금은 알아서 벌어 쓰라는 것이었다. 장성택은 이때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당 행정부를 앞세워 해외투자 유치에 나섰다. 이것이 김 위원장의 노림수였다. 장성택이 스스로를 위해서든 아니든 해외자본을 유치하면 북한 경제로서는 나쁠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장성택을 옭아매는 사슬이 되었다. 2013년 12월 처형 사유 가운데 하나가 중국과 석탄 등 자원 거래를 하면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죄목이었기 때문이다.

길게 보면 김정남 피살 사건도 2008년 말 김정일 위원장의 해외 추방 조치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중국 거주는 정식 후계자인 김정은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추방 성격을 띤 외유였다. 중국이 그를 보호한 것도 유사시 대안으로 활용까지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으로서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김정남은 권력에 대한 의지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를 인터뷰해 책을 펴내기도 했던 고미 요지 <도쿄 신문> 편집위원에 따르면, 그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비판적이고 북한의 개혁·개방 필요성에 대해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북한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김정남을 독살한 것으로 알려진 베트남 여성.

권력의지가 크지 않았지만, 둘러싼 주변 여건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를 필요로 한 것은 중국만이 아니었다. 한 탈북자 단체 대표에 따르면 2~3년 전부터 과거 북한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중국 내 조선족들을 중심으로 반북 세력이 결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1950년대 연안파, 갑산파 투쟁에서 밀려나 중국에 거주해온 인사들과 그들의 자제를 중심으로 망명 정권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어왔다는 것이다. 김정남이 이들 반북 세력과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커질 수 있었다. 김정남과 김정은의 한판 승부라는 명분도 가질 수 있었다. 즉 김정남의 존재감이 최근 몇 년 사이 잠재적 위협에서 현실적 위협으로 커진 상태였다는 것이다.

지난해 1년간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치 또한 그의 운명을 회오리바람 속으로 밀어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월 북한 핵실험 직후 북·중 관계가 험악해졌다. 당시 <환구시보> 등 중국 언론은 2004년 천진사회과학연구소처럼 거침없이 북한 비판에 나섰다. 북한은 더 이상 중국의 전략자산이 아닐 뿐 아니라 걸림돌이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교체라도 해야 한다는 식의 막말을 퍼부었다. 중국에는 김정남이라는 대안이 있다는 과시나 다름없었다.

ⓒ중국CCTV
여성 용의자가 이송되는 장면

김정은 위원장 지시 받은 북한 외교관과 접촉


그런데 지난해 7월6일 한국의 사드 배치 선언으로 국면이 바뀌었다. 한국에 사드 배치가 발표되면서 중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전략적 평가가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김정은 정권과의 화해와 북·중 밀월 관계가 필요했다. 중국 처지에서도 김정남이라는 존재가 껄끄러워진 것이다. 설상가상 미국에 트럼프 정권이 등장하면서 미·중 간에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또 트럼프 정권 등장 이후 미국 정가 일각에서는 노골적으로 김정은 참수 작전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참수 작전은 곧 김정은 등 북한 지도부만 골라서 제거한다는 것이다. 제거 뒤 대안 카드로 김정남이 주목되었다. 김정남의 존재감은 이 과정에서도 등장한다. 북한과 중국, 북한과 미국 사이에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김정남이라는 인물의 존재감이 어른거리는 상황이 계속됐다.

실제 수면 아래에서는 그와 관련한 얘기들이 오가기도 했다. 지난 1월 북·중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김정남 때문이라는 얘기가 외교 소식통 사이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북한과 중국이 이 문제를 가지고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정남이 살해되기 직전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를 받은 북한 외교관들이 김정남을 잇달아 접촉해 자진 귀국을 설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월16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한 간부는 “김정은이 해외에 머무는 김정남을 국내로 불러오라고 국가보위성에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소란을 피우지 말고 본인 스스로 귀국하도록 설득하라는 것이 김정은의 지시 내용이었다”라고 말했다. 이 간부는 “보위성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지난 1월20일 마카오에서 김정남과 만났다. 김정남은 북한으로 귀국하라는 김정은의 권고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달라. 시간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송환 지시를 받은 김정남이 신변에 위험을 느껴 미국이나 한국으로 망명할 수 있음을 우려했을 것”이라며 “김정은은 김정남이 해외에서 망명할 경우를 염려해 사전에 암살을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2월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5돌 생일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했다.
이 보도를 통해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북·중 간에 김정남 처리 문제와 관련해 상당한 의견 접근이 사전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우선 중국이 김정남에 대한 보호 조치를 해제하고 북한 처분에 맡기겠다는 식의 의사 표시가 있었을 가능성이다. 그런 전제가 있었기에 북한이 공식 채널을 통해 김정남에게 귀국을 종용했을 것이고, 더 이상 중국에도 머물 수 없게 된 그가 한국이나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정남이 서방으로 망명해 북한이 꺼리는 백두 혈통의 깊은 얘기를 해외 언론에 떠들 경우 북한 체제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2월17일 현재 확실한 건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여성 2명에게 살해됐다는 점뿐이다. 현재로서는 도망친 남자 용의자들이 잡힐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만 그들이 잡힌다고 해서 과연 진상이 규명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나 중국 정보기관들도 김정남 암살 배후를 드러낼 뚜렷한 증거나 진술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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