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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가 그 영국 군인을 죽이라고 했다”

2017년 03월 01일(수) 제493호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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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자의 자녀로 극단적 이슬람주의에 빠진 두 청년이 퇴근길 영국군을 무참히 살해했다. 그들은 폭격에 희생되는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 민간인처럼 ‘단지 운이 나빠’ 죽는 희생자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2013년 5월22일 오후 2시20분경, 한 백인 청년이 런던 남동부 울위치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리 릭비. 영국군 보병연대 소속 고수(鼓手·드러머)이자 기관총병이었다. 신병 모집 및 런던탑 경비를 맡고 있었다. 근무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 중이었고, 현역 및 예비역 장병 지원 자선단체의 로고가 새겨진 후드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가 도로를 건너갈 때 차 한 대가 시속 50~60㎞ 속도로 달려와 그를 들이받았다. 그리고 차에서 흑인 청년 두 명이 내렸다. 그들은 클리버(크고 넓적한 칼)와 나이프, 총을 가지고 있었다. 한 청년이 쓰러진 릭비에게 다가가서 클리버로 그의 목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상처가 벌어지고 피가 뿜어져 나왔으나 그는 릭비의 목을 계속해서 내리쳤다. 마침내 목이 거의 떨어져나갈 때까지. 다른 한 청년은 나이프로 그의 몸을 찔러댔다.

백주의 대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지나가던 차와 사람들이 멈췄다. 무장한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두 청년은 릭비를 질질 끌어 길 한편에 던져두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동기에 대하여 설명했다. 그들은 도망칠 생각이 없었고 순교자가 되기를 바랐다. 그들이 들고 있던 총은 90년 된 구식 리볼버였고 작동되지도 않는 것이었다. 이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녹화해달라고 목격자들에게 요구했다.

ⓒAP Photo
참수 테러를 당한 영국군 리 릭비.
손에 묻은 릭비의 피로 인해 마치 붉은 장갑을 낀 듯 보이는 청년은 비디오에서 대략 아래와 같이 말한다. “우리가 오늘 이 사람을 죽인 이유는 영국 군인들에 의하여 무슬림들이 매일 살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국 군인도 그중 하나다.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다. …폭탄을 떨어뜨리면서 당신들은 그게 한 사람만 죽일 거라고 생각하나? …여자들이 오늘 이런 광경을 보게 되어 유감이지만 우리들의 땅에 사는 여자들도 같은 것을 보아야만 한다. 당신들은 절대로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총을 쏘아대기 시작할 때 데이비드 캐머런이 맞을 거라고 생각하나? 정치인들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당신이나 당신 자식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없애버려라. 그들에게 군대를 돌아오게 하라고 해라. …우리 땅을 떠나면 당신들은 평화롭게 살 것이다.”

이들은 아마도 ‘우리’와 ‘당신’을, 종교를 기준으로 나누고 있는 것 같다. 범인은 둘 다 영국에서 태어난 영국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부모는 비록 나이지리아에서 왔지만 말이다. 이 두 흑인 청년의 이름은 각각 마이클 올루미데 아데볼라요와 마이클 올루와토비 아데보왈레였다. 아데볼라요는 스물여덟, 아데보왈레는 스물두 살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으나 이후 무슬림으로 전향했다.

언론 보도에 나타난 이들의 성장 과정과 결국 이와 같은 잔인한 행위를 하기까지의 경과를 읽어보자면 서구의 이른바 자생적 테러리스트, 즉 이민자의 자녀로 서구에서 출생해 서구식 교육을 받았으되 끝내 극단적 무슬림이 되어 테러를 자행하게 되는 청년들의 이야기의 전형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순진하고 착하던 유색인종 소년들이 자라나면서 불우한 가정사 등의 이유로 방황하다가 점차 삐뚤어져 폭력이나 마약 등을 접하게 되고 사소한 범죄로 감옥에 드나드는 등 점점 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이슬람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극단주의자들에게 포섭된 것이다. 아데볼라요는 음악과 축구를 좋아하는 매우 쾌활하고 예의바른 십대 소년이었다고 한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갔다. 아데보왈레는 조용하고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책을 따라 시도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이들은 방황하던 중 이슬람을 접하게 되고, 런던의 크고 작은 종교 관련 시위에 참석했으며, 시위 도중 경찰을 공격하다가 짧은 기간 구금되기도 하는 등 점점 극단적 이슬람주의에 빠져들었다.  

ⓒEPA
릭비의 가족들이 법원 밖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새로운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리 릭비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두 살 된 아들이 있었다. 다섯 살 연상 아내와는 별거 중이었으나 세 살 어린 동료 병사와 결혼을 약속한 상태였다. 사건 당시 약혼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결혼 잡지들을 사서 마음에 드는 드레스에 동그라미를 친 후 약혼자에게 보내고는 했다. 사건 직전 그는 약혼자에게 근무가 끝나서 부대로 돌아간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가 입고 있던 후드 티셔츠는 약혼자가 사준 것이었다.

범인들은 그저 릭비가 군인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를 선택했다. 희생자는 영국 군인이어야 했고 군인이기만 하면 되었다. 범인들에게 군인은 ‘공정한 타깃’이었다. 그들은 범행 전날 ‘올바른 상대’를 고를 수 있도록 신에게 기도했다고 했다. 그들은 릭비의 후드 티셔츠와 군용 배낭을 보고 그가 군인이라고 짐작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짐작이 맞았다. 그들은 “알라가 릭비를 차 앞으로 지나가게 했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릭비는 운이 나빴다. 하필 폭탄이 떨어지는 자리에 있었던 수많은 전쟁 희생자들처럼 말이다.

릭비의 가족은 릭비가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되기를 바랐다고 했다. 열여덟 살 무렵 군에 지원해서 키프로스, 독일,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복무하고 돌아왔다. 릭비가 아프가니스탄에 있었던 2009년은 영국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한 이래 가장 사상자가 많은 해였다. 가족들은 그가 전쟁터가 아니라 런던의 길거리에서 그렇게 무참하게 죽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데볼라요와 아데보왈레는 범행 직후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서 “우리는 오늘 런던에서 전쟁을 선포한다”라고 말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자기들이 릭비를 죽인 것은 ‘군사작전’ 중에 행한 일이기 때문에 살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자기들이 제복을 입은 것도 아니며 세속의 기준에 따른 군인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신이 자기들을 군인으로 본다는 점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이들은 전쟁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했다. 전쟁은 이제 군대가 파견되고 전쟁이 벌어졌다고 선포된 곳, 즉 소위 분쟁지역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도시들, 즉 서구 민간인들의 일상 공간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지거나 총탄이 날아올지 몰라 하루하루 숨죽여 사는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처럼 말이다.
ⓒCNN 동영상 갈무리
살해 직후 범인 마이클 올루미데 아데볼라요가 정치적 발언을 하는 모습.

물론 범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록 아데보왈레가 공격에 가담하기 전 이미 릭비가 죽었다는 아데볼라요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두 명 모두에게 모살(murder·謀殺)이 인정되고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아데볼라요는 가석방이나 감형이 불가능하고 아데보왈레는 최소 45년의 형을 살아야 한다. 한 군인의 목숨을 매우 처참하게 빼앗은 대가다.

그러나 ‘새로운 전쟁’은 이미 시작된 듯하다. 브뤼셀의 공항에서, 파리의 공연장에서, 니스의 거리에서, 노르망디의 교회에서, 베를린의 크리스마스 광장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있으니 그들이 바라던 대로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도 일상적인 공포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오래된 전쟁’과 그로 인한 희생자 역시 줄어들지 않았다. 유엔에 따르면 2016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목숨을 잃었거나 부상당한 민간인이 1만1500명에 달한다. 이는 역대 최고 수치다. 이 중 3분의 1이 어린이다. 누군가에겐 변함없이 나쁘고 누군가에겐 더 나쁜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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