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 오리 한 마리가 선글라스를 끼고는 느긋하게 베드벤치에 누워 있다. 유난히 커다란 부리의 주황색이 선명하다. 제목도 〈동동이와 원더마우스〉이니 이 부리가 예사롭지 않은 이야깃거리를 만들 것 같다. 책장을 넘겨가니, 아니나 다를까 동동이의 입은 벌떡 일어나 얼굴에서 빠져 달아나는 만행을 저지른다! 지금까지 읽은 동화나 그림책 중 가장 재미있었던 ‘가출’은 ‘집이 작아 가출한 집’(〈삐딱이를 찾아라〉)과 ‘몸에서 달아난 엉덩이’(〈엉덩이가 집을 나갔어요〉)였는데, 여기에 ‘얼굴에서 빠져나간 입’이 추가되었다. 이 녀석들에게 가출 삼총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오리 동동이의 입이 왜 가출했을까. 그건 동동이가 입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일어나야지, 학교 가야지, 밥 먹어야지, 엄마의 채근에 대답만 ‘네!’ 하고는 여전히 빈둥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못한 입이 툭 튀어나가 독자적으로 샤워도 하고 밥도 먹는 것이다. 이건 정말 희한한 자아분리의 현장이다. 앞서 예를 든 집이나 엉덩이는, 식구들이 더 큰 집을 원한다거나, 입이나 손발이 한 잘못에 늘 자기가 매를 맞는 데 대한 불만과 분노로 가출한다. 그런데 이 입이 가출하는 이유는 그런 불만이나 분노가 아니다. 함박웃음을 띠고 뛰쳐나가 휘파람을 불며 샤워하는 입은 아주 즐거워 보인다. 그러면, 꾸물거리는 아이의 게으름 혹은 언행 불일치에 대한 따끔한 일침일까? 시작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동동이가 친구들의 축구 제안에 반색하며 ‘그래!’ 하고 대답할 때도 입이 뛰쳐나가 혼자 종횡무진 골잡이로 활약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입은 자기가 뱉어낸 말을 지키려는 책임감의 표상일까? 하지만 ‘나는 바르셀로나에도 갈 수 있다’는 동동이의 허풍에 바로 진짜 바르셀로나 축구장으로 튀는 걸 책임감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약이 바짝 오른 동동이가 내뱉은 ‘네가 달나라에 가봐라, 내가 못 잡나’의 결과가 뭔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동동이와 원더마우스〉 조승혜 지음, 북극곰 펴냄
〈동동이와 원더마우스〉 조승혜 지음, 북극곰 펴냄
언행일치로 입과 화해해요

도대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다그쳐 묻고 싶어질 때쯤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독일 옛이야기의 관용구이다. 그제야 ‘아하’, 싶어진다. 작은 에피소드가 되풀이되면서 점점 커지고, 그러면서 마술 같은 일이 당연한 현실로 자리 잡는 옛이야기의 세계를 이 책은 끌어온 것이다. 그 세계는 자유, 해방, 소원성취, 카타르시스, 화해, 합일 같은 꿈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입의 가출에 혼비백산하는 동동이. 으름장을 놓고 꽁꽁 묶어놓으며 입과 겨루는 이 오리는 흐트러지는 자신을 추스르려 애쓰는 생활인 같다. 하지만 언행일치, 책임감 같은 현실적 덕목이 시시포스의 바윗돌 같은 때도 있지 않겠는가. 그럴 때는 한사코 튀어나가는 자신의 한 부분을 달나라로 보내놓고 마지못한 듯 따라가서 빈둥거리는 판타지를 허용해야 한다. 책을 읽은 뒤 다시 표지로 돌아오면 그제야 행복하게 입과 화해한 동동이의 말이 들려온다. 이 그림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그거라니까!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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