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이후, 서구 정치는 좌파와 우파가 이념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서로를 극복하기 위한 경쟁을 해왔다. 좌파와 우파의 각축과 병존은 서구 정치가 추구해온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지은이가 ‘극단적 중도파’라고 명명한 이것은 전통적 정치를 가능하게 해주던 동력인 좌우파의 적대를 없애버린다. 전통적인 정치가 산산이 부서진 자리에 현실주의자들의 야바위판이 벌어진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반기문)’니, ‘빅텐트(안철수·손학규)’니, ‘대연정(안희정)’이니 하는 것들이 그렇다.
1994년 최연소 노동당 당수가 된 토니 블레어는 1979년 보수당에 빼앗긴 정권을 18년 만에 찾아왔다. 전전임(前前任)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는 ‘사회는 없다’라고 선언한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의 숭배자였다. 하이에크의 주요 논지에는 사회가 없으므로 당연히 노동권과 보편 복지를 보장하는 ‘사회국가’도 허상이며, 서로 경쟁하는 개인만 존재한다. 대처는 케인스주의 경제정책을 배척하고 베버리지 보고서(1942년에 작성된 영국 사회보장제도의 시안)를 토대로 한 국가적 합의를 무효로 되돌렸으며, 노동조합을 파괴했다.
‘제3의 길’ ‘갈등 제로 정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따위 솔깃한 도식을 내세웠지만, 블레어가 이끈 “신노동당은 재계가 마음껏 돈벌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전부다. 신노동당은 평등과 사회정의라는 개념 자체를 폐기하고 재분배 정치로부터 등을 돌리면서, 노동당이 고수해온 사회민주주의와 단절했다. 이들은 영국은행에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완전한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금융부문을 자유시장에 맡겼고, 미혼모 복지수당 삭감과 대학 등록금 의무 납부제를 실행하고, 각종 공공 서비스를 사영화하는 등, 대처가 하지 못했던 것을 더 과감하고 정밀하게 밀어붙였다. 슬라보예 지젝의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문학사상사, 2017)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가장 뛰어난 업적을 물었을 때, 대처 총리는 망설임 없이 ‘신노동당’이라고 대답했다.” 알리는 노동당이 대처주의에 투항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25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함께 붕괴한 것은 소비에트 연방이나 ‘공산주의 이상’ 혹은 ‘사회주의 해법’의 유효성만은 아니었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도 함께 추락했다. 승리한 자본주의의 돌풍이 전 세계를 휩쓰는 상황에서 사회민주주의는 과거 자신들의 사회 프로그램을 구성하던 요소들을 지키려는 결의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신 자살을 선택했다. 이것이 바로 ‘극단적 중도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지젝 역시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에서 알리와 동일한 설명을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항적 시스템 및 노동자의 권익을 약속하는 다른 생산 체계의 심각한 위협이 있어야만 노동자와 빈곤층에 상당한 배려를 제공”한다. 그런데 “그런 대항이 사라질 경우, 유럽의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해체도 가능하다”.
“야당이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던 공공주택이 주택담보회사의 소유가 되면서 보금자리에서 쫓겨나야만 했던 약 100만명의 신노동당 열성 지지자들은 블레어에게 속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런데도 블레어가 총선에서 세 번 내리 승리하면서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 민중에게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리는 이런 딜레마를 “우리는 야당이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라는 말로 요약했다.
영국 정치는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정부에 노동당이 추가된, 머리는 셋이지만 몸통은 하나인 극단적인 중도파의 손아귀에 있다.” 극단적 중도파가 되면서부터 좌파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통적인 좌파 정책을 내팽개치고 차츰 자본친화적이 되기 시작했다. 또 정권을 쥐고 나서도 시민의 권리보다 자본의 이해를 우선하면서 기업 권력에 굴종한다. 이처럼 좌우의 정치적 차이가 축소되면서 정치는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게임에 참여한 엘리트 정치꾼의 사업으로 전락한다. ‘박근혜-최순실-이재용’ 조합이 벌인 정경유착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좌파가 우파와 차이가 없어질 때, 민중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하나는 극우에 투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이다.
‘빅텐트’와 ‘대연정’은 정치적 차이가 사라져버린 한국 정치의 민낯과 추한 권력의지를 보여준다. 솔직히 거기에 뭐가 있나? 거기에는 상위 1%와 야합하는 지배 엘리트와 상위 10%에 가입하려는 중산층의 욕망만 있다. 실업·환경·복지·교육·인권 등, 경제발전보다 뒤처진 정말 중요하고 시급한 정치적인 것은 모두 빅텐트와 대연정 밖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문재인과 안희정은 신자유주의로 기울어졌던 노무현 정권의 잘못을 사죄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노무현 정권이 정말 변절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가진 진보의 개념이 낡아서 그런 것인지 묻고 싶다”(〈시사IN〉 제491호 “정권 교체 그 이상을 원한다면!” 기사 참조)라고 반문한다. 우리가 가진 진보의 개념이 낡았다? ‘현실에서 환상으로 도피한다’가 일상적 어법이지만, 지젝은 거꾸로 ‘환상(사회주의라는 이상을 향한 투쟁)에서 현실(시장과 기업 만세!)로 도피한다’라는 말로 오늘날의 좌파를 꼬집는다.
-
이것은 보수가 아니다
이것은 보수가 아니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탄핵 국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수들 간의 전쟁이 참으로 이채롭다. 자유한국당으로 개명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우리가 ‘보수의 진짜 적통’이라고 주장하며 “보수 이념과 가치에 뜻을 같이...
-
다음 대통령의 자질
다음 대통령의 자질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음 대통령은 어떠한 자질을 가진 사람이어야 할까?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과연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를 더 살펴보아야 한다. 선거공약은 주변 참모들이 만들어준 리...
-
누구나 알아야 할 교양, 헌법 [독서일기]
누구나 알아야 할 교양, 헌법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광장에서 탄핵 촛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때에, 정치권의 토굴 한구석에서는 개헌 군불을 때느라 분주하다. 주로 제3지대에 모여 있는 정객들은 박근혜의 국정 농단이 제왕적 권력을 휘...
-
투표 거부자들의 정치적 시민권 [독서일기]
투표 거부자들의 정치적 시민권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제19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을 받아놓고, 모리치오 비롤리의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안티고네, 2017)를 읽었다. 지은이는 오늘의 대의민주주의와 선거에 대해 아무런 고민도 하지...
-
MB는 ‘썩은 사과’일 뿐이라는 우파 보수주의의 논리 [독서일기]
MB는 ‘썩은 사과’일 뿐이라는 우파 보수주의의 논리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지난 3월22일 서울 동부구치소에 입감된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페이스북을 통해 옥중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명박이 목표다’는 말이 문재인 정권 초부터 들렸습니다. 저를 겨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