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전화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이른 시간이었다. 발신인은 아버지. 언뜻 서점이라는 말이 들렸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습관처럼 일단 ‘알겠다’고 답했다. 눈 뜬 김에 몸을 누이고 있던 방 안을 휘 둘러봤다. 나사가 헐거워져 늘 어느 정도 문이 열려 있는 조립식 장롱, 필터를 교체할 때가 된 청소기, 그리고 휑한 방이 싫어 세워두지 않고 눕혀둔 가로 60㎝, 세로 120㎝의 책장. 김영건씨(31)는 책장처럼 모로 누워 의미 없이 꽂힌 책 제목을 훑어내렸다. 순간 정신이 번쩍 났다. 서점…, 서점이라고?

2014년 여름은 영건씨가 대학 진학과 함께 고향 속초를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 9년째 되던 해였다. 계약직으로 일하던 직장에서 재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일을 더 할까 말까 확신이 없던 때였고 미래는 아득했다. 꼭 그만큼 서점이라는 말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시작하고 당신이 이어온 오래된 서점을 맡아보겠느냐고 물어왔다. 손님은 없었지만 아버지는 기어코 서점을 닫지도, 좀처럼 쉬지도 않았다. 줄어든 손님의 숫자가 아버지의 졸음 횟수로 바뀌었을 뿐이다. 영건씨는 서점 집 막내아들로 서점의 흥망성쇠를 온몸으로 체험‘당했다’. 아버지께 몇 번이고 접으라고 종용했던 그 서점을 자신이 이어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시사IN 윤무영1956년 문을 연 동아서점은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 김일수씨(왼쪽), 아들 김영건씨로 이어져오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속초와 서점이라는 조합 앞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지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영건씨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속초에는 백화점도 없고, 독립영화관도 없고, 동남아 음식점도 없었다. 그래도 짐을 쌌다. 서울살이 9년은 박스 몇 개로 충분했다. 고향으로 돌아간 이유를 굳이 대자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먼지를 풀풀 날릴지언정 끈질기게 버텨온 서점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게 아쉬웠다. 좁디좁은 방을 전전해야 하는 서울생활도 지쳤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어쩌다 보니’였다. 아버지 김일수씨(66)가 그랬던 것처럼.

속초 동아서점의 전신은 1956년 세워진 동아문구사다. 책방 겸 문구점으로 잡지 총판도 하고, 참고서 대리점을 겸하기도 했다. 영건씨의 할아버지 고 김종록씨(2015년 11월 작고)가 〈동아일보〉 강원지부 기자였던 까닭에 서점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는 ‘설’을 영건씨도 전해 들었다. 생전 할아버지는 서점 얘기보다는 한국전쟁 이야기를 더 즐겨 하시던 분이었다.

할아버지가 서울에서 공부하던 아버지를 속초로 불러들인 건 1978년이었다. 건강상의 이유였다. 아버지 김일수씨도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서점을 맡았다. ‘일단 아버지 건강만 회복되면…’ 그렇게 영건씨의 아버지는 어쩌다 보니 30년을 서점에서 보냈다. 속초에서 아내를 만났고, 영건씨를 비롯해 세 아들을 낳았고,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던 시절을 건너왔다. 텔레비전도 그 비슷한 무엇도 없던 때였고, 잡지가 들어오는 날이면 손님들이 서점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하던 시절. 학습지나 참고서가 불티나게 팔리는 학기 초에는 책을 채 진열할 틈조차 없었다. 따로 경리를 두고, 직원 몇을 거느리던 때였다. “당시 책이 불과 몇백원에 불과했는데, 지금 매출보다 더 많았다니까요(웃음).”

ⓒ시사IN 윤무영김영건씨는 일간지 추천 도서 목록과 인터넷 서점의 신간 페이지를 참고해 동아서점에 입고할 책을 전부 직접 선정한다. 위는 동아서점 내부 모습.
서점 호황기를 온몸으로 겪고 21세기에 당도한 아버지는 바뀐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심지어 어느 날에는 서점에 손님을 가두기도 했다. 그놈의 졸음 때문이었다. 옛 동아서점은 지하에도 매장이 있었는데 여느 때처럼 졸고 있던 아버지는 손님이 지하로 내려가는 걸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친구의 술자리 초대 전화를 받고 문을 닫았다. 물론 손님을 서점 안에 그대로 둔 채였다. 그 일을 겪고도 아버지는 계속 졸았고, 갇혔던 손님 역시 여전히 한두 달에 한 번꼴로 서점에 책을 사러 온다.

3대째 이어져온 서점에 3대가 함께 온다

단군 이래 늘 불황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게 출판계고 그런 출판계와 뗄 수 없는 게 서점이다. 대기업이나 나라를 물려받는 거라면 좋았을 텐데…. 이재용도 아니고 김정은도 아닌 영건씨는 2015년 1월 ‘망해가던’ 서점을 기어코 물려받았다. 20평(66㎡) 남짓했던 서점은 120평(396㎡)으로 6배나 규모를 키웠다. 옛 동아서점 근방에 마침 싸게 나온 건물이 있었고, 은행 대출을 많이 끼고 매입했다. 영건씨가 프랑스 교환학생 시절 알게 된 건축 전공 선배에게 맡겨 리모델링도 했다. 애초에는 조언만 구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선배는 영건씨에게 “요즘 같아서야 내가 언제 서점 인테리어를 해보겠냐. 작업 결과를 포트폴리오에 넣고 싶다”라며 흔쾌히 한국으로 날아왔다.

재개장 전 시장조사를 하며 알아본 다른 나라의 서점들은 서점의 외관이나 진열된 책의 모양새까지, 하나같이 아름답고 예뻐서 차라리 서러웠다. 영건씨가 경험했던 한국의 ‘종합서점’은, 책도 상품이고 책을 사게 만들도록 진열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버지의 서점이야 말해 뭐하랴. 지금이야 독립 서점이나 동네 서점, 북큐레이션 따위 단어가 익숙하지만 2~3년 전만 해도 낯선 말이기도 했다. 영건

1970년대 동아서점을 연 할아버지 고 김종록씨(맨 위)와 서점 직원들(가운데). 현재 모습(위).
씨는 독립 서점도 좋고, 동네 서점도 좋지만 그보다는 종합서점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영건씨에게 동아서점은 〈해법 초등 수학〉과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과 〈저울이 필요 없는 폭신폭신 팬케이크〉를 한꺼번에 구입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서점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영건씨와 아버지는 옛 동아서점에 있던 책을 모조리 반품했다. 기존 스타일과 단절하고 서가를 새로 다시 채우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이었다. 그 덕분에 영건씨의 악몽에는 레퍼토리 하나가 추가됐다. 누가 군대 다시 가는 꿈이 최고의 악몽이라고 했나. 1만 권이 넘는 책을 몽땅 반품하고 새로 들어온 책 수만 권을 다시 꽂는 꿈을 꾸는 날이면, 영건씨는 등줄기가 서늘하다. 그래서 언제까지 서점을 할 생각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서점을 그만두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왜냐면 지금 서점에 비치돼 있는 책 5만 권을 다 반품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책은 매일 나온다. 하루에 출간되는 신간은 약 180권, 일주일이면 1260권에 달한다. 물론 이 모든 책을 다 서점에 들여놓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종합서점이라면 신간을 어느 정도 신속하게 업데이트하는지가 작은 서점보다는 훨씬 중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합서점은 신간 배본 시스템을 이용한다. 신간을 시시각각 체크하거나 예상 판매량을 서점주가 헤아릴 필요가 없고, 안 팔리는 책은 그때그때 반품하면 된다.

하지만 동아서점은 배본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는다. 의미 없는 입고와 반품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건씨는 한번 서점에 입고된 책은 한 권이든 다섯 권이든 열 권이든 어떻게든 다 팔고 싶었다. 누군가는 ‘고생을 사서 한다’고 할 수도 있다. 동아서점에 입고되는 책은 온전히 영건씨의 감각에 의존해 들어온다. 각종 일간지 추천 목록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팔로잉하는 출판사의 SNS 계정과 인터넷 서점의 신간 페이지를 유심히 본다. 그중에 어떤 책을 입고하고 몇 권을 들일지 결정하는 일은 온전히 영건씨 몫이다. ‘이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렇게 심사숙고해서 들인 책이 한 권이라도 팔리는 날이면 피곤이 절로 풀린다.

영건씨는 ‘편집 진열’의 묘미를 오프라인 서점의 경쟁력으로 꼽는다. 서가의 분류도 서점 수만큼 다양할 수 있으며, 그런 북큐레이션이 인터넷 서점이 아닌 오프라인 서점을 찾게 만드는 한 가지 이유가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어떤 날은 단순히 표지 색이 비슷한 책을 모아 진열해보기도 하고, 제목이 이어지는 책들을 추려 서가 한쪽을 꾸리기도 한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진열에 매순간 망설이고, 매순간 절실함이 깃든다. 이렇게도 진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치했던 책이 그 책과 어울리는 손님을 찾아갔을 때의 희열은 서점원의 은밀한 즐거움이다.

3대가 이어 운영하는 동아서점에는 심심찮게 3대가 함께 서점을 방문하곤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딸과 아들, 허리 굽은 할머니가 뒤따르는 풍경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최고의 당뇨병 식사 가이드〉 〈신자유주의의 위기〉 〈구스범스 호러특급〉같이 하나의 맥락으로 엮을 수 없는 책들을 한 봉투 안에 담아주며 영건씨는 희열을 느낀다. 젊은 영건씨를 못 미더워하는 할머니·할아버지 손님 앞에서 쩔쩔매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영건씨는 ‘그 아저씨가 있어야 하는데…’라며 아버지를 찾아 안절부절못하는 할머니 손님을 상대하다가, 때마침 아버지가 서점으로 들어왔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마치 〈TV는 사랑을 싣고〉의 한 장면 같았기 때문이다. “아저씨, 어디 계셨어요. 제가 한참 찾았잖아요!”

계산 속도가 느리고, 목소리도 희미하고, 주섬주섬 돋보기를 꺼내 쓰고 회원 가입 여부를 묻고, 오로지 검지만을 이용해 자판을 두들기는 아버지를 보는 아들의 마음은 종종 복잡하다. 뾰족한 마음에 아버지를 아이처럼 혼낸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찾는 손님 앞에서 영건씨는 아버지의 삶을, 아버지가 보내온 세월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아버지라는 배를 타지 않고는 영영 건널 수 없는, 그런 세월 위에 자신이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백년 서점’을 가질 수 있을까

영건씨도 2월15일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내 이수현씨는 동아서점의 손님이었다. 계절 가는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보내던 개점 첫해 여름날, 신중히 책을 고르던 한 손님이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이라는 책을 들고 계산대로 왔다. 그녀가 입은 민소매 원피스에서 새삼 계절을 깨달았다. 수현씨가 돌아간 후 철학 서가로 들어가 책이 빠져 빈틈이 된 자리를 한참 들여다봤다. 버팀목이 되어주던 양옆의 책이 균형을 잃고 기울어져 있었다. 영건씨의 마음도 한껏 기울었다. 그날 영건씨는 수현씨한테 첫눈에 반했다.

간호장교로 전역한 후 고향에 머물고 있던 수현씨와 먼저 말을 튼 건 아버지 김일수씨였다. 일을 마친 어느 날, 맥주 한 잔씩 기울이며 영건씨가 슬쩍 말을 꺼냈다. “요즘 서점에 멋진 분이 오시던데요.” 아버지는 영건씨가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알아챘다. “그래, 그분 말이구나.” 아버지가 대체 그녀를 어떻게 아느냐는 영건씨의 질문에 아버지는 한마디로 쐐기를 박았다. “괜찮더구나.”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서점 문을 열었으니 연애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럴 바에야 빨리 결혼하지 그래.” 장모님이 넌지시 한 말을 영건씨가 덥석 물었다. 일곱 달 연애 끝에 결혼했다. 수현씨도 자연스레 서점 일을 돕기 시작했다. 수현씨는 손재주가 많다. 영건씨가 매달 동아서점 베스트셀러를 집계해 종이 위에 쓰면 수현씨는 그 옆에 꽃 그림을 그려넣는다. 아이를 빨리 키워 다섯 살쯤에는 계산할 수 있게 가르치자는 농담도 주고받는다. 서점 일이라는 게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 손이 가지 않는 게 없고, 일손은 늘 빠듯하니까.

하루 목표 매출액을 채우지 못하는 날에는 영건씨와 수현씨가 책을 산다. 서점 문을 닫기 직전, 두 사람은 서점에 흩어져 서로 읽고 싶었던 책을 고른다. 고른 책을 포스 단말기에 입력하고는, 우리가 산 책 덕분에 매출액에 도달했으니 오늘은 치킨을 시켜 먹자고 키득댄다. 그런 날이면 영건씨는 신이 나서 책이 든 가방을 앞뒤로 흔들며 5분 거리의 집으로 걸어간다. 영건씨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 농담을 하면 술을 마신다고 한 작가는 말하는데, 우리는 인생이 농담을 하면 책을 산다.”

수현씨 뱃속에서 아이가 자라는 동안, 영건씨도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당신에게 말을 건다:속초 동아서점 이야기〉(알마 펴냄)는 지난 3년간 영건씨가 서점원으로 일하며 경험한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독자들이 오프라인 서점에 대해 궁금해할 만한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 6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서점이, 3대째 이어져오는 서점이, 그러니까 서점 같은 게 21세기에도 여전히 필요한가에 대해 영건씨가 내놓은 수줍은 대답이기도 하다. 책의 프롤로그는 아버지 김일수씨가 영건씨에게, 에필로그는 영건씨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담았다. 아버지는 영건씨 덕분에 이제 ‘백년 서점’이 단순히 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닷가를 따라 마을이 긴 모양으로 늘어서 있어 언제 어디서고 바다를 만날 수 있는 도시. 속초에는 최근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생겼다. 속초의 특산물은 오징어지만, 어쩐 일인지 관광객들은 닭강정 상자를 하나씩 쥐고 돌아간다. 그래서 영건씨는 누군가 속초에 뭐가 있느냐고 물으면 에라 모르겠다, ‘닭강정이 있다’고 답해버린다. 그리고 이제 거기에 하나쯤 더 추가할 수도 있겠다. 속초에는 닭강정과 동아서점이 있습니다, 라고.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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