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단순했다. 좋은 산문을 한번 모아보고 싶었다. 평소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글을 재미 삼아 모으다 보니 일이 커졌다. 김용준·이태준·윤오영 등 이름난 작가들의 산문집 말고, 그 뒤에 나온 산문집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삶은 의연히 이어지고 흐르는데, 뭔가 이상했다. 지금 이곳의 생활·정서·감정을 잘 담아낸 글들이 보고 싶었다. 둘러봐도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뭐, 내가 해보지’ 그렇게 시작한 일이 1년여 이어졌다.

어찌어찌 작가 40여 명, 글 60여 편이 모아졌다. 다만 좋은 글, 아름다운 글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빛나는 한 시절을 담고 있었다. 김연수·김중혁·이기호·서효인·오은 등 알려진 작가들의 글도 그러했고, 유소림·박성대·류상진·최용탁·박수정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들의 글도 그러했다. 시인·소설가 등 흔히 작가라고 알려진 이들의 글도 좋았지만, 나머지 작가들의 글도 너무 좋았다. 그 모두에는 예외 없이 향기와 색깔이 뚜렷했다. 어쩌면 글 속에 자신이 그대로 드러나는 산문이라는 장르의 본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공선옥 외 지음, 봄날의책 펴냄

3년이 지난 지금, 글은 그대로이되 그들의 일상도 함께 나이를 먹어갔으리라. 김연수의 딸 열무도 훌쩍 자랐을 것이고, 서효인은 의젓한 가장으로 두 딸 은재·은유와 함께 자라고 있을 것이다. 보성 우체부 류상진은 정년퇴직을 하고 고향을 지키고 있을 것이고…. 이 책을 통해 맺은 인연으로 류상진(〈밥은 묵고 가야제!〉 2015)·신해욱(〈일인용 책〉 2015)의 글을 따로 묶어내는 즐거움도 누렸다.

사실 이 책은 직장을 그만두고 늦은 나이에 출판사를 차리려 마음먹은 나의 외롭고 쓸쓸하고 조금은 불안한 날들을 함께한 고마운 벗이었다. 잠시 시름을 잊고 그이들의 글에 빠져서, 그이들의 크고 작은 일상과 함께 울고 웃으며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 와 다시 보니 아쉽고 허술한 구석도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고맙고 고마운 책이다.

기자명 박지홍 (봄날의책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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