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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암살이 ‘요란’했던 이유

2017년 03월 06일(월) 제494호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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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 암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권력 핵심 기관들의 충성 경쟁에서 비롯한 실패한 공작이라는 분석도 있고 국제사회에 경고성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공개처형이라며 ‘핵보다 더 강한 핵을 터뜨렸다’는 견해도 있다.

‘북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실행조로 투입된 인물들 면면이나, 대낮 인파가 많은 국제공항에서의 살해는 꼭 북한이 아니라도 ‘암살 매뉴얼’에서 한참 벗어났다. 국정원 발표대로 김정남 살해가 2012년부터 시작된 김정은 위원장의 ‘스탠딩 오더(취소 지시가 없는 한 상황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끝까지 수행해야 하는 명령)’였다면 더욱 그렇다. 그 5년 동안 김정남은 베이징·마카오·싱가포르·말레이시아를 제 집 드나들듯 오갔다. 베이징·마카오 같은 중국령에서는 중국의 감시와 통제 때문에 어려웠다 해도 말레이시아라면 그 전에라도 얼마든지 조용히 해결할 기회가 있었다. 더구나 김정남이 살해된 2월13일은 북한이 광명성절이라 부르는 김정일 생일에서 사흘 전이었다. “5년 동안 내버려뒀다가 하필이면 북한에서 두 번째로 큰 명절에 맞춰 이복형을 죽이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대북 소식통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 2월16일 광명성절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위원장의 표정은 매우 편치 않아 보였다. 미국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때도 환호작약하던 그가 시종일관 시무룩하고 눈동자의 초점이 풀린 듯한 모습이었다.

ⓒAP Photo
2월13일 피살된 김정남. 2001년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카메라에 포착된 모습.
그렇다고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국적 여성들 외에도 리정철이라는 현지 거주 북한 국적자와 네 사람의 신원이 확인됐고 최근에는 북한 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 등이 관여했다고 말레이시아 경찰이 공식 발표했다.

어설픈 암살인가? 치밀한 공작인가? 도대체 이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까? 북한 권력 내부 관계와 북·미 그리고 북·중 관계 속에서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이번 암살에 대한 유력한 설명 틀 중 하나가 바로 권력 핵심 기관들의 충성 경쟁에서 비롯한 실패한 공작이라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직접 지시 내지 사전 재가에 따른 국가 차원의 치밀한 공작의 소산으로 보기에는 동원된 인원이나 범행 장소 등 어설픈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 사건은 “김정은이 하라고 한 것이 아니고 아래에서 먼저 실행한 뒤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는 여러 사람 목이 날아가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지금 김 위원장은 명분이 없어 사면초가이고 집권 이래 심기가 가장 안 좋은 상태라고 한다. 2월16일 조선중앙텔레비전에 비친 시무룩한 표정에 바로 이 사건으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린 정황이 잘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도 중국도 말레이시아도 김 위원장이 명령을 내렸다고 누구도 단정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AP Photo
김정남 암살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위)의 의지였느냐 여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군 출신 정찰국 요원들의 충성 경쟁?


그렇다면 과연 최고 지도자의 사전 재가 없이 이번 일을 저질렀을까? 대북 소식통은 “현재 북한 핵심 권력 주변의 모두가 김정은을 위해 뭔가 큰 건을 하나 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하다”라며, “특히 권력의 핵심에서 그런 의식이 강한데 그동안 김정남의 동태 파악을 주도했던 정찰총국 내의 조직이 주도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정원 설명대로 스탠딩 오더가 유효해 언제 어디서나 실행 가능한 상태에서 김정남이 마침 말레이시아로 이동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실행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제공항을 범행 장소로 택한 것은, 다른 곳에서 암살하려다 실패해 어쩔 수 없었던 최후의 카드라는 것이다. 정석대로라면 해외 공관에 데려와 통제된 상태에서 살해하거나 아니면 해외 공관에 유폐시키는 식으로 할 텐데 여러 사정으로 여의치 않자 최후의 수단으로 공항을 택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정찰총국이 이처럼 어설픈 공작을 했다고 할 경우 해외 작전에 능숙한 당 작전부나 조사부 출신보다는 원래의 군 출신으로 이뤄졌던 정찰국 요원들이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해외공작 총괄 조직인 정찰총국은 2009년 인민군 정찰국과 당 작전부 및 조사부가 합친 조직인데, 군 출신 정찰국 요원의 작전 능력이 떨어진다.

ⓒ연합뉴스
2월22일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가운데)이 김정남 암살사건 연루자 가운데 북한 외교관과 고려항공 직원이 있다고 발표했다.
말레이시아 경찰 수사를 보면, 북한의 어느 한 기관이 아닌 여러 기관이 협조하고 동원됐을 가능성도 있다. 2월22일자(현지 시각)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익명의 말레이시아 고위 정보관리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지 북한 대사관 2등 서기관으로 부임해온 현광성이 이번 사건의 막후 수뇌이자 기획 및 감독자 구실을 했고,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은 달아난 4명의 도피 및 귀국 행로를 짰으며, 체포된 리정철은 심부름 겸 운송책, 그리고 북한 국적의 남성 도피범 4명과 여성 용의자 2명이 암살 작전을 실행한 집행자를 맡았다. 또 살해에 사용된 독극물 VX는 북한군 산하 농약연구소로 알려진 생물기술연구원에서 만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즉 어느 한 기관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여러 기관이 관여한 합동작전의 결과라는 것이다. 배후로 지목된 현광성이 말레이시아 대사관에 부임한 것이 지난해 연말이라면 적어도 이때부터 북한이 살해 계획에 착수해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 모습을 나타내자 실행에 옮겼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도 ‘권력 핵심 맹동주의자’들의 어설픈 공작이라면 수습하기가 쉬울 수도 있다고 보았다. 지금은 당연히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고 버티겠지만 적당한 시점에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마무리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사IN 조남진
김정남 암살은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공사(위) 등 망명자들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
아무리 권력 핵심이라도 백두 혈통인 김정남을 충성 경쟁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까? 여기에는 반론도 있다. 북한 체제의 생리에 밝은 고위급 탈북자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한다. 한 고위급 탈북자는 “충성 경쟁은 김정은이 만족할 것 같으면 먼저 저지르고 사후에 ‘우리가 했습니다’ 하고 보고하는데 김정남은 충성 경쟁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왜 김정남 제거가 충성 경쟁 대상이 되지 않는 건가? 이 탈북자는 그 이유를 김정일 시대에 일어난 김영일 사망 사건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2000년 5월 김정일 위원장의 이복동생 김영일 당시 베를린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참사관이 간경화로 사망했다. 김영일은 김평일 현 체코 대사의 동생으로 소위 곁가지로 분류하던 인사였다. 보고 라인에 있는 부서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좋아할 거라 생각해 기쁜 마음으로 보고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은 좋아하기는커녕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물론 김정일 위원장 정치술의 일환이겠지만 이후 백두 혈통에 대해서는 최고 지도자의 허락 없이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생겼다는 것이다. 김정남 사망에 대해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북한 권력 내부에 정통한 한 고위급 탈북자는 “북한 같은 공포정치 사회에서 고위 간부로 살아남으려면 최고 지도자 눈치 보기 100단은 돼야 한다. 최고 지도자의 구상과 의도를 정확히 제때에 접수하고 무조건 관철해야 된다는 게 간부들의 행동 원리다. 직급이 높을수록 잘 간파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왜 국제공항이었을까? 다른 곳에서 실패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정반대 해석도 나온다. 이런 해석은 북·미 그리고 북·중 관계 속에 방점을 찍고 있다. 처음부터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마추어로 보이는 외국 여성들을 실행조로 끌어들여 퍼포먼스를 하듯 범행하고 리정철이라는 현지 거주 북한 국적자가 어설프게 바로 체포되고 다른 용의자 네 명 역시 도피는 했지만 북한 국적자라는 것이 쉽게 노출되었다. 범행 직전에 개별적으로 입국해 범행 당일 일제히 국제공항을 통해 유유히 빠져나갈 정도라면 얼마든지 노출되지 않고도 독침이든 뭐든 사용해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최고 독한 마지막 한 수를 썼다”

왜 그렇게 요란하게, 마치 시위를 하듯 살해했을까? 최근까지 중국에서 북측 관계자들을 접촉해온 NGO 관계자는 “처음부터 조용한 암살은 의미가 없었다. 김정남 하나 암살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고 봐야 한다. 국제적인 비난을 감수하고 1000배의 효과를 보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사건 초기에 “북한이 했다고 보기에는 정상적이지 않다”라는 반응을 보였던 고위급 탈북자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처음부터 의도된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국제사회 한복판에서 공개처형을 한 것이다. 경고성 메시지이고 이미 효과를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노리는 효과는 복합적이다. 북측의 용어를 사용하면 ‘중심을 때려서 전반을 해결한다’, 즉 ‘중심고리를 풀어서 얽힌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먼저 김정남을 둘러싼 개인적 정황 자체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중심고리가 되었다. 장성택이 살아 있거나 그의 부인 김경희가 활동 중일 때는 김정남과 북한을 연결하는 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끈이 사라졌다. 최근 몇 년 사이 과거 북한 정권에서 망명한 조선족이나 탈북자 사이에 망명정부 논의가 무성하면서 김정남과 연결하려는 시도가 간헐적으로 있었다. 북한으로서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김정남이 북한 내부 사정은 잘 몰라도 김정은 위원장의 가계에 대한 얘기를 서방 언론에 터뜨리면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 된다.

또 북한은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한국으로 망명한 이후 북한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것을 저지할 수단이 없었다. 문제는 앞으로 제2, 제3의 태영호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즉 고위급 탈북자들의 망명과 그들의 대북 비판에 족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갈 테면 가라. 그러나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테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보여줬다는 것이다.

김정남을 김정은 체제의 대안으로 삼아온 중국을 향해서도 ‘더 이상 대안은 없다.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낸 효과가 있다. 중국은 김정남 암살 이후 올해 말까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중단하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물론 중국 측은 유엔 대북 제재의 일환일 뿐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닷새 후라는 발표 시점을 보면 무관하다고만 보기 어렵다. 그 파장에 대한 평가 역시 엇갈린다. 일부 대북 소식통은 북한과 중국 간에는 공식 무역 외에 비공식 무역이 활발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단둥을 거점으로 대북 사업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지난해에 이미 북한산 석탄 수입이 3분의 1로 줄어든 데 이어 이번에 완전히 중단해버리면 북한 정권의 통치자금 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앞으로 5~6개월 사이에 정변에 버금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라고 내다봤다.

이번 사건이 미국 트럼프 정권에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에서 북한 측 관계자들을 접촉해온 NGO 인사는 “지난해 초 한·미 양국 사이에서 김정은 참수작전에 대한 얘기가 떠돌 때 북한의 간부급 인사들이 진짜 전쟁 일어나는 거냐며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정권 들어서 미국 의회 등을 중심으로 노골적인 참수작전 얘기가 나오는데도 북한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었다. 중거리 미사일을 고각으로 발사하는 정도에 그칠 뿐 과거처럼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쏘는 등의 적극적인 대응은 북한 스스로도 부담이었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피하면서 뭔가 자신의 의지를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국제사회가 다 보는 가운데 이복형을 살해해 ‘핵보다 더 강한 핵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단둥에서 활동하는 한 대북 사업자는 “최고 독한 마지막 한 수다. ‘체제를 바꾸려는 당신들 생각은 망상이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라’는 메시지다”라고 이번 암살을 해석했다. 트럼프 정부의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의 별명은 미친개(매드 독)이다. 김정은 정권 역시 ‘나 미쳤으니 건드리지 마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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