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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풍경을 바꾸다

2017년 03월 10일(금) 제494호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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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삶이다. 출발은 기자였다. 1990년대 월간 <말> 기자로 언론계에서 꽤 이름을 날렸다. 한창 주가를 올리던 1999년 풍파가 닥쳤다. 20세기 마지막 반국가단체 사건이었던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에 연루됐다.

현직 언론인이 휘말린 만큼 사회적으로 큰 충격이었다. 그는 4년6개월이라는 긴 형을 선고받았다. 남파 간첩을 접촉하고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컸다. 한쪽에서는 빨갱이라며 손가락질했고, 다른 쪽에서는 사건이 조작됐다며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언론계와 정치권에서도 탄원서가 이어졌지만, 결국 2003년 4월 형기 대부분을 채우고 출소했다.

감옥에서 나오니 새로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안관찰법의 그늘에서 요주의 인물로 살아야 했다. 일거수일투족이 국가기관에 보고되었다. 신생 인터넷 언론, 시민단체 등에서 일했지만 평생의 업은 아니었다. 경기도 가평 어느 연수원에서 장작을 팬 적도 있었다. 21세기 첫 10년, 그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풍문으로 그가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장례를 치르는 협동조합이었다. 그는 김경환(54) 한겨레두레협동조합(한겨레두레) 상임이사다. 협동조합 일을 한 지 햇수로 8년이 되었다. 천직인 줄 알았던 기자 경력만큼이나 오래되었다. 말하자면 인생 2막이다.

한겨레두레는 2010년 첫발을 뗐다. 서울, 부천, 천안·아산, 광주, 창원 등 여러 지역 상조 협동조합이 모여 있다. 협동조합 정신에 따라 극도로 상업화된 상조업계의 폐해를 줄이고 새로운 장례 서비스를 만들어가겠다는 취지다. 리영희 교수, 김근태 전 장관, 홍근수 목사 등의 장례를 맡아 치렀다. 지난해 40여 일간 이어졌던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을 맡은 것도 한겨레두레였다. 노숙자와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장례식을 치르는 등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시사IN 이명익

한겨레두레는 장례업계 관행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조업체와 관련 업계의 공생 구조를 지탱하기 위해 뒷돈과 강매로 얼룩졌던 장례식 풍경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직거래 방식으로 장례 용품을 구매하고 그 원가를 공개하니 장례 비용도 훨씬 저렴해졌다. 장례 비용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음식값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한겨레두레 소속 장례지도사가 음식이 낭비되지 않도록 신경 쓰기 때문이다. 새로운 장례 서비스를 경험한 이들의 호평도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한겨레두레는 여전히 소수다. 대형 병원 장례식장과 신경전을 벌여야 하고, 관련 업계의 저항도 감수해야 한다. 협동조합의 방향을 놓고 조합원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매월 조합비 3만원을 내는 조합원이 어느덧 3500여 명에 이르렀다. 김경환 이사는 “조합원 1만명이 되면 직영 장례식장을 운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 장례문화가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에서 반국가단체 사범으로, 다시 협동조합 이사로 굴곡 많은 그의 삶에 사연 하나가 더 늘었다. 사회의 가장 첨예한 부분과 마주하며 살아왔던 그가 타인의 죽음을 어루만지는 일을 하고 있다. 그의 형형한 눈빛이 훨씬 부드러워졌다고 느끼는 건 그 때문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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