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7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최종변론을 열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의견서를 이동흡 변호사가 대신 읽었다. 헌재 결정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내놓은 ‘최후의 변’을 팩트 체크했다.



ⓒ시사IN 양한모

“내가 최순실에게 국가의 정책 사항이나 인사, 외교와 관련된 수많은 문건들을 전달해주고,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하여 농단(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검찰과 특검, 헌재 증언 등을 살펴보면 박 대통령의 주장이야말로 사실이 아니다. 검찰은 정호성 전 비서관이 최순실씨와 주고받은 문자를 대통령 일정과 비교 분석해, 정 전 비서관이 문건 171건을 최씨에게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중 47건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대상으로 특정했다. 정 전 비서관은 1월19일 헌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큰 틀에서 최씨 의견도 들어보라는 대통령 뜻에 따라 최씨에게 문건을 보냈다”라고 진술했다.

유출된 문건 47개는 △정부 조직 및 인사 관련 문건 13개 △정부 부처 및 비서실 보고 문건 14개 △대통령 일정 관련 문건 10개 △대통령 말씀자료 등 문건 10개다. 여기에는 국가의 정책 사항 관련 문건뿐 아니라 행정부 조직도(3안), 14개 부처 차관 인선안, 감사원장·금융감독원장·국세청장·검찰청장 등의 인선안을 비롯한 인사 관련 문건과, 외교부 3급 비밀인 ‘한·미 정상회담 및 해외 순방 일정 추진안’, 외교부가 암호명을 부여한 해외 순방 일정표, 일본 총리 전화통화 자료 등 외교 관련 문건이 포함됐다.

검찰 조사와 재판에서 드러난 사실을 보면, 문건 전달뿐 아니라 최씨의 국정 개입·농단도 박 대통령 뜻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확인된다. 정 전 비서관 휴대전화에서 복구된 문자메시지가 대표적이다. “선생님, VIP께서 선생님 컨펌 받았는지 물어보셔서 아직 컨펌은 못 받았다고 말씀드렸는데 빨리 컨펌 받으라고 확인하십니다.” ‘VIP’는 박 대통령, ‘선생님’은 최순실씨다.

정 전 비서관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녹음 파일과 통화 녹음에 따르면, 최씨는 박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2년 12월 말 박근혜 정부 4대 국정 기조 중 경제부흥을 처음 제안했다. “공무원한테도 내려가고, 다 이 기조로 해라, 이렇게 내려보내져야 돼. 1부속실에서 하는 그런 일이야.”

정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최씨가 일정 부분 국정에 관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국정 관여한다는 말에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대통령 의사 결정 과정에서 최씨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에 앞서 최씨에게 보고하는 관계 아니냐’는 질문에는 “제 잘못”이라고 대답했다. 정 전 비서관은 검찰 진술 내용을 인정했고, 헌재는 정 전 비서관의 검찰 조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최순실로부터 공직자를 추천받아 임명한 사실이 없으며, 그 어떤 누구로부터도 개인적인 청탁을 받아 공직에 임명한 사실이 없다.”

거짓말이다. 차은택 감독은 지난해 12월7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최순실씨 요청을 받고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추천했다”라고 증언했다. 김상률 전 수석은 차 감독의 외삼촌이고, 김종덕 전 장관은 차 감독의 대학원 은사다. 차 감독은 또 지인 송성각씨를 차관급인 문체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으로 최순실씨에게 추천했다고 증언했다. 차 감독은 2014년 8월 자신이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에 임명된 것도 최순실씨 추천이었다고 검찰 조사 및 공판에서 밝혔다.

최순실씨는 헌재 5차 변론에 출석해 “김종 문체부 2차관의 이력서를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보낸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최씨는 “직접 추천은 안 했다”라고 주장했다. 외교 경험이 전무한 삼성 출신 유재경 미얀마 대사 역시 최씨 추천으로 대사에 임명됐다고 특검 조사에서 인정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도 검찰 조사에서 “인사에 관해 최씨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는 있지만 매번 반영되는 건 아니었다”라고 진술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이 헌재에 낸 의견서는 본인이 이미 밝힌 해명과도 어긋난다. 지난 1월25일 인터넷 방송 〈정규재TV〉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문화부나 문화부 소관 분야 혹은 교육이나 기타 분야 천거 과정에서 최순실씨의 개입이나 영향력이 혹시 있었나’라는 질문에 “문화 쪽이 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검증 과정을 거쳐서 된다”라고 말했다.

“최순실을 포함한 어느 특정인의 사익에 협조하지 않는다 하여 아무런 잘못이 없는 공무원들을 면직한 사실은 추호도 없다.”

역시 거짓말이다. 최순실씨 쪽도 문제가 많다는 내용으로 대한승마협회와 관련한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노태강 문체부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이 인사 피해를 당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헌재에 출석해 매우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대통령께서 수첩을 들여다보고 두 사람의 이름을 정확하게 거론하면서 ‘이 사람들은 참 나쁜 사람이라 그러더라’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은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인사 지시를 하면 상당히 무리가 따를 것이므로 장관인 저에게 맡겨달라고 제안드렸다. 거기에 대해 대통령이 다시 역정을 내면서 ‘인사조치 하세요’라고 지시했다”라고 증언했다. 결국 노 국장과 진 과장은 좌천된 뒤 공직을 떠났다.

“전경련 주도로 문화재단과 체육재단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관련 수석으로부터 처음 들었다. 좋은 뜻을 모아 설립한 위 재단들의 선의가, 제가 믿었던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왜곡됐다.”

미르·K스포츠재단이 전경련이 아닌 청와대 주도로 설립된 증거는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 업무수첩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안종범 업무수첩 ‘7-24-15 VIP-①’ 메모(2015년 7월24일 박 대통령 지시를 받아 적었다는 뜻)를 보면, 〈현대차〉 항목 아래 ‘문화, 남북통일, 체육·문화 준비, 체육 지원, 체육인재양성기금’ 문구가 있고 ‘30억+30억, 60억’이라고 금액이 적혀 있다. 바로 아래 〈CJ〉 항목에도 ‘문화체육기금, 통일, 한류’라는 문구 옆에 ‘20~50억, 30+30억’이 기재됐(14쪽 〈사진 1〉)다. 안 전 수석은 헌재 탄핵 심판 5차 변론에서 박 대통령이 직접 출연 액수까지 특정하여 지시했다고 인정했다.

안종범 업무수첩을 보면 박 대통령은 대기업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해 액수를 지시(위 왼쪽)하고, 인사까지 개입했다.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재단 설립을 서두르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도 확인된다. ‘리거창(리커창의 오기) 방한 시 제안, 문화부-중국보다→문화재단, 문화창조융합센터와 중국 MOU, 컨텐츠비지니스(2015-10-19 VIP).’ 리커창 총리 방한 시 정부기관보다는 문화재단끼리 MOU를 추진하면 좋겠다는 취지인데,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최순실씨가 같은 내용의 아이디어를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말했고 정 전 비서관이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박 대통령 지시로부터 8일 만인 10월27일 일사천리로 미르재단이 설립됐다.

안종범 업무수첩을 보면 미르·K스포츠재단은 설립뿐 아니라 인사·운영이 모두 청와대 주도였음이 확인된다. 미르재단 설립 6일 전인 2015년 10월21일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조직표, 정관, 문화 재단법인, 미르재단, 용의 순수어, 신비롭고 영향력 있음, 김형수 이사장, 문화융성위 제의, 장순각, 이한선, 송혜진 전통, 조희숙, 김영석 한복, 사무총장 이성한, 사무실-강남’이라고 재단 이름과 이사진, 사무실 위치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한다(10-21-15 VIP·오른쪽 〈사진 2〉). 또 K스포츠재단 설립 한 달여 전인 2015년 12월11일 안 전 수석은 〈KSP〉 문구 아래 ‘김필승, 대전대 체육학과, 010-3227-****, 서상  사무총장, 허현미 이사 X, 정현식 감사, 체육 사무실-강남 2군데, 정관, 조직, 이사장, 사무총장’을 적는다(12-11-15 VIP-①). 안 전 수석의 증언에 따르면 K스포츠재단 내정자 명단을 대통령이 전화로 말해 메모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같은 해 12월25일 ‘문화창조-K-Sport 김필승, 이철원, 정현식, 조종환?’이라고 K스포츠재단 이사진 후보를 다시 언급하는 등(12-25-15 VIP) 두 재단 설립 단계에서부터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확인된다.

‘10-12-16 VIP-면담’ 메모에는 두 재단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대통령 입장 정리 차원에서 안 전 수석과 민정수석, 홍보수석이 대통령과 면담한 내용이 담겨 있다. ‘1)모금:BH 주도 X→재계+BH 2)인사:BH 개입 X→BH 추천 정도 3)사업:BH 주도 X→BH 행사에 참여’ 실제로는 모금·인사·사업 모두 박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는데도 사실과 다르게 말 맞추기를 한 정황까지 고스란히 남았다.

“최순실이 제게 소개했던 ‘KD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의 자료도 중소기업의 애로 사항을 도와주려고 했던 연장선에서 판로를 알아봐주라고 관련 수석에게 전달을 하였던 것이며, 위 회사가 최순실의 지인이 경영하는 회사이고 최순실이 이와 관련하여 금품을 받은 사실은 전혀 알지도 못했으며,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최순실씨가 KD코퍼레이션을 소개했다고 박 대통령이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이는 박 대통령 대리인단 변론과 배치된다. 지난 2월9일 “KD코퍼레이션을 괜찮은 회사로 소개한 게 최순실이라는 것도 몰랐다는 것인가”라는 강일원 헌재 재판관의 질문에 박 대통령 대리인단 이중환 변호사는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러면 누가 소개한 것으로 알고 있나”라는 질문에 이 변호사는 “그냥 기술력 뛰어난 업체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검찰 조사와 탄핵 심판 과정에서 최순실씨가 이영선 행정관에게 KD코퍼레이션 소개서를 전달했고, 정호성 전 비서관이 이를 박 대통령에 전달한 사실은 확인됐다. 의견서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어느 시점에는 최순실에게 직접 소개를 받았거나 적어도 최순실 소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능력이 뛰어난데 이를 발휘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능력을 펼칠 기회를 알아봐주라고 이야기했던 것일 뿐, 특정 기업의 특정 부서에 취업을 시키라고 지시한 사실은 없다.”

이는 안 전 수석의 헌재 증언과 정면 배치된다. “대통령이 1월 초순경 이동수라는 광고계 유명 홍보 전문가가 KT에 채용되도록 황창규 회장에게 연락해 채용해보라고 한 사실이 있나”라는 국회 측 소추위원 질문에 안종범 전 수석은 “있다”라고 말했다. 또 “대통령이 2015년 7월경 신혜성의 KT 채용 어떻게 되었나. 이동수 밑에 두고 협업하면 좋겠다고 지시했다는데 들었나”라는 국회 측 소추위원 질문에도 안 전 수석은 “네”라고 답했다. “대통령이 2015년 8월경 이동수를 KT 광고업무 총괄로 옮길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한 사실이 있나”라는 질문에도 안 전 수석은 “네, 제 기억으론 그런 거 같다”라고 인정했다.

안종범 전 수석 업무수첩을 보면, 청와대는 대한항공 지점장 인사에도 개입했다. 2015년 7월24일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적은 메모에는 ‘한진’에 동그라미를 친 후 다음과 같이 적혔다. ‘2-대한항공 기업 참여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고창수 신망’ ‘3년 연임 부탁’. 2016년 1월3일에 작성된 VIP 지시 사항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메모에도 ‘4. 고창수 대한항공 지점장 2월 본사 파견 원치×→서울, 제주지점장’이라고 적혀 있는 등 박 대통령은 고창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언급한다. 고창수씨는 최순실씨의 고향 지인으로 알려져 있다. 안종범 전 수석 업무수첩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포스코 임원을 줄줄이 언급하는 등 다른 사기업 인사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이지만, 각종 의혹에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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