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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결코 약자가 아니다”

2017년 03월 14일(화) 제495호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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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진)는 노동운동이 지금처럼 가면 계급 연대도 불가능하고 경제성장도 어렵다고 본다. 상위 노동자들이 ‘손실의 내면화’를 감당하고 청년 취업자나 비정규직과 ‘일자리 나누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학자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저서 <가보지 않은 길>(나남)을 통해 현대자동차의 노동 시스템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이 책의 부제는 ‘한국의 성장동력과 현대차 스토리’다. 그는 현대차의 도시 울산을 찾아 르포했다. 송 교수를 만나 현대자동차로 상징되는 노사의 민낯을 물었다.


현대자동차를 주된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경제 혹은 제조업의 전형적 문제점들이 현대자동차에 집약되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국은 개발기에 성공한 생산체제를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바꾸지 못하고 있다. 밖에서는 ‘생산체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논의가 무성하지만 기업 내로 들어가지 못한다. 생산체제 내부에 기득권이 자리 잡고 앉아서 변화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시사IN 신선영
노동자도 그 기득권에 포함되는가?

조직 노동자 중 상위 10%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의 주력 부대가 50만~6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분들은 과거에 ‘을’이었지만, 지금은 기득권으로 성장해 1000만 노동자들을 꽉 잡고 있다. 철옹성이다. 진보 측이 그 세력을 업고 정치력을 행사하려 하면 앞으로도 해결 불가능할 문제다.

이번 저서의 주제인 현대차를 사례로 ‘조직 노동자의 기득권’ 문제를 토의해보면 좋겠다. 우선 현대차의 생산체제를 “최고의 기술과 단순 육체노동의 결합”으로 평가했다. 현대차라는 기업이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체화한 자동화 설비를 갖추고 있는 반면 노동자들의 숙련도는 매우 낮다는 말로 들린다.

자동차 부품이 2만 개 이상이다. (이토록 많은 부품들을 잘 조립해야 우수한 제품을 만들 수 있으므로) 자동차 산업에서는 노동자의 숙련도가 매우 중요하다. 경영 측은 ‘인적 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어느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고품질 자동차 생산에 이로운가’를 판단해서 자동화의 정도를 결정한다. 일본이나 독일 자동차 산업의 경우, 아직 ‘인적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작업장에서 ‘마스터(경력 수십 년의 고참 노동자로 작업 과정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쌓아 다른 노동자들을 지휘하고 인사고과를 한다)’의 권한이 매우 강하다. 심지어 마스터는 생산 라인을 세울 수도 있다. 현대차에서는 이런 ‘마스터십(마스터의 리더십)’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숙련 노동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누가 생산 라인에 들어가든 차는 나온다’ 같은 말이 떠도는 이유인가? 일본, 독일 기업과 달리 현대차의 자동화가 숙련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인적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방향으로 발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1990년대 이전엔, 탄압적인 국가와 자본이 담합해서 전면적 성장 전략을 추진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경영진 측에 일종의 ‘강요된 협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현대차 사측과 노조는 각각 한국 자본의 대표 선수와 노동의 대표 선수로 대치하게 되었다. 이른바 이별의 시기다. 더욱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현대차의 대량해고 사태로 노동자들은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게 된다. 노동조합은 사용자 측을 ‘에너미(enemy·적)’로 간주했다. 노사 양측이 완전히 결별한 것이다. 이후 노동조합은 단체협약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작업장을 거의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편집자주-‘M/H:자동차 한 대 생산에 들어가는 작업자 수와 작업 시간’ ‘HPV:한 대 생산에 걸리는 시간’ ‘UPH:시간당 생산 대수’ 등 생산성 관련 지표를 조정할 때 현대차 사측은 노동조합과 사전 협의해야 한다). 경영진은 노동조합의 통제를 벗어날 방법을 고민하다가 결국 그런 방향의 자동화로 가게 된 것이다. 자동화 정도가 강하면 노동자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심지어 불량품까지 기계로 잡아내게 되었으니, 그만큼 (사람이 할 일이 적어지고) 노동의 내용이 단순해졌다(탈숙련화). 노동 측은 이런 자동화를 허용하는 대신 ‘보상(임금)은 양보할 수 없다’는 쪽으로 갔다. 노사 양측의 이런 전략이 서로 얽히면서 ‘최고의 기술과 단순 육체노동의 결합’으로 귀결되었다.

ⓒ연합뉴스
2016년 10월17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에서 임금협상을 마친 노사가 악수를 하고 있다.
노동자들로서도 아주 행복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노동의 내용 측면으로 볼 때) 고단하고 단순 반복적인 라인 노동을 하는 ‘수동적 실행자’로 변신했다. 예컨대 30년 이상 현장에서 일하며 지식과 경험을 축적한 노동자가 기계부품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마스터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보상 확대에만 주력하겠다는 사고방식이 굳어졌다. 현대차 경영 전략에도 문제가 있다. 현장 노동자들이 자아를 실현할 기회가 없다. 노동자 6만여 명 가운데 100명 정도라도 ‘기능장’으로 승진시켜서 이사 대우를 해주면 좋은데, 그런 제도가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그러나 노동조합 측의 보상 확대 전략은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현대차의 경우, 1인당 연평균 임금이 1억원에 가깝다. 다만 현대차 노동자들은 자신이 고임금 수령자나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50세 정도 되는 현대차 노동자에게 물어봤다. ‘연봉이 1억원 가까이 되죠?’라고 하니 ‘매달 약 300만원 챙긴다’고 말했다. 그래서 (항목별로 따져 물으니) 대충 1억원이 맞더라(본봉이 5000만원 정도, 성과급과 각종 수당 등이 2000만~3000만원, 특근수당이 약 2000만원). 노동자들의 심리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이런 식이다. ‘나는 일을 엄청나게 많이 하지만 실제로 수령하는 본봉은 월 30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자본을 위해 잔업·특근을 하고 받는 것이니 내 소득에 포함되지 않는다. 본봉 이외의 금액은 언제든 떨어져나갈 수 있으므로 정상적 임금이 아니다.’

실제로 현대차에는 임금체계의 문제가 있다. 총액에서 본봉의 비율이 다른 회사는 60~ 70% 수준인 데 비해 현대차는 50%밖에 안 된다. 과거에 사측이 잔업과 특근을 많이 시키려고 그렇게 만들어놓았다. 노조 측도 조합원들에게 ‘당신은 중산층이 아니라 노동자’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이러다 보니 실제로는 연간 1억원을 받으면서도 ‘내가 회사로부터 받은 것은 5000만원밖에 안 되고, 나머지 금액은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나머지 금액’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은 원칙적으로 옳다. 자동차 수요가 줄어 잔업, 특근을 못하게 되는 경우다. 다만 지난 20여 년 동안엔 (자동차 수요가 계속 늘어났으므로) ‘나머지 금액’이 계속 증가했다. 문제는 이후 실제로 자동차 경기가 침체되는 경우다.

ⓒ연합뉴스
2016년 1월11일 49년 만에 잔업이 없어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 라인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급변하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추세에 따라가지 못하면 그런 상황이 실제로 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생산체제로도 당분간 현상 유지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0년 정도? (글로벌 차원에서 볼 때)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어렵겠지만, 중저가 자동차 시장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같은 생산체제에서 (선진국 자동차 기업들을) 추월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천지개벽하는 중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 보이고 있다. 업그레이드하지 못한다면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대차의 모든 제도는 성장에 맞춰져 있다. 실제로 침체(성장의 중단) 상태가 도래하면 경영진, 관리자, 노동자 모두가 쩔쩔매게 될 것이다. 그동안 노동자들의 생활은 연 소득 1억원에 맞춰져 있었다. 갑자기 5000만~6000만원으로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노동자들 사이에 물량을 자기 공장으로 가져오기 위한 내부 투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물량이 많을수록 잔업, 특근을 해서 임금을 높일 수 있다). 울산엔 공장이 다섯 개 있는데, 다른 공장이나 비정규직 몫의 물량을 빼오려 한다거나…. 지금도 물량 많은 공장이 적은 공장으로 일을 넘기지 않는다. 차라리 인력을 더 달라고 한다. 지금까지 현대자동차 공장들의 문제는 주로 ‘늘어나는 물량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였다. 줄어드는 물량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결국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문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생산성, 경쟁력 같은 용어들에는 경기를 일으키게 되었다. ‘자본의 주구’나 쓰는 말 아닌가? 단순 반복 노동으로는 ‘자기실현’이 불가능하므로 차라리 일을 적게 하면서 임금을 많이 받는 것이 합리적 행위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울산공장의 편성효율(인력의 효율적 활용에 관한 지표. 높을수록 효율적)이 (현대차의 국내외 공장들 가운데) 최하위다. 2013년 현대차 자체 통계에 따르면, 해외 공장의 편성효율이 모두 90%대인 반면 한국 공장은 약 60%에 그쳤다. 한국 노동자들보다 훨씬 낮은 임금을 받는 현대차의 인도나 터키 공장 노동자들이 항의할 수 있다. 그들의 수익이 편취당하는 것으로 느낄 것이다.

노동조합이 작업장을 어느 정도 통제하게 된 결과가 그것이란 말인가? <가보지 않은 길>에는 ‘밀어치기’란 유행어가 나온다. 생산 라인에서 한 노동자가 옆 동료의 작업까지 함께 수행하는 동안 옆 동료는 쉬고, 다시 두어 시간 뒤에 역할을 바꾸는 식으로 일한다는 것인데…. 그만큼 공정이 느슨하게 조정되었다는 뜻인가?

그러니까 같은 라인에서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다. 자신들은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는데, 정규직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지만 유니폼 색깔부터 다르다. 비정규직은 일종의 버퍼(buffer·완충장치)다. 물량이 많았다 적었다 하니까(노동 수요가 늘었다 줄었다 하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 제도가 채택되었다(물량이 많을 때 채용했다가 줄어들면 해고한다는 의미다).

노동운동에서 이야기되던 ‘노동자 단결’ ‘연대’ 같은 가치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유럽 노동운동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19세기 말 이전에 유럽 노동운동의 중심은 ‘숙련공 노동조합’이었다. 이후 기계 도입에 따른 자동화로 (특정 기술을 갖지 못해도 단순한 손동작만으로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되면서) 비숙련 노동자들이 양산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자 계급이 조합 내부의 숙련공들과 그 밖의 단순 노동자로 쪼개지면서) 숙련공 노동조합들은 외부의 비숙련 노동자들을 조직 내로 끌어들일지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런 ‘외부자’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이익까지 대변한 노동운동(가령 독일과 스웨덴)이 성공했다. ‘클래스 솔리더리티(class solidarity·노동계급 연대)’가 형성된 덕분이다. 지금 한국의 경우, 전체 노동자의 상위 5%가 노동운동을 주도하지만 비정규직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은 없는 것 같다.

‘노동계급 연대’라니 좀 생경하게 들린다. 자본 측이 굉장히 싫어할 듯하다.

클래스 솔리더리티라고 하면 ‘좌파·종북’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유럽에서는 노동계급 연대로 노동자 내부의 차별적 처우를 차단하고 자본과 수익 배분에 나설 수 있었다. 또한 노동-자본 간의 ‘생산성 동맹(노동자는 기업의 생산성 및 경쟁력 향상에 힘쓰고, 자본 측은 노동자의 경영 참여, 복지 향상 등에 동의)’이 이루어졌다. 스웨덴과 독일의 노동조합들은, 자본과의 타협이 없다면 노동계급 연대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국가는 노동계급 연대를 생산성 동맹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복지제도를 시행했다.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는 기업이다. 정부는 노동법 등으로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 노조는 정규직에 과다 배분되는 노동을 비정규직에게 양보하는 등 일자리 나누기를 해야 한다. 기업 경쟁력이 강화되면 지불 능력 또한 커져서 일자리가 창출된다. 이에 따라 세수가 많아지면 복지 기반이 튼튼해진다. 이런 선순환이 한국에서는 가동된 적이 없다.

한국 노동운동의 노선 전환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노동운동이 지금처럼 가면 계급 연대도 불가능하고 경제성장도 어렵다. 노동조합이 제구실을 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조직된 세력은 노동조합밖에 없다. 또한 소득 기준 상위 조직 노동자들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 그들이 자신의 역량으로 어떻게 솔리더리티를 확대해서 저 밑의 노동자들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한 ‘손실의 내면화’가 필요하다. 예컨대 상위 노동자들이 청년 취업을 위해 자신의 소득에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일자리 나누기’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손실을 내면화했으니 자본 측도 그렇게 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대차 노동조합이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라고 요구한 적도 있지 않나. 이래서는 안 된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노동조합이 감동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내놓은 적이 있나? 내가 알기로는 없다.

노동조합들은 약자로 자처한다. 약자가 어떻게 베풀 수 있겠는가?

결코 약자가 아니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정치권이 정신 차려야 한다. 정치권은 계속 기업만 때린다. 그러면서 일자리 만들라고 한다. 우스운 상황 아닌가.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역성을 들며 그 뒤에 숨는다. 서구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권은 노조와 기업을 모두 때린다. 타협하라는 것이다. 노사가 타협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니까. 앞으로 진보 성향의 정권이 집권하면 상위 노조 5%와 담판을 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머지 95%를 살릴 수 없다. 상위 노조 5%가 모범적 행동 패턴을 보이면 한국 사회는 제대로 갈 수 있다. 지금 당장의 이익보다, 자녀들을 보면서 5~10년 뒤를 대비하기 바란다. 양보하지 않으면서 거룩한 척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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