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채 녹지 않은 산에 둘러싸인 중앙아시아 국가 타지키스탄. 지난해 5월 이 나라는 국민투표에서 대통령의 임기 제한을 없애는 개헌을 했다. 이로써 이미 20년 가깝게 권좌에 앉아 있는 에모말리 라흐몬(63) 타지키스탄 대통령이 종신 집권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타지키스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율이 79.9%였으며 투표 참여자의 94.5%인 381만4000명이 개헌을 지지했다”라고 밝혔다. 기존 헌법은 임기 7년인 대통령이 세 번 연임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원래대로라면 라흐몬은 네 번째 임기가 끝나는 오는 2020년에 물러나야 한다.

그는 내친김에 아들에게까지 대통령 자리를 승계할 준비를 마쳤다. 개헌안에는 대선 후보의 연령 제한을 35세에서 30세로 낮추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는 혹시라도 당시 29세인 라흐몬 대통령의 큰아들 루스탐이 대통령에 출마할 필요가 생겼을 때에 대비해 법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절대권력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수도 두샨베 곳곳에는 라흐몬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날로 커져가는 사진과 가짓수가 늘어나는 대통령 기념품들은 이제 이 나라가 독재자를 우상화하는 길로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AFP2월27일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오른쪽)이 타지키스탄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타지키스탄은 1992년 옛 소련에서 독립했다. 소련이 권력을 내놓자 서로 정권을 잡으려고 친(親)소련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내전을 치렀다. 타지키스탄 최고회의 의장이던 라흐몬은 1999년, 2006년, 2013년 대선에서 잇따라 승리하고 네 번째 임기를 맞았다. 의회에는 라흐몬의 집권당밖에 없었기 때문에 개헌은 식은 죽 먹기였다. 쉽게 말해서 타지키스탄은 야당이 없는 나라다.

야당 말살은 2014년 10월 야권이 연대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준비하다 적발되면서 시작되었다. ‘아랍의 봄’이 중동을 휩쓴다는 뉴스가 이곳 타지키스탄에도 속속 전해졌다. 라흐몬 대통령 친인척 비리는 국민의 오락거리가 될 지경이었다. 라흐몬 대통령 측근인 자이드 사이도프 전 장관은 일부 기업에 편의를 봐주고 그 회사 주식의 5%를 대가로 받아 36만 달러(약 3억8000만원)를 갈취했다. 그가 각종 이권에 개입해 거둬들인 돈이 900만 달러(약 95억원)에 달해 타지키스탄은 부패 스캔들로 부글부글 끓었다. 폭로 전문 매체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 문서에서 2010년 타지키스탄에 주재한 미국 외교관들은 “라흐몬과 그 측근이 은행을 포함한 주요 기업을 조종하며 부정한 수단도 서슴지 않는다”라고 보고했다. 2014년 독일에서 도난당한 고급 자동차 200여 대가 라흐몬 친인척의 소유로 둔갑해 타지키스탄에서 발견된 사건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다. 라흐몬 대통령 측근 비리가 잇따라 터지자 ‘타지크 재건을 위한 청년연합’과 ‘그룹24’라는 반정부 세력이 뭉쳤다. 이들은 10월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열어 라흐몬 대통령을 압박하려 했다. 하지만 이 거사는 사전에 적발되었다.

반정부 단체 지도자 외국까지 쫓아가서 사살

이후 대대적인 반정부 세력 색출 작전이 벌어졌다. ‘그룹24’의 지도자 우마라리 쿠바토프는 국가 전복 혐의로 경찰에 쫓겼다. 라흐몬 대통령 측근인 술레이몬 콰이모프는 터키 이스탄불까지 쫓아가 우마라리 쿠바토프를 권총으로 사살했다. 급기야 2015년 타지키스탄 법원은 유일한 야당인 이슬람부흥당(IRPT)을 테러 단체로 규정했다. 또 당의 모든 정치활동과 당을 소개하는 인쇄물이나 영상 등을 배포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야당에서 활동하던 인권변호사 브주르그메르 요로프를 체포하고 야당 관계자 30여 명을 구속했다. 2015년 3월 총선에서 이슬람부흥당은 의회 진출에도 실패했다. 그 선거는 국제감시단으로부터 부정선거라고 지탄받았지만 라흐몬 정권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라흐몬은 독재와 인권 탄압으로 2011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10대 독재자에 오른 전력이 있다. 야당이 완전 와해된 가운데 종신 집권을 위한 개헌을 밀어붙인 것이다. 그는 〈타임〉에 의해 같은 해 10대 독재자로 뽑혔던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부럽지 않은 절대권력을 구축했다.

ⓒAP Photo2015년 9월4일 수도 두샨베에서 국방차관이 이끄는 무장단체와 경찰이 충돌해 17명이 사망했다.
현재 타지키스탄에서는 라흐몬에 대항할 세력이 거의 전멸했다고 볼 수 있다. 길거리에서는 경찰이 삼엄하게 국민을 감시한다. 가정집 같은 사생활 공간을 제외한 열린 장소에서는 축하나 파티 등을 꿈도 못 꾼다. 인터넷 역시 철통처럼 봉쇄했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는 완전히 막혔다. 두샨베에서 외국 NGO와 함께 활동하는 한 활동가는 “2015년 카페에서 생일 파티를 열고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이자예프 아미르벡이라는 젊은이가 ‘공공장소에서의 예절’ 관련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고 난 뒤부터 소셜 미디어가 완전히 끊겼다”라고 증언했다. 신문이나 방송 역시 반정부적인 내용은 입도 벙긋 못한다. 외신 취재도 금지다. 한 일간지 기자는 “우리 기사는 모두 조작되고 각본으로 정해진 거니 믿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또 다른 신문기자는 “반정부 기사를 쓴 한 동료 기자가 체포되었다. 우습게도 그의 혐의는 여권에 출생일을 잘못 기재했다는 것이다. 그는 2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라고 말했다.

타지키스탄 정부는 이런 비민주 행위를 나름 정당화하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 야당인 이슬람부흥당이 이슬람 무장세력과 결탁해 현 정권을 전복하려 한다는 것이다. 라흐몬 대통령은 친러시아 세력이다. 이슬람 세력의 정적이다. 타지키스탄은 남쪽으로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아프간 전쟁 기간에 많은 타지키스탄 젊은이가 이슬람 무장세력에 가담해 이미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 소속 타지키스탄인 30여 명이 국내에서 활동 중이며, 타지키스탄 출신 테러리스트들이 시리아·파키스탄 등에서 훈련을 받고 들어와 아프간에서 테러를 저지른다고 발표했다. 또 시리아 내전이 난 이후에는 타지키스탄 젊은이 2000여 명이 시리아에 건너가 이슬람국가(IS) 대원이 되었다. 2015년 5월에는 타지키스탄 경찰 특수부대 사령관인 굴무로드 하리모프가 IS에 가담해 충격을 주었다. 그는 미국에서 대테러 전술 훈련을 받은 전력이 있어서 미국의 대테러 전술이 IS에 노출된 것 아니냐는 우려를 샀다. 경찰 내부에도 IS가 확산되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라흐몬 독재정권에 명분을 주었다. 민주화운동 세력을 이슬람 무장세력으로 몰아붙여 소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슬람 신자가 90%가 넘지만 두샨베에서는 이슬람의 상징인 여자들 머릿수건(히잡)을 보기 힘들다. 타지키스탄 정부가 이슬람 복장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에는 1만3000여 이슬람 남성들의 턱수염을 밀어버렸다. 전통 무슬림 의상을 파는 가게 160여 곳을 집단 폐업시키기도 했다. 정부는 이슬람 과격주의를 막겠다며 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

2015년 9월에는 한 20대 청년이 이슬람 과격주의자처럼 수염을 길렀다는 이유로 경찰에 폭행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전해지자 이슬람 신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사건 다음 날 압두하림 나자르조다 국방차관이 이끄는 무장 조직원 수백명이 수도 두샨베 안팎에서 경찰과 충돌해 최소 경찰 8명과 무장 조직원 9명이 사망했다. 현직 국방차관이 이슬람 무장세력을 이끌고 정부군과 전투를 벌인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두샨베 주재 미국 대사관은 타지키스탄이 내전 직전까지 간 것으로 판단해 대사관 문을 닫고 직원의 외출과 아이들 등교를 금지했다. 라흐몬 정권은 이 소요 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해 간신히 내전을 막은 뒤 개헌을 서둘렀다. 이제 타지키스탄은 라흐몬의 왕국이 되었고 독재는 갈수록 기승을 부리게 생겼다.

기자명 타지키스탄·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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