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6일 경기도 평택시 오산공군기지에 요격미사일 발사대 2기가 도착했다. 예상보다 빨리 그리고 급작스럽게 한·미 당국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시작했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결연히 반대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발표했다. 러시아 정부도 “군사적인 대응 조치를 하겠다”라고 표명했다. 동북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드 배치는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중국은 사드가 자국의 안보 문제를 침해한다고 주장해왔다.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면 무역 보복은 물론 안보·군사적 대응까지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보복은 무역전쟁으로 옮아붙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가 처음부터 사드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4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사드를 도입하자는 의원총회’를 강행했다. 청와대와 친박계는 만류했다. 당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던 윤상현 청와대 정무특보(당시 새누리당 의원)는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사드 문제를 공론화하는 건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 우리 내부에서 갑론을박하면 주변국들 목소리만 더 커지고 우리 정부의 주도권은 더욱 없어진다. 우리가 사드 배치를 주장한다고 해서 국민적 총의가 모이는 것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 안보 비용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주한미군사령부 제공3월6일 사드의 부품이 처음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2015년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 기념행사에 윤상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당시 러시아 행사 참여에 관여했던 한 외교관은 “윤상현 의원은 한국이 사드를 배치할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러시아와 중국에 명확히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을 박 대통령의 친서를 통해 전달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윤 의원의 한 측근도 “윤 의원이 ‘사드는 없다’는 이야기를 중국과 러시아에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한 것도 맞다”라고 말했다.

2015년 9월에도 윤상현 의원은 일관된 입장을 이어간다. “사드는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며 검증된, 완성된 무기 체계가 아니다. 정말로 사드 배치가 핵 억제에 작용될 수 있는가.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 체제가 성립된다는 의미인데 그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한·중 간 경제협력이 한·미 간보다 두 배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이런 면엔 어떤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하나.”

2016년 2월7일, 한·미 국방부는 사드 배치를 협의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한다. 이때까지도 사드 배치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외교 카드’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2016년 6월 말, 중국을 방문한 황교안 국무총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사드는 결정한 바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7월8일 국방부는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전격 발표한다. 외교부·통일부 등 유관 부서와 협의도 없었다. 핵심 당사자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조차 사드 배치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발표 당시에 윤 장관은 백화점에서 양복을 수선하고 있었다.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 인사들도 사드 배치에 대해 사전에 잘 알지 못했다. 2016년 7월5일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가 열렸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사드가 배치되면 우리의 요격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윤상현 의원이 “북한 군부나 정권에 사드 배치 부담감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사드 한 대에는 미사일 48발이 있다. 북한은 미사일이 1000여 기가 넘고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는 200대가 넘는다. 미사일 비가 쏟아지는데 사드가 미사일 빗줄기를 하나하나 추격해 맞출 수 있는 무적의 방패 우산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사드는 없다’ 했지만 물밑 작업은 계속

사드 배치가 발표될 때까지,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의 무기 도입 과정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으며 누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일까?

〈시사IN〉이 단독 입수한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업무수첩에 사드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6년 3월6일이다. 안종범 업무수첩은 대통령의 지시 사항뿐 아니라 각종 회의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어 박근혜 정부 ‘사초’라고도 불린다. 안종범 업무수첩에 따르면, 티타임에서 ‘사드’가 잠깐 언급되었다. 사드 배치 후 “외부 세력 대처” “중국 지도부의 보복 의지 감지” 등 사후 대책이 논의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업무수첩에 적힌 사드 관련 내용들. 사드 배치 후 ‘외부 세력 대처’ ‘중국 지도부의 보복 의지 감지’ 등 사후 대책이 청와대 회의에서 논의되었다.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우리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사드에 대한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며 이른바 ‘3불론’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수면 아래서 사드 시계는 돌아가고 있었다. 우선 방산 라인을 ‘박근혜 사람’으로 교체했다. 2014년 1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방위사업청장에 장명진씨를 임명한다. 최순실·차은택 라인인 김상률씨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임명할 즈음이었다. 장 청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강대 전자공학과 동기동창이다. 미사일 전문가로 행정 경험은 전혀 없던 인물이다. 장명진씨의 한 대학 동기는 “박 대통령이 학생 시절 청와대 경호원들이 영애(박근혜)를 데려오면 장명진에게 인계하고 가곤 했다”라고 말했다.

2014년 11월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꾸려졌다. 김기동 검사가 방산 비리 수사를 총괄 지휘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은 “차은택의 법조 조력자가 김기동인데 우병우가 김기동을 소개해줬다”라고 말했다. 김기동 검사는 “후배 검사가 저녁 식사하는 자리에 차은택이 우연히 동석해 밥값을 내주고 명함을 주고받은 게 전부다”라고 해명했다. 정부합동수사단의 한 관계자는 “방위사업비리 수사단이 실세는 못 잡고 민간인만 잡는다는 비판이 컸다. 록히드마틴의 경쟁사만 집중 공격한다는 비난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의 무기시장은 록히드마틴의 독무대였다.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록히드마틴에서 무기 구입비 107억2475만 달러(약 12조4398억원)는 노무현 정부(1억976만 달러·5년)의 100배가량, 이명박 정부(7억7777만 달러·5년)에 비해서도 13배 이상 증가했다(아래 표 참조). 공군과 해군의 한국형 전투기 KF-X 120대 개발, 공군 주력 KF-16 134대 성능 개량, 해상 초계기 바이킹 12대 등 항공기 사업은 록히드마틴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도입 비용만 27조8000억원에 이른다. 항공기의 경우 가동되는 30~40년간 막대한 부품비·운영비가 계속 들어간다. 한 공군 장성은 “박근혜 정부에서 계약한 건만으로도 록히드마틴은 항공기 구입비와 운영비로 100조원이 넘는 돈을 벌게 된다. 여기에 이지스함 전투체계 구매, 금강4차 후속 지원, 패트리엇(PAT-3) 성능 개량 등 큰 덩어리 무기 구입은 모두 록히드마틴 몫이었다”라고 말했다. 기무사령부 한 간부는 “박근혜 정부에서 록히드마틴이 무기 수주를 싹쓸이하도록 밀어주었다. 그러자 정윤회·최순실 등 비선이 무기 거래를 주도한다는 소리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사드 제조사도 바로 록히드마틴이다.

 

 

 

 

ⓒ록히드마틴 제공2014년 3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가 보잉 전투기 선정을 취소하고 록히드마틴의 F-35A(사진)로 기종을 번복하면서 잡음이 일었다.

 


정윤회·최순실의 이름이 방산 분야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은 노후한 전투기를 대체하는 KF-X(차세대 전투기) 사업이었다. 향후 30년간 우리 영공을 책임질 전투기를 선정하는 작업으로 전투기 구입비 7조3000억원, 부품 교체비 등 운영비까지 합하면 30조원이 넘게 투입되는 초대형 안보 사업이다. 미국 보잉 사의 F-15SE(사일런트 이글), 록히드마틴의 F-35, 에어버스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등이 경쟁했다. 보잉과 에어버스는 한국형 전투기 KF-X 개발을 위해 레이더 등 4가지 핵심 기술 이전뿐 아니라 항공기 사업 투자까지 약속했다. 반면 록히드마틴은 핵심 기술 제공을 거부했고, 가격도 비쌌다. 2013년 9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보잉의 ‘사일런트 이글’을 최종 선정한다. 그런데 2014년 3월 김관진 국방부 장관(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보잉 전투기 선정을 취소하고 록히드마틴의 F-35A로 기종을 변경했다. 기종 선정이 번복되면서 잡음이 컸다. 당시 김 실장은 “정무적으로 판단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때부터 정윤회·최순실 이름이 거론되었다. KF-X 사업에 참여했던 한 국방부 인사는 “핵심 기술 이전을 거부한 록히드마틴은 가격도 비싸서 보잉기 60대 살 돈으로 40대밖에 사지 못한다. 청와대에서 급히 기종을 바꾼 것은 비선의 힘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정윤회·최순실 이름이 나돌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세계일보〉는 “최순실씨의 전남편 정윤회씨에게서 전화를 받은 일은 있다”라는 방위사업청 직원의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했다. 국방부에서는 최순실 의혹과 관련해 “말도 안 된다”라고 일축했다.

비선 의혹은 로비스트 린다 김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정찰기 도입 사업인 ‘백두사업’ 비리에 연루되었던 린다 김은 이후 방산 업계에서 퇴출당했다. 간간이 방송에 출연하며 재기를 꾀했지만 방산 업계에서 그녀의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린다 김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국방 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1980년대 박근혜씨가 외로웠을 때 린다 김이 로스앤젤레스 샌타모니카에 있는 자기 별장에서 묵게 해주었다. 거기서 박근혜씨는 글을 썼다고 한다. 이후에도 린다 김이 박 전 대통령을 극진히 챙긴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린다 김의 한 지인은 “박 대통령 당선 후 린다 김이 청와대에 자주 들어갔다고 이야기했다. 명절 때는 청와대에서 자고 온 적도 있다고 했다. 린다 김이 최소 여섯 차례는 청와대에 갔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린다 김 (검찰)조서에 언급된 정윤회

박근혜 정부 들어 린다 김이 로비스트 활동을 재개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방위사업청의 한 육군 장성은 “박근혜 정부 들어 린다 김이 청와대를 팔고 다닌다는 정보가 돌았다”라고 말했다. 린다 김과 친분이 두터운 미국계 무기 로비스트 ㅇ씨는 “록히드마틴의 로비스트였던 린다 김은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KF-X 사업에서는 이미 선정된 보잉 사를 뒤집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는 “린다 김의 파트너는 정윤회씨였고 청와대에서는 김관진 라인이 가동됐다. 그런데 나중에 최순실이 린다 김-정윤회 라인을 배제하고 직접 록히드마틴과 테이블에 앉았다”라고 덧붙였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군 최고위층 인사에 따르면 2015년 6월 최순실씨가 오산공군기지로 비밀리에 입국한 록히드마틴 회장과 만났다. 그 이후 록히드마틴 간부들이 한국에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록히드마틴 측은 “F-35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사업과 관련해 최순실 및 린다 김과 상의한 적이 없다. 록히드마틴 메릴린 휴슨 회장은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으며 최순실과도 만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힌다”라고 해명했다.

린다 김과 정윤회(최순실)의 관계는 전혀 엉뚱한 사건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2016년 10월 린다 김은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의 검찰조서에는 ‘2016년 5월29일 린다 김이 무기 로비스트 ㅇ씨와 메리어트호텔에서 저녁을 먹은 후 청담동 ㅋ노래방에서 정윤회씨와 전직 장관, 인기 중견가수 등과 노래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전직 장관은 노래를 3곡 부르고, 가수는 새벽까지 동석했다고 한다. 검찰 조서에 나오는 전직 장관은 “린다 김과 친분은 있으나 그날 정윤회씨와 동석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인기 중견가수도 “다른 사람들은 만난 것 같지만 정윤회씨를 만나지는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은 “독일에서 정윤회와 친분을 과시하는 박원오(대한승마협회 전 전무)에게 정유라가 ‘우리 아버지는 청와대 김관진 말고는 형님으로 모시는 사람이 없다’라며 큰소리를 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자료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록히드마틴의 로비스트 린다 김이 기지개를 켰다. 이후 정윤회·최순실이 무기 거래에 관여한다는 소문이 돌았다(위 왼쪽부터).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수사하던 박영수 특검은 최순실씨가 무기 거래에 관여한 단서를 잡고 수사에 나섰다. 지난 1월 특검 조사관들이 대전교도소에 들이닥쳤지만 린다 김이 면담을 거부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검의 한 관계자는 “린다 김이 최순실과 사드의 고리를 풀어줄 열쇠인데 시간이 모자라 어렵게 됐다. 향후 무기 도입에 대한 최순실의 농단은 검찰이 반드시 밝혀야 할 과제다”라고 말했다.


특검팀이 의심하는 최순실의 국방 분야 관여 의혹에는 사드 배치도 포함되어 있다. 린다 김과 친분이 깊은 미국계 무기 로비스트 ㅇ씨는 “(사드 제조사인) 록히드마틴의 한국 독점과 무관치 않다. 사드 배치 과정에서 최순실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의심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특검의 한 고위 관계자도 “사드는 유관 기관이 배제된, 완벽한 박근혜 대통령의 단독 플레이였다. 결국 최순실이 개입한 것으로 의심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순실씨는 지난해 12월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국정조사특위 위원들과의 ‘현장 청문회’ 때 “황당하다. 록히드마틴이 뭐 하는 회사인지도 모른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