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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 옆 역사적 방송사고

2017년 03월 29일(수) 제497호
김형민 (PD)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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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년 라디오 방송이 개발된 이래 방송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양하게 담았다. 하지만 방송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탄핵이 인용된 날,
부산대학교 로버트 켈리 교수가 낸 방송사고는 유쾌한 웃음을 주었다.

1906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 캐나다의 발명가 레지널드 페선던은 무선 송신기 앞에서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로 음악가 헨델의 <라르고>를 틀고 크리스마스 인사를 남겼어. 이 소리들은 대서양변에 세워져 있던 126m 높이의 안테나를 통해 대서양을 항해하던 배들에게 전해진단다. 무전기에서 귀에 익은 모스 부호 타전 소리가 아닌, 사람 목소리와 음악이 흘러나오자 선원들은 깜짝 놀랐단다. 그들은 인류 최초의 라디오 방송을 경험한 거야. 페선던의 첫 방송. 즉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정보’와 헨델의 음악으로 대변되는 콘텐츠는 이후 전방위로 확대돼 세상을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특별한 기술을 배우지 않더라도 라디오를 통해 뉴스를 빠르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음악을 듣고, 누군가의 강연을 접하고, 코미디언의 만담에 함께 폭소하며 방송이 여는 신세계의 일원이 되어갔지.

1938년 오손 웰스라는 명연출자가 영국의 H. G. 웰스의 소설 <우주 전쟁>을 각색해 CBS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한 적이 있어. 방송 도입부에 “이 방송은 라디오 드라마입니다”라는 안내가 나갔지만 뒤늦게 라디오를 켠 사람들은 그걸 몰랐고 “화성인이 습격했습니다”라는 ‘뉴스 속보’가 울려 퍼지자 그야말로 패닉에 빠지게 돼. 수많은 이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거리로 뛰쳐나왔고 화성인과 싸우겠다며 총을 들고 나선 용자(勇者)들도 속출하는 가운데 방송국은 울부짖는 문의와 분노의 항의 전화로 마비되고 말았단다. 너무나 리얼한 방송을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오손 웰스는 엎드려 사과해야 했어. “정말 미안합니다.” 방송의 위력이 빚어낸 ‘사고’였지.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1988년 8월 MBC <뉴스데스크>에서 발생한 방송사고.

그 이후 라디오, 그리고 텔레비전까지 더욱 다양하고 폭넓은 방송의 시대가 열렸어. 그와 아울러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공포의 대상이 되는 단어도 심술궂게 따라붙게 되지. 바로 ‘방송사고’야. 즉 ‘방송 진행 도중 제작진의 실수나 기타 돌발 사태로 인하여 방송 진행에 차질이 생기는 사례’들이지.

한국의 KBS가 문을 연 것은 1961년 12월31일이야. 좀 이상하지 않니? 12월 말일에 굳이 방송사 문을 열어야 했나, 싶고 말이야. 여기에는 사연이 있단다. 1961년은 박정희 소장이 5·16 쿠데타를 일으킨 해야. 군사 정권, 그들 말로 ‘혁명정부’는 국영 텔레비전 방송국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어. 그래서 “새로워지는 나라와 겨레의 모습을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서 이것을 눈으로 보고 그들의 생활로 삼게 하기 위해서, 혁명정부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삼고 싶어서(공보부 장관 오재경)” 방송국 개국을 벼락치기로 감행한 거야. 끝내 크리스마스 선물은 되지 못했지만 말이야.

그러니 제대로 준비됐을 리가 있나. 온 방송사에 스튜디오 카메라는 단 두 대였다고 해. 녹화기도 없어서 거의 모든 방송이 생방송이었는데 압권은 드라마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는구나. 너도 익히 아는 배우 이순재씨의 증언이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면 그냥 전국에 생방송되는 거였다. NG나 재촬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송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NG가 없을 리가 있나. “스튜디오 바닥이 마룻장이어서 힐을 신은 여자 연기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움직이는 장면에서 마룻장 구멍에 힐이 박혀 꼼짝을 못하자, 난데없이 ‘엄마야!’ 하고 소리친 적도 있었다(<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김환표, 인물과 사상사).” 상상해보렴. 전국 생방송 도중 튀어나온 “엄마야”를 말이지.


ⓒBBC 화면 갈무리

ⓒ연합뉴스
로버트 켈리 부산대학교 교수는 영국 BBC와 생방송 인터뷰를 하던 중 자녀들이 ‘난입’하는 방송사고(맨 위)를 냈다. 3월15일 켈리 교수는 가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방송장비와 체계가 갖춰지고 노하우도 쌓이면서 이런 어이없는 방송사고는 점차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가 됐다. 하지만 그래도 방송은 ‘사람이 하는 일’이었어. 자막 오기, 아나운서의 말실수 등 생방송 중 자잘한 사고는 끊이지 않았고 이따금은 ‘역사적’ 수준의 방송사고도 터져 나왔는데, 1988년 8월4일 밤 9시20분쯤, MBC <뉴스데스크>에서 발생한 방송사고는 특히 유명하다.

요즘에야 MBC <뉴스데스크>가 시청률이 3% 이하로 추락하는 등 위상이 말씀이 아니지만 한때는 KBS 9시 뉴스를 능가하는 권위 넘치는 방송이었어. 그런데 수백만 시청자들은 한창 뉴스를 진행하던 낯익은 앵커 옆으로 웬 남자가 다가서는 모습을 보게 돼. 강성구 앵커는 그를 의식하면서도 내처 뉴스를 진행했는데 갑자기 이 남자가 앵커를 밀치고 마이크로 달려들어 외쳤어. “내 귀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옆에 있던 백지연 앵커에 따르면 남자가 너무도 태연히 스튜디오에 들어왔기에 뉴스 속보를 전달하러 온 것으로 착각했다고 해. 이미 정신이 반쯤은 나가버린 강성구 앵커였지만 그래도 청년에게 밀려나지 않으려고 기를 썼고 이내 달려온 스태프들이 이 난데없는 ‘내 귀에 도청장치’를 끌어냈단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우렁차게 ‘사고’를 치고 있었지. “가리봉동에 사는 소 아무개입니다!”

이 청년이 휘적휘적 들어와서 <뉴스데스크> 방송 스튜디오까지 아무런 제지 없이 들어올 수 있었다는 자체가 황망한 일이었으나 MBC의 불운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어. 1999년 5월11일 MBC는 또 한 번 대형 방송사고의 주인공이 된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의 내용에 불만을 품은 특정 교회 신도들이 MBC에 난입해 주조정실에서 방송을 중단시키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거야. MBC로부터 송신이 끊어지자 남산에 있는 송출소 직원들이 긴급히 대체 화면을 내보냈는데 그 주인공은 <동물의 왕국> 단골 출연자인 얼룩말이었어. 그 뒤 방송가에는 이런 농담이 유행했지. “남산에는 얼룩말이 산다.”

방송가의 농담, “남산에는 얼룩말이 산다”

헌법재판소에서 역사적인 대통령 탄핵 인용이 이루어지던 날, 영국의 BBC 방송이 아주 유쾌한 방송사고를 낸 사실을 아마 너도 알고 있을 거야. 부산대학교에 재직 중인 로버트 켈리 교수가 BBC와 인터뷰를 하는데 교수의 어린 자녀들이 홀연 방에 들어와서 인터뷰 중인 아버지를 난감하게 만들고, 기겁을 하고 슬라이딩해 들어온 엄마 손에 이끌려 격리되는 모습이 생생하게 방송돼버린 것이지. 엄숙하게 인터뷰 중인 아빠 뒤로 춤을 추며 등장한 딸에 이어 보행기 탄 아들마저 스르르 입장하는 모양을 보고 폭소한 사람은 수천만명은 족히 넘을 거다.

방송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양한 형태와 색깔로 담아 전하는 매체이고, 사람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전령이며 매 순간의 역사를 갈무리하는 창고이기도 해.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방송사고가 끊이지 않아 사람들을 놀래거나 웃음을 주는 것이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켈리 교수 가족의 사례는 앞으로도 방송사고의 기막힌 예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겠지만 정작 기억해야 할 것은 켈리 교수의 인터뷰 내용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10년을 살았는데 오늘이 그중에서 최고의 날일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이걸 해낸 방식에 상당히 감명을 받았습니다. 탄핵 절차 전체를 끝까지 마무리한 민주주의 국가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인들은 이 일을 폭력도, 큰 혼란도 없이 해냈습니다. (중략) 전 이것을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스캔들은 늘 일어납니다. 문제는 민주주의가 그 스캔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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