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서울 노량진역 인근에 대자보가 한 장 붙었다. “세상은 항상 너희들에게 괜찮으냐고 물었다. …선거 때마다 고시 식당을 찾은 정치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컵밥을 먹고, 손을 잡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너희들에게 힘들지 않으냐 물었고, 너희는 괜찮다고 말했다. …안다, 안 괜찮은 거.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비좁은 책상에 인격을 자르고 갈라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게 괜찮을 리가 없다. …나와라. 안 괜찮다고 말해라.” 전국수험생유권자연대가 출범하면서 붙은 호소문 ‘괜찮다고 말하지 말 것’이다.

취업을 위해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전국 100만명가량이다.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이들은 오늘도 서울 신림동과 노량진 등지 고시원에서 쪽잠을 자고 편의점 삼각김밥을 먹으며 ‘노오오오력’하고 있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지자 행보를 걷는 정부의 입시·채용 정책에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가면서, 정유라의 학사 비리나 최경환 의원의 공기업 채용 외압 의혹 같은 우리 사회 숱한 입시·채용 비리 사건을 목도하면서 수험생들은 점차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는 니네 부모를 원망해.” 이 악몽 같은 환청이 수험생들을 괴롭힌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며 수험생들이 직접 나섰다.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고 또 같은 이유로 힘들지만 한 번도 뭉쳐본 일이 없기에 늘 을이고 약자였던 전국 모든 수험생이 처음으로 뜻을 모아 단체를 만들었다.

ⓒ시사IN 신선영
지난 2월28일 노량진에서 출범식을 연 전국수험생유권자연대는 사법고시생, 행정고시생, 교원 임용고시생, 7·9급 공무원 수험생, 경찰공무원 수험생, 대학 입시생 등 모든 수험생을 아울렀다. 각자 공부하는 내용과 앞으로 진로는 다르지만,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는 비합리와 불공정의 결은 결국 하나로 모아진다는 것을 수험생들은 알아차렸다.

첫 의장을 맡은 이는 사법고시 준비생인 안진섭씨(37·사진 가운데)다.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와 사법시험 준비를 병행하는 고시생 안씨는 “우리 수험생들은 임시적인 지위 탓에 언제나 약자의 위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다. 하지만 수험생으로서 겪은 불공정과 불합리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생각으로 이제 목소리를 내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사법시험·행정고시 폐지 반대, 임용고시 채점기준표 공개, 공무원 채용 비리 엄단, 각종 특례 및 특채 축소 등 전국수험생유권자연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장 시급하게 닥친 각 분야 수험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과정 속의 존재’로 놓인 대한민국 모든 청년에게 제안한다. “우리, 괜찮지 않다고 말합시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