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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인양되던 날

2017년 03월 29일(수) 제498호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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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2일 오전 10시
세월호 시험인양 시작

파도 높이 1m, 풍속은 초속 10.8m. 기상청은 소조기(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작은 때)가 끝나는 3월24일까지 세월호 사고 해역 인근의 기상 여건이 양호할 것이라고 예보했다. 해양수산부(해수부)는 바다 속에서 배를 들어보는 시험인양에 착수했다.
진도 팽목항 미수습자 가족 숙소도 분주해졌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참사 이후 1000일 넘게 임시 컨테이너 숙소를 지키고 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저희도 가족을 찾아서 집에 가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인양 현장으로 떠났다. 무사 인양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플래카드만이 텅 빈 숙소를 지켰다. ‘바다야 제발 잠잠해다오!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고창석, 양승진,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3월23일 새벽 3시45분
세월호 우현 스테빌라이저 수면 위로 부상

목포역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뉴스를 보던 택시기사는 사투리로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다. “옘병, 탄핵되니까 금세 올라와버리는구마잉. 요로코롬 빨리 되는 것인디 그렇게 시간을 끌어부렀어잉.”
해수부는 3월22일 밤 8시50분 세월호 본인양을 결정했다. 재킹바지선 두 대로 세월호를 수면 위 13m까지 끌어올린 뒤, 반잠수식 선박에 옮겨 목포 신항으로 이동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세월호는 시간당 3m씩 올라왔다. 3월23일 새벽 3시45분,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우현 스테빌라이저가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후 1073일 만이었다. 새벽 4시47분 세월호 선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곳곳이 긁히고 누렇게 녹슨 상태였다. 1073일 동안 미수습자 가족, 유가족, 그리고 시민들이 포기하지 않은 결과였다.

ⓒ시사IN 이명익
3월23일 오전 11시
재킹바지선과 간섭현상으로 세월호 인양 지연

이날 아침 7시30분, 컵라면 등 부식을 실은 배급선이 팽목항을 떠나 미수습자 가족들이 탄 배로 향했다. 전날 미수습자 가족들이 여분의 옷가지와 음식도 챙기지 못한 채 급히 인양 현장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월호가 반잠수식 선박에 안전하게 옮겨진 것까지 지켜본 뒤 팽목항으로 돌아오겠다”라고 밝혔다. 수면 위로 떠오른 세월호의 모습에 미수습자 가족들은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은화 엄마 이금희씨는 대국민 입장 발표 도중 흐느꼈다. “세월호가 올라온다고 할 때 환호했습니다. 이제 우리 은화 세월호 속에 그만 있어도 되는구나, 집에 갈 수 있겠구나. 그리고 그 배가 올라오는 모습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은화가 저런 곳에 있었구나, 우리 은화 어떡하지, 추워서 어떡하지….”
유가족 중 일부는 동거차도 정상에서 인양 현장을 지켜보았다. 유가족들은 2015년 9월부터 동거차도에 천막을 치고 세월호 인양을 지켜보았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인양분과장을 맡은 동수 아빠 정성욱씨는 이곳에 들어오던 날을 회상했다. “천막 치려고 그 무거운 걸 들고 산비탈 오르면서 얼마나 욕을 했는지….” 이제는 파면당한 국정 책임자를 향한 분노였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하고, 정부가 인양에 소극적인 배경에 바로 대통령이 있다고 보았다. 당초 2016년 7월 완료 예정이던 세월호 인양은 8월, 9월로 계속 미뤄졌다. 그사이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추모한다는 의미로 주변 나무에 묶어둔 노란리본은 누렇게 바랬다.
1년7개월 동안 기다린 순간이지만 동거차도 정상에 차려진 천막 분위기는 무거웠다. 2014년 여름 46일간 광화문에서 단식을 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인양 현장을 지켜보며 담배를 태웠다. 2.6㎞ 떨어진 맹골수도는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재킹바지선 주위로 방제 작업을 하는 선박 여러 척이 물을 뿜어댔다. 이날 오전 11시 해수부는 세월호 선체가 해저면에서 24.4m 올라온 상태에서 작업을 중단했다고 발표했다. 세월호를 끌어올리는 재킹바지선의 도르래 장치와 세월호 사이에 접촉이 일어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인양 소식이 알려지자, 그날처럼 기자들이 동거차도에 몰렸다. 인양 현장 상공에는 MBC가 헬기를 띄웠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 보도에 소극적이었던 MBC 등 공중파 방송사가 취재에 열을 올렸다. 유가족은 8명인데 취재진은 30명이 넘었다. 취재진이 감시 망원경 앞을 가리자 한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기 놀러왔어? 당신들 때문에 우리 애들이 다 죽었다고.”

ⓒ시사IN 이명익
ⓒ연합뉴스
유가족들은 2015년 9월부터 동거차도 정상에서 천막을 치고 세월호 인양을 지켜보았다.(맨 위)3월24일 전남 진도군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미수습자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3월24일 오전 11시10분
세월호 수면 위 13m 인양 완료

오전 8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라는 노란색 깃발을 단 ‘진실호’가 동거차도에서 세월호 인양 현장으로 출발했다. 맹골수도와 동거차도를 오가는 이 낚싯배를 유가족들은 ‘진실호’라고 불렀다.
바다로 나가자 강한 기름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인양된 세월호에서 흘러나온 기름과 양식장의 미역이 뒤엉켜 있었다. 지성 아빠 문종택씨가 혀를 차며 말했다. “큰일 났어요. 이렇게 심하면 여기 어민 분들 내년 농사까지 망칠 텐데.”
진실호와 취재진이 탄 배들이 인양 현장에 접근하자 해경이 저지했다. 인양업체인 상하이샐비지 측에서 원활한 작업을 위해 접근 제한을 요청해 반경 1.6㎞(1마일) 이내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지금까지 1073일을 기다린 가족들이 인양 작업을 방해하겠나. 대체 뭘 숨기려고 하는 건가.” 승강이 끝에 해경은 유가족이 탄 진실호만 통과를 허가했다.
진실호는 재킹바지선 근처 150m 거리까지 접근했다. 형광 빨간색, 형광 노란색 작업복을 입은 작업자들이 재킹바지선 위에 점점이 박혀 있었다.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스크루가 눈에 들어왔다. 왼쪽으로 완전히 누운 세월호 선체는 수면 위로 12m가 나와 있었다. 유가족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세월호를 바라봤다. 거센 바닷바람에 진실호가 출렁였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간밤에도 마음을 졸였다. 해수부는 전날 밤 10시 “세월호 왼편 꼬리쪽 램프(차량 출입로) 제거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밤샘 잠수 작업 끝에 새벽 6시45분이 되어서야 인양 작업이 재개되었다. 오전 11시10분, 세월호 선체가 물 위로 13m 떠올랐다. 곧 반잠수식 선박으로 이동 작업이 시작되었다. 세월호 선미에 새겨진 ‘SEWOL’ 중 ‘WOL’ 세 글자만이 녹슨 선체 위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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