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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농단도 바로잡을 수 있을까

2017년 04월 05일(수) 제498호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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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 정권 집권이 남긴 짙은 그림자 중 하나는 바로 언론 장악이다. 특히 MBC는 인사관리를 통해 조직의 DNA를 바꾸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김장겸 신임 사장 체제는 그 토대 위에서 등장할 수 있었다.

<뉴스데스크>가 끝나면 휴대전화에 불이 났다. 보도 내용에 대한 피드백만 오는 건 아니었다. 선배들은 ‘구두는 왜 안 닦고 스탠딩에 섰느냐’ ‘머리 모양이 그게 뭐냐’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지적했다. 그보다 훨씬 더 이전에는 보도국 내 익명 게시판이 뜨거웠다. 때로 마음 상하게 하는 신랄하고 날선 말 속에도 뜯어보면 기사에 대한 애정이 깃든 조언이 많았다. 뉴스가 끝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게시판을 찾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물었다. 오늘 보도는 이게 정말 최선이었는지, 더 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는지.

모두 다 부질없는 옛날이야기다. 게시판은 사라진 지 오래고 문자는 더 이상 오가지 않는다. MBC 기자들은 자사 뉴스를 보지 않는다. 목소리만 듣고도 ‘아무개가 오늘은 이걸 취재했구나’ ‘내일 이거 더 해보라고 말해줘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올까. 멍하니 화면을 보다가 ‘우리 회사에 저런 기자도 있구나’ 생각하고 새삼 놀라는 날들. 뉴스에는 어느덧 모르는 얼굴이 더 많아졌다. 덩달아 타사 채용 공고를 유심히 보는 날도 많아졌다. 결국은 떠나지도 바꾸지도 못했다. 그런데 포기하지도 못했다.

5년 전인 2012년, 170일 파업이 끝났다. 누군가는 쉽게 요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파업이 끝났다, 라고. 손에 쥔 성과 없이 끝난 역대 최장기 파업이었다. 실패한 파업의 후폭풍은 컸다. 파업 지도부 대부분이 해직됐다. 파업 이후를 정리하고 평가하고 다독거릴 선장이 사라진 자리에서 조합원들도 모래알처럼 흩어졌다(<시사IN> 제260호 ‘일 뺏긴 MBC 노조원들’ 기사 참조). 현재 MBC에는 노조가 3개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1노조, 김연국 위원장), MBC공정방송노동조합(2노조, 이윤재 위원장), MBC노동조합(3노조, 김세의·임정환·최대현 공동위원장)이다. 2012년 파업 주력들은 대부분 1노조 소속이다.

ⓒ시사IN 조남진
1노조 조합원들은 ‘우리는 왜 졌을까’ 자주 생각한다. 조합원 전원이 실려 나갈 때까지 단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전국 곳곳 송전탑마다 모두 올라갔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 약속을 잡을 때면 홍대입구역 9번 출구나 강남역 10번 출구 쪽은 일부러 피한다. 조합원들과 함께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고 길거리 선전전을 했던 곳이다. 어쩔 수 없이 지날 때면 그날 그 거리, 무수한 사람들의 응원과 그만큼의 냉소와 무더위의 기억이 한데 엉켜 우울로 덮쳐온다.

그날 이후 보도국 기자 80%가 교체됐다. “MBC의 DNA를 바꾸겠다”라는 경영진의 말대로 됐다. 보도국 내에서 메인 뉴스인 <뉴스데스크>를 담당하는 취재기자 약 120명 중 2012년 파업에 참여했던 1노조 조합원은 스무 명 남짓만 남았다. 나머지는 비제작 부서로 쫓겨나거나 보도국 안에서도 보도 지원 부서로 밀려났다. 그나마 남은 1노조 조합원은 주요 부서에 배치되지 않는다. 정치부 정당팀에는 16명 중 한 명만이 1노조 조합원이고, 사회1부 법조팀 7명 중에 1노조 조합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신입 공채는 2013년이 마지막이었다. 기자는 3명이 뽑혔다. 김재철 사장이 물러나고 김종국 사장 대행체제로 보낸 그해를 구성원들은 지난 5년 중 그나마 숨통이 트인 때로 기억했다. 그 후 더 이상 신입 채용은 없었다. 회사 측은 “즉시 투입 가능한 경력을 뽑아야 한다”라는 명분을 들었다. 1노조는 신입 기자가 모두 1노조에 가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시사IN 조남진
더불어민주당 경선 주자인 문재인 후보(오른쪽)가 3월21일 MBC <100분 토론> 녹화를 앞두고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1노조 조합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는 전사적으로, 전 직종에 걸쳐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1노조를 탈퇴하고 오면 좋은 부서로 옮겨주겠다고,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이 오갔다. 1노조는 보직자(부장·국장)가 되면 자동 탈퇴되도록 2년 전 조합 규약을 수정했다. 조금이나마 ‘힘 있는’ 자리에 조합원이 올라가면 상황이 나아질까 싶어서 그랬다. 새 조합원을 받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간부들은 새로 가입하는 조합원을 파악해 ‘프로그램을 빼겠다’ ‘비제작 부서로 보내겠다’는 등 공공연히 불이익을 예고했다. 1노조는 어쩔 수 없이 조합원을 탈퇴하게 했다. 한 명이라도 더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정기 인사는 없어졌다. 어느 날 갑자기 뉴스 시스템(보도정보 시스템)에서 로그아웃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기사를 쓰는 중에도 아이디가 사라졌다. 인사 발령 직전까지도 소속 국장과 부장이 발령 계획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사규도 고쳤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인사 발령에 대해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받자, 회사는 2015년 직종 자체를 없앴다. 어제까지 기자였던 사람이 이튿날 모바일사업 부서에 발령이 나도 ‘합법’이 되었다.

“사내에 노조 파괴 업체를 꾸린 것 같다”


부당 인사·징계 관련 재판은 모두 46개다. 1노조는 현재 35개 재판에서 승소했고, 5개의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승소율은 90%에 가깝다.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2012년 이후 변호사는 10명으로, 노무사는 7명으로 늘었다. ‘MBC 로펌’을 꾸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사내에 노조 파괴 업체로 악명 높은 ‘창조컨설팅’을 꾸린 것 같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종전에도 법무 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한두 명에 불과했다. 프로그램이나 기사에 대한 법률 자문이 주 업무였다. 지금 변호사들은 노조 대응과 관련된 조언도 한다. 저들의 인건비와 막대한 소송비용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구성원들은 종종 생각한다.

ⓒ시사IN 자료
언론노조 MBC본부는 2012년 1월30일 총파업을 선언하고 170일 동안 파업에 돌입했다.
빈자리는 경력 기자가 채웠다. 지난 5년간 경력으로 입사한 사원은 직군을 망라하고 대략 230명이 넘는다. 그중 기자는 90여 명이다. 회사는 최근 또 경력 채용 공고를 냈다. 경력 기자 12명을 더 뽑을 계획이다. MBC 한 직원은 “채용 과정을 둘러싸고 ‘음서’라는 말이 돌아선 안 되지 않나. 면접 자리에서는 정치적 신념이나 출신 지역 따위를 중시하는 질문이 던져졌다”라고 말했다.

3월21일 <100분 토론> 녹화를 위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MBC를 방문한 날의 풍경은 상징적이다. 이날 토론에서 유력 주자인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질문 시간에 MBC를 향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MBC가 심하게 무너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요구에도 탄핵 정국 속에서 후임 사장 인사를 강행했다. 탄핵 반대 집회를 찬양하고 탄핵 다큐멘터리 방송도 취소했다.” 정말 오랜만에 ‘실시간 검색어’에 MBC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사측은 자사 뉴스를 통해 공영방송 흔들기라는 프레임으로 맞섰다. 리포트는 경력 기자가 맡았다.

세월호 참사 앞에서도, 박근혜 게이트에도 MBC 보도는 속수무책이었다. 국정교과서, 사드, 노동개혁 같은 것들이 모두 ‘민감한’ 아이템으로 분류됐다. 그나마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위태롭게나마 유지되었던 취재 라인이 박근혜 게이트 국면에서는 무너졌다. 탄핵 인용 당시에도 준비한 탄핵 관련 다큐멘터리는 불방됐고, 담당 PD는 비제작 부서로 발령 났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한 기자는 “파업 같은 큰 싸움 말고, 기사를 쓰다 보면 데스크랑 싸워야 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렇게 일상에서 싸우는 법도 잊어버린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외부에 전하는 일은 쉽게 해사 행위가 됐다. 실명으로 언론과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정직 2~3개월 징계가 내려졌다. 실명으로 하지 않은 인터뷰도 쉽게 드러났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자신이 ‘당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개개인이 당한 부당한 상황이 모두 개별적이다. 그렇게 강요된 침묵이 이어졌다. 노조 집행부라고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 1노조 관계자는 “우리야 뭐 외부에 말하라고 앉혀놓은 사람들이니까 이야기하지만…, 나도 무섭다(웃음)”라고 말했다.

방송기자에게는 목소리가 무기다. 1노조 조합원인 기자들은 데스크가 ‘야마’를 틀어버린, 크게 손댄 기사에 오디오 입히는 일을 거부했다. 기자가 버티면 데스크의 개입 여지가 그만큼 좁다. 그게 또 징계 이유가 된다. 보도국 내 싸움이 쉽게 극으로 치닫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 낀 경력 기자들의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경력 기자들은 자신이 쓰지도 않은 기사를 대독하기도 한다. 이러려고 기자가 됐나 괴로운 순간들이,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들어온 경력 기자에게도 찾아온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한 경력 기자는 “그래도 내 이름 걸고 하는 일이고 결국 기록으로 남는 일이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오디오를 대독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면 자리를 피하기 위해 친구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SOS를 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회사는 2015년 경력 입사자부터 호봉제 대신 연봉계약제라는 고삐를 틀어쥐었다.

회사의 철저한 ‘분리통치’에도 누군가는 용기를 낸다. 경력 기자 중에도 1노조에 가입한 기자가 있다. 누군가는 뒤늦게 가입한 이유를 이렇게 댔다. “선배들에게 실력으로 인정받는 절차를 거치고 싶었다.” 마치 무임승차하는 것처럼 여겨질까 하는 불편함. 자신들에게 찍힌 ‘낙인’을 그들도 잘 안다.

정권만 바뀌면 모든 게 해결될까

회사 측이 팔짱을 끼고 있는 동안 공채 기자와 경력 기자는 서로를 할퀴었다. 노사 갈등은 쉽게 노노 갈등으로 전환됐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은 경험은 모멸감을 안겼다. 공채 기자끼리도 상처를 준다. 해직 기간이 5년 이상인 사람은 1년도 안 된 해직자가 징징거리는 게 때로 미웠고, 징계자는 해고자 앞에서 ‘명함도 못 내미는’ 상황이 서러웠다. 모두가 힘들어 모이는 자리마다 누가 최고로 힘든지를 두고 다투곤 했다. 술자리는 험악하게 끝날 때가 많았다. 그렇게 ‘피해자’만 남았다.

1노조 역시 경력 기자를 온전히 품지는 못한다. 단적으로 집행부 중에는 경력 기자 출신이 없다. 파업에 참여했나, 안 했나의 문제는 아니다. 1노조 관계자는 “경력 출신 조합원을 구분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을 터놓기가 쉽지 않은 것도 솔직한 마음이다. 사실 파업에 참여했던 분들도 대충 하다 ‘저쪽’으로 넘어간 분도 많은데…. 참 몹쓸 일이지. 조직이 망가진 단면을 보여주는 거다”라고 말했다.

비합리적인 상황이 반복되며 누적된 무력감과 패배주의가 조직을 지배했다. 2016년 ‘백종문 녹취록’이 공개되었지만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다. 녹취록에서 2014년 당시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은 “왜냐하면 그때 최승호하고 박성제 해고시킬 때 그 둘은, 왜냐하면 증거가 없어” “그런데 이놈을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해고를 시킨 거예요. 해고시켜놓고 나중에 소송이 들어오면 그때 받아주면 될 거 아니냐, 그래서 둘은 우리가 그런 생각 갖고서 했는데” 따위 발언을 했다. 김장겸 신임 사장은 백 본부장을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방송의 영향력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크다. 이 때문에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권을 잡은 쪽은 방송을 통제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9년은 그 절정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정권교체 만능설’을 입에 올린다. 정권만 바뀌면, MBC 사장을 선임하는 방송문화진흥회법만 개정되면(42쪽 기사 참조), 그래서 사장이 바뀌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믿고 또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하지만 정권교체가 곧 ‘MBC의 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정권이 교체되면 조금의 여지가 열릴 수도 있다. 그런데 ‘정상화’라고 말하는 모습에 대해 구성원들의 생각은 제각각이다. 무엇보다 켜켜이 쌓인 내부 갈등의 골이 깊고 넓다. 재건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인과응보·사필귀정·권선징악 같은 사자성어들을 자꾸만 되뇐다. ‘인적 청산’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해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차마 드러내지 못한 두려움이다. 모두 다 ‘나쁜 놈’이냐, 그렇다면 진짜 나쁜 놈은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골라낼 거냐를 두고도 해법이 갈린다. 구성원들은 이 과정을 합의하는 일이 MBC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MBC의 한 중견 기자는 “후배들에게 좋은 날을 기다리지 말자고 말한다. 대신 공영방송 기자로서 지금은 못 쓰지만 쓰고 싶은 기사, 써야 할 기사들을 벼리고 준비하자고 한다”라고 말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미디어 환경과 노동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오랜 시간 현업을 떠나 있었던 구성원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무엇보다 여론이 더 이상 힘이 되어주지 않는 상황이 뼈아프다. 누군가는 자업자득이라고 말한다. 유례없는 탄압도 기록적이지만 이나마 버틴 것도 기록적이라고, 그래도 말하고 싶다. 살아남아서 기어코 다시 제대로 시작하고 싶다고. MBC는 지금 그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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