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독일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미국에 막대한 돈을 빚지고 있다”라고 썼다. 백악관에서 독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바로 다음 날 올린 글이었다.

선거운동 때부터 나토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회원국들이 미국 군사력에 무임승차한다며 비판한 바 있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나토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지만, 여전히 회원국들이 더 많은 방위비를 분담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하고 있다. 특히 경제 강국인 독일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공격 대상이다. 지난 3월17일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메르켈을 압박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악수를 하지 않겠느냐”라고 물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고 악수를 거부했다. 트럼프의 방위비 압박에 대해 메르켈 총리는 2014년 나토 회원국들이 합의한 것처럼 2024년까지 GDP의 2%를 방위비로 지출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진은 양국 정상회담 뒤에도 이어졌다. 3월19일 독일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국방장관은 “나토에는 채무 계좌가 없다”며 트럼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또한 폰데어라이엔 장관은 GDP의 2%를 방위비로 지출하겠다는 약속은 나토 분담금으로만 쓰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지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녀에 따르면 독일의 방위비는 유엔평화유지군이나 유럽군 혹은 ‘이슬람국가(IS)’와의 싸움 등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 또한 그녀는 공정한 방위비 분담을 위해서는 현대적 안보 개념이 필요하다며, 유럽 내 군사 협력 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폰데어라이엔 국방장관은 2월15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 기고문을 통해 ‘유럽 내부의 군사 협력은 각국의 국방력을 실용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유럽이 정당한 군사적 책임을 질 수 있는 길이다. 유럽 안보에서 독일의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

ⓒAP Photo3월17일 미·독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메르켈 독일 총리의 악수 요청을 거절했다.
트럼프의 나토 회원국을 향한 방위비 분담 압박에 대응해 일찌감치 독일은 유럽연합(EU)을 통한 새로운 방위체제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3월6일 유럽연합은 외무·국방 장관회의를 통해 유럽연합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해외군사활동지휘부(MPCC) 창설을 승인했다. 이 지휘부는 직접적인 군사 활동이 아닌 말리·중앙아프리카공화국·소말리아에서 유럽연합의 군사 교육 활동을 담당하게 된다. 이번 결정에 대해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독일의 지그마어 가브리엘 외무장관은 “공동의 방위안보 정책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라고 평가했다. 폰데어라이엔 국방장관 또한 “수년간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것을 이루었다”라고 말했다.

유럽연합의 이번 결정은 지난해 9월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의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융커 집행위원장은 유럽군 창설의 전 단계로 유럽군 지휘부의 설립을 제안한 바 있다. 유럽군 창설론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힘을 얻었다. 영국은 미국 다음으로 나토에서 가장 많은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는 국가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하는 영국은 유럽연합 내부에서 유럽군 창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자였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면서 프랑스와 독일 등 그동안 유럽 내 군사협력 체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국가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된 것이다.

ⓒDPA3월2일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외무장관(가운데)이 리투아니아에 파견된 독일 군인에게 연설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나토 회원국 사이의 이해관계 변화가 유럽군 창설 논의의 급물살을 탄 배경이다. 나토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2개 국가가 서로의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1949년 설립한 군사동맹 체제이다. 당시 미국·캐나다 외 나머지 회원국들은 모두 서유럽 국가였다. 현재 나토는 28개 국가로 구성되어 있다. 1990년 이후 동유럽 국가들이 잇달아 나토에 가입하면서 회원국이 늘었다. 처음 출범 당시 나토의 목표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세력 저지였다. 이를 위해 나토는 1955년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서독의 무장을 허용하고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소련은 같은 해 동구권 국가들과 함께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창설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냉전체제가 1990년까지 이어졌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동독은 나토에 편입되었고, 힘을 잃어버린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1991년 해체되었다. 그 후 동유럽 국가들이 하나둘 나토에 가입했다.

나토만으로 유럽연합 생존 보장하기에는…

나토 체제에 대한 유럽 내부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유럽연합의 생존을 보장하는 방어체제로서 나토에 의구심을 갖는다. 극우 성향을 보이는 몇몇 동유럽 국가뿐 아니라 터키까지 나토 회원국인 상황에서 나토만으로 유럽연합의 생존을 보장하기에는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까지 자국 중심의 목소리를 내면서 나토가 유럽연합의 체제를 수호할 수 있는지 의문시된다.

또 미국의 군사 개입에 대한 비판적 시각들이 존재해왔다. 냉전체제에서 나토는 사회주의 세력 확장의 저지라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 점에서 서유럽 국가들과 나토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의 군사적 관심이 태평양과 중동 지역에 집중되면서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군사적 이해관계가 달라졌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정부에 우호적이면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불안을 느끼는 러시아 국경 근처의 동유럽 국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유럽 자체 군사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앞서 말한 대로 메르켈 총리와 집권 여당인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는 나토 협약은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는 군사적 결속을 통해 지금의 유럽연합 체제를 안정시키고, 유럽연합 내부에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 같은 독일의 군사력 강화에 독일 안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뿐 아니라 국방 예산의 증가가 독일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비판이다. 2016년 독일의 국방 예산은 GDP의 1.18%였다. 2%는 거의 두 배로 늘어난 수치이다.

오는 9월 연방 선거에서 기독민주당(기민당) 출신 메르켈 총리의 4선을 막을 대항마로 떠오른 사민당 마르틴 슐츠 후보는 유럽의 군사협력 체제 강화는 필요하지만, 국방 예산을 2%로 늘리려는 계획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다. 사민당 출신인 가브리엘 외무장관도 지난 3월2일 리투아니아에 파견된 독일군을 방문한 자리에서, “안보정책을 군사력에 집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유럽 내 안보와 방위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그는 “유럽의 이웃 나라들이 독일의 국방 예산이 증가하는 것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가 9월 연방선거를 앞둔 독일에서 또 하나의 변수가 되고 있다.

기자명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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