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5만, 50만, 100만…. 결국 ‘대통령 박근혜는 파면’되었다. 이미 만들어진 세상의 틀에 자신을 욱여넣느라 애쓰는 학생들에게도 뭔가 ‘꿈쩍’은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광장에서 학교로 돌아오면 아직도 ‘박근혜들’투성이다.
새 학기를 맞아 교칙과 징계 기준표가 메신저로 날아왔다. 징계 기준표는 학생들에게 형법과 같다. 처벌받는 행동의 조항과 처벌 강도가 명시되어 있다. 우리 학교는 지난해에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민주적으로’ 토론과 설문조사를 통해 두발 규정이 자유화되었다. 개인의 개성에 관한 것이 토론과 설문의 대상인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어쨌든 ‘두발은 학생의 개성과 자율성에 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복장과 장신구 등에 관한 규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귀걸이는 2개 이하, 화장은 너무 진하게 하지 않는다 등등이다. 교사가 일일이 학생들의 귀를 보고 다녀야 한다는 게 황당하지만, 학생부가 초안을 잡은 설문조사가 통과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더 황당한 것은 무단결석을 한 학생에게 징계를 내리는 조항이다. 아동학대법에 따라 이틀 이상 무단결석을 한 학생은 가정방문을 하도록 되어 있다. 즉, 무단결석은 개인의 게으름의 결과라기보다는 학생에 대한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가정방문을 가서 애써 데려온 학생을 징계한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 규정이다.
또 징계 대상이 되는 학생은 ‘교사의 지시에 불응한 자’이다. 학교에서는 교사·학생·학부모가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며 입법 절차의 민주성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교칙을 만드는 데에서 교칙 준수 의무 또한 생긴다. 교사가 입법권을 독점하고 교사들의 말이 곧 법이 되는 상황이라면? 이런 환경에서는 교칙에 대한 민주적 토론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권리
촛불은 넉 달을 달려왔다. 그 뜨거웠던 촛불 광장의 주역이었던 학생들에게도 정치적 권리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18세 선거권이다. 학교 밖 투표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일상에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권리다. 내 교복이 남들 보기에 짧은지, 내 귀걸이가 몇 개인지 걱정해야 하고, 내 행동이 감시에 의해 처벌받지 않을지 두려워하는 존재로 살아가면서, 단지 학교 밖에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학생들의 삶이 얼마나 변화할 수 있을까?
우리가 청소년에게 기대하는 민주시민 의식과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에게 용기 있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려면 우선 학생 개개인의 존재가 강자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의 선거투표권만큼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눈치 보지 않는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일이다. 광장에서 가능했던 것들이 학교에선 여전히 징계 사유가 되고 있다.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민주주의가 이런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아니라면, 학생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우리 일상을 광장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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