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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에서 ‘쩍벌남’이 된 중국

2017년 04월 06일(목) 제498호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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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자는 종종 이 세상을 창조한 지적설계자가 정말 있다면 지나치게 딱정벌레를 좋아하는 매우 뒤틀린 존재일 것이라고 비꼬곤 하는데, 일리가 있다. 이해하기 힘들게도 전체 생물종의 5분의 1이 딱정벌레(35만 종이 넘는다)이며 자연계에서는 엽기적인 일이 너무나 흔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 지적설계자는 혈기 왕성한 곤충과 그 곤충의 뇌에 알을 슬어 미쳐 죽게 하는 기생충을 동시에 만드는 변태 성향을 지녔다. 봄이 되면 티베트의 남녀노소를 산으로 내모는 힘이 바로 자연계의 그런 잔혹한 일면이다.

티베트 초원에 여름이 오면 해질녘 분주히 날아다니는 게 특기인 박쥐나방의 유충에 풍매 곰팡이의 포자가 조용히 내려앉는다. 이 운 나쁜 유충은 아무것도 모르고 우화등선을 꿈꾸며 땅 밑으로 파고 들어가 동면하다가 곰팡이의 먹이로 전락해 죽어간다. 봄기운이 따사로워지면 곰팡이가 유충을 양분으로 삼아 몸통을 키워 껍데기를 채우고 나사 모양의 싹을 틔우는데 이를 동충하초라고 부른다. 햇빛을 찾아 흙을 뚫고 나온 부분이 겨우 4~5㎝에 불과해 여간 눈이 좋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다. 여름이 와서 억센 풀들이 초원을 덮어버리면 수확은 끝난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지만 중국만큼 유별나지는 않다)에서는 예로부터 이 동충하초를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해왔다. 암을 낫게 하고 허리 통증을 완화한다고도 알려졌지만, 동충하초를 금보다 비싼 존재로 만든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이 동충하초가 남자의 성 능력을 획기적으로 키워준다고 전해오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이 동충하초를 ‘히말라야의 비아그라’라고 부른다. 2013년 티베트는 동충하초를 50t 생산해 그 대부분을 중국에 팔아 1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티베트 전체 관광 수입의 절반에 달한다. 매년 봄 티베트 전역이 골드러시에 휩싸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성원 그림
이 티베트의 동충하초는 중국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일종의 창이기도 하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고도성장이라는 신화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기에 불을 지를 수 있다면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상아 탐닉에 대한 미온적 대처에서 볼 수 있듯이 돈이 돌아가는 데 지장이 될 정책은 최대한 자제하려고 한다. 중국 정부의 이런 태도는 기후변화로 가뜩이나 취약해진 지구 생태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준다.

중국 정부는 두둑해진 자국 중산층의 지갑을 이용해 국내 소수민족과 주변국을 길들이는 데 재미를 붙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의학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맹목적인 애정에 기대어 티베트의 동충하초 경기에 불을 질렀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과학적으로는 동충하초가 남성의 성기능을 강화한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랫동안 잊혔던 동충하초의 효능이 다시 주목받게 된 데는 관영 매체의 기여가 컸다. 이들 매체가 즐겨 인용하는,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대형 서점에서 파는 전통 건강요법 책에 따르면 ‘18g의 동충하초에 신선한 태반을 푹 고아서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 먹으면’ 성기능 개선에 효과가 있다. 이런 ‘광고’에 힘입어 베이징에서는 작은 유리병 하나 분량의 동충하초가 1만 달러에 팔려 나간다. 이 동충하초는 뇌물로서 효능도 탁월하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국민이 유목 전통을 버리고 정주하기를 원한다. 좀처럼 중국에 동화되지 않는 야성을 길들이기 위해서다. 실제로 동충하초 바람이 불기 시작한 10년 전부터 유목 인구가 서서히 줄고 있다. 이 지역에 유입된 막대한 돈은 지역의 가족애, 우정, 인간애를 좀먹고 있다. 전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이권을 둘러싼 살인·강도 같은 강력범죄가 빈발한다.

한때 돈벼락을 맞은 티베트 졸부들 사이에는 인도와 네팔에서 수입한 호랑이 가죽을 입는 게 유행한 적이 있다. 그 당시인 2002~ 2006년 인도의 호랑이 개체 수가 3600여 마리에서 1411마리로 급감하는 일이 벌어졌다. 2006년 달라이라마가 동충하초를 ‘고원의 위기’라 규정하고 동물 가죽을 벗으라고 호소한 뒤 인도의 호랑이 개체 수는 2226마리로 불어났다. 그러자 중국 정부가 오히려 나서서 티베트인들에게 호랑이 가죽 옷을 입으라고 권하는 이상한 일도 벌어졌다. 중국 정부는 그들이 선전해온 것과 같은, 소수민족의 수호자와는 거리가 멀다.

중국이 인간의 얼굴을 한 제국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는 도처에 널렸다. 이 거인이 주변의 힘없는 친구들을 어떻게 다루려 하는지 알고 싶으면 캄보디아를 들여다보면 된다. 캄보디아는 타이와 베트남이라는 이웃 강국 사이에 낀 위태로운 존재이다. 1979년에는 베트남의 침공을 받아 10년이나 그 통치를 받았다. 작은 나라가 흔히 그렇듯이 캄보디아는 애타게 보호자를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호소에 열렬히 답한 나라가 중국이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캄보디아의 훈센 대통령을 스스럼없이 ‘철갑 친구’라 부른다. 중국은 다른 나라의 투자를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캄보디아에 쏟아부었다. 물론 중국이 헛돈을 쓸 리가 없다.

중국은 예로부터 캄보디아에 침을 삼켜왔다. 1970년대 미국이 론놀 정부를 지원할 때 중국은 축출된 왕인 시아누크와 크메르루주를 지원했다. 크메르루주는 1975년 론놀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뒤 국민 200만명을 학살했다. 중국은 크메르루주가 베트남의 침공으로 쫓겨난 뒤에도 그들을 지원했다. 1990년 베트남과 가까웠던 훈센이 권력을 굳히자 그를 아낌없이 밀어줬다. 이 나라 전체 산업투자의 70%를 중국이 도맡았다.

중국은 캄보디아를 미국과 주변국을 견제하는 쐐기로 활용하고 있다. 민주 정부를 구성하라느니, 부정선거를 하지 말라느니, 인권을 보호하라느니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중국의 돈에는 붙지 않는다. 이런 중국의 묻지 마 지원 덕분에 훈센은 야당을 마음대로 탄압하고 절대 권력을 누릴 수 있다. 그 대가로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홍위병을 자처한다. 국제법을 무시하고 남중국해에서 영향력을 확장해가는 중국을 위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내부에서 대리전을 수행한다. 중국을 비난하는 성명을 내는 것을 방해하고, 분쟁은 국제법이 아닌 이해당사자 간의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중국의 견해를 무조건 지지한다. 캄보디아의 맹활약으로 중국과 거칠게 대립했던 필리핀·베트남 등이 한발 물러서야 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조건 없는 돈이 어디 있겠는가. 사탕수수·고무·곡물·광물 생산에서부터 도로와 수력발전 건설 같은 인프라까지 모두 장악한 중국 기업은 캄보디아에서 땅 369만ha를 소유하고 있다. 이 나라 주요 항구인 시아누크빌 외곽의 고급 리조트, 캄보디아 해안의 20%에 해당하는 길이의 개발권을 손에 넣었다. 캄보디아 시민단체에 따르면 이 지역 어부는 모두 강제로 농부가 되어야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과 한국만을 겨냥한 것은 아닐지도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과신하는 경향이 짙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어째서 북한에 대해 마땅히 할 일을 하지 않느냐’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마치 중국이 방치하는 바람에 북한이 마음 놓고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투다. 한국 정치인 가운데도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은 당장 핵 개발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믿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미국과 한국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 또한 지나친 해석일까.

할 수만 있다면 중국은 북한도 캄보디아처럼 손바닥에 올려놓고 싶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고난의 행군을 계속해온 북한도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지경으로 중국에 기대고 싶을 것이다. 중국의 돈에 민주니 인권이니 하는 거추장스러운 조건이 붙지 않으리라는 점도 충분히 안다. 그럼에도 중국에 완전히 엎어질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좋게 보자면 자주 국가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고, 나쁘게 보자면 결국 김씨 가문, 즉 백두혈통을 보전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여러 차례 김씨 가문을 거칠게 다룬 적이 있다. 1956년 마오쩌둥은 북한 김일성 주석을 ‘봉건시대 제왕보다 못된 멍청이’ ‘이승만과 공모한 배신자’ ‘나치’ ‘파시스트’라고 공공연히 욕했다. 북한 내부의 친중국 엘리트들에게 그를 제거하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을 축출하려는 노력은 실패했고, 시도했던 자들은 모두 중국으로 도망쳤다. 대로한 마오쩌둥은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그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게 하겠다’고 으르렁댔지만 김일성은 반대자에 대한 철저한 숙청으로 화답했다.

중국은 1966년 문화대혁명 기간에도 김일성을 몰아내려고 시도했다. 유명한 4인방 중 한 명이었던 야오원위안은 김일성을 수정주의자라고 낙인찍었다. 중국 대사관은 한발 더 나아갔다. 공식 행사에서 김일성 찬양하기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대사관 벽에 자극적인 포스터를 내걸고 “우리는 마음에 드는 북한 법만 지키겠다”라고 선언했다. 북한 당국은 마오쩌둥에게 ‘노망났느냐’고 욕을 퍼부었다.

국경에서도 긴장이 높아졌다. 1967년 북한 국적자가 홍군 국경수비대에게 사살됐는데 송환된 시신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이걸 잘 봐라. 너희도 이렇게 될 거다. 이 ×만한 수정주의자들아.’ 중국은 대형 스피커를 국경에 설치하고 ‘김일성을 쳐부수자’고 선무방송을 한 일도 있고, 엽기적이게도 댐을 세워 북한 쪽으로 홍수를 일으키려 시도한 적도 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북한 김일성 주석은 “중국은 틈만 나면 우릴 괴롭힌다. 그들에겐 기대할 게 없다”라고 푸념하곤 했다고 한다.

북한이 뼈저리게 중국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체험을 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그나마 좋은 소식이다. 안 그랬다면 우리가 철수한 금강산에서부터 개성공단까지 중국 기업이 진작에 점령했을 것이다. 북한 자체가 동북아에서 중국의 이익만을 위한 싸움닭으로 전락하고 통일은 멀어졌을 것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한국 정부의 외교 지능지수가 얼마나 낮은지 적시에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티베트·캄보디아의 인민과 북한은 중국이 속없이 한류 드라마나 소비하는 돈벌이 대상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가르쳐준다. 한때나마 유토피아에 접근해가리라 여겼던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몰염치한 ‘쩍벌남’이 돼가는 걸 보는 게 괴롭다.

참고한 활자:<범퍼 스티커로 철학하기>(민음인), <런던 자연사박물관>(까치), <이코노미스트>, <내셔널 지오그래픽>,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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